인터뷰│박성률 움틀 대표

병원에 가지 않아도 간편하게 진단할 수 있는 체외진단기기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는가. 거기에 사용하는 원부자재 중 하나인 멤브레인 필터가 모두 수입제품이라는 것을…. 박성률(38) 움틀 대표는 수입에 의존하는 바이오산업용 멤브레인의 국산화에 나섰다. 누구도 걷지 않았던 길이기에 고독하고 힘든 길이지만 사명감 하나로 우직하게 길을 개척하고 있다.

박성률 대표는 수입에 의존하던 바이오산업용 멤브레인을 국산화했다.[사진=천막사진관]
박성률 대표는 수입에 의존하던 바이오산업용 멤브레인을 국산화했다.[사진=천막사진관]

✚ 움틀은 어떤 회사인가요?
“움틀은 국내 최초로 바이오산업용 멤브레인을 개발하는 전문 스타트업입니다. 바이오의약품 연구와 생산에 필요한 멤브레인 필터와 체외진단기기의 원부자재인 NC멤브레인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멤브레인은 크기가 다른 물질을 분리하는 일종의 필터다. 커피 여과지, 거름종이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 스타트업이 다루기 쉽지 않은 아이템이네요. 어떤 계기로 창업에 나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롯데케미칼에서 첫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멤브레인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원이었죠. 이후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하 산기평)으로 직장을 옮겼고, 거기서 바이오·나노융합 산업기술 R&D를 평가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다 창업했습니다.”


✚ 안정적인 직장이었을 텐데요, 왜 험난한 길을 택하신 건가요? 
“산기평에선 각종 과제 수행자와 밀접하게 소통하며 기술개발을 돕고 필요한 자원을 지원해주는 게 저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 바이오의약품 산업이 성장하고 있고, 체외진단기기가 주력산업이 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분명히 가파르게 성장하는 곳 중 하나입니다. 코로나19로 성장이 더 가속화했고요.
“맞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 문제요?
“우리나라는 바이오의약품의 원부자재를 대부분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산기평은 국산화 프로젝트를 만들어 후방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했죠.”


✚ 육성 프로젝트를 담당하다가 직접 시장에 뛰어들었단 얘기인가요?
“바이오의약품 원부자재 중에도 멤브레인은 국산화가 안 되고 있더라고요. 롯데케미칼에서 연구했던 경력을 살려 불모의 땅에 싹을 틔워보고자 산기평의 ‘임직원 창업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 멤브레인은 왜 국산화가 어려운 거죠?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보틀탑 필터를 예로 들어볼까요? 이 필터에 주로 사용하는 멤브레인 기공은 0.2μm(마이크로미터)와 0.45μm 말고도 다양합니다. 병목 크기도 다르고요. 보틀 용량도 4가지입니다. 소재 역시 주로 사용하는 것만 추려도 5종류에 이릅니다. 보틀탑 필터 하나 만들 때도 경우의 수가 이처럼 숱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겠어요. 개발해야 할 게 많다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엔 시장조사를 통해 많이 사용하는 일부 품목만 만들겠다고 결정했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일일이 다 금형을 찍어야 하는데 누가 하려고 하겠습니까.”


✚ 수익성이 낮다는 얘기군요. 다른 이유는 또 뭔가요?
“필요가 없었어요.”


✚ 필요가 없었다고요?
“현재 바이오산업용 멤브레인은 모두 수입해서 쓰고 있는데, 해외제품이 쓸 만합니다. 잘 만들어요. 있는 걸 사다 쓰면 되니까 굳이 국산제품의 필요성을 못 느낀 겁니다.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왜 해외제품을 쓰냐’고 물어보면 ‘그동안 써왔으니까’란 기계적인 답이 돌아와요.”


✚ 그래서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하신 거군요.
“문제가 뭐냐 하면, 시장을 3개 업체가 과점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격이 비싸요. 거기에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품귀현상을 빚으면서 가격이 더 올랐습니다. 가격은 가격대로 비싸고, 제품을 받으려면 3~4개월씩 걸립니다. 그런 불편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걸 보다가 제가 만들어보겠다고 나선 겁니다.”


✚ 관건은 과점 시장을 어떻게 뚫느냐네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말했듯이 바이오산업용 멤브레인 시장은 3개 업체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우리 같은 스타트업이 진입하기엔 장벽이 너무 높아요. 그래서 실험용 시장부터 두드려보기로 한 것입니다.”


✚ 실험실에서도 해외제품을 사용하고 있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가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보틀형 필터는 일회용인데, 비쌀 땐 개당 2만500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원하는 가격은 1만원 이하입니다.”

✚ 차이가 크네요. 하지만 1만원 이하로 팔면 마진이 안 남을 거 같은데요.
“거의 없죠. 생산·개발하는 비용을 다 포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목표가 실험용 멤브레인 시장은 아니기 때문에 멀리 내다보고 가는 겁니다.” 


✚ 개발 과정은 어떤가요?
“국내에 멤브레인을 만드는 회사들은 제법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오산업용 멤브레인은 앞서 말했던 이유들로 아직까지 없습니다. 실험용 멤브레인도, 진단키트용 멤브레인도 우리가 처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열심히 테스트 중이고요.”


✚ 내딛는 모든 걸음이 역사겠군요.
“이 과정이 무엇보다 쉽지 않은 건 선례가 없다는 겁니다. 기존 해외제품은 5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업체들이 만들고 있습니다. 우린 1년 만에 그걸 국산화했는데, 그 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해도 어디 고민을 털어놓고 컨설팅받을 데가 없었어요.”


✚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하셨나요?
“우리끼리 부딪쳐 돌파하는 방법 말곤 딱히 다른 방법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해외논문 찾아보고, 분석해보고…. 그렇게 걸어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래야 하고요.”


✚ 개척자의 길이네요.
“멤브레인 시장 규모는 무척 큽니다. 저희 움틀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시장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런 성장 가능성과 국산 멤브레인이 필요하다는 니즈를 확인해서 창업까지 이른 겁니다. 혼자였다면 용기를 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 도움을 받는 곳이 있나요? 임직원 창업 지원 프로그램 얘긴가요?
“산기평 소속으로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에 창업이 가능했던 거죠. 석사 2년, 현장에서 3년, 각종 과제를 수행하면서 지나온 10년 동안 산업을 바라보면서 느낀 사명감과 의무감 덕에 아무도 넘지 못한 시작점을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셀트리온에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요.”

✚ 셀트리온이요?
“인천 송도에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스타트업 파크’가 있습니다. 거기엔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적지 않은데, 움틀은 셀트리온이 지원하는 인큐베이션 과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나중엔 움틀이 만든 멤브레인을 셀트리온에 납품할 수도 있겠군요.
“셀트리온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바이오산업용 필터를 납품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 목표를 위해 앞단계인 실험용부터 도전한 거고요.”


✚ 바이오 대기업에 납품하는 게 최종 목표인가요?
“사실, 우리가 성공하면 우리가 얻는 실익도 있지만 저는 그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바이오의약품 시장, 진단기기를 쓰는 모두에게 편익이 돌아갈 겁니다. 그렇게 되면 국가경쟁력에도 이바지할 수 있고요. 저는 절대로 우리만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 창업한 게 아닙니다. 꼭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개척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한가지만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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