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전략 편 한국 웹툰 플랫폼
체면 구긴 일본 만화의 선택은…

카카오, 네이버, NHN. 한국 온라인 시장을 평정한 이들은 일본 만화시장에서도 격돌하고 있다. 라인망가(네이버), 픽코마(카카오), 코미코(NHN) 등 웹툰 플랫폼을 통해서다. 이들 셋은 일본 디지털 만화 플랫폼 1~3위를 점유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세 웹툰 플랫폼은 일본 만화시장이 성장해온 ‘유통 방정식’을 깨부수면서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과연 한국의 웹툰 플랫폼은 일본 만화 시장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자존심 강한 일본 만화업계는 어떻게 반응할까. 더스쿠프(The SCOOP)의 OTT 시대와 웹툰의 길 두번째 이야기 ‘일본 진출한 한국 웹툰의 꿈’ 편이다. 한정연 칼럼니스트가 분석했다. 


[시리즈 목차]
1편 : 일본 만화업계 자화상과 디지털 
2편 : 일본 진출한 한국 웹툰의 꿈 

카카오, 네이버, NHN은 일본 만화시장이 성장해온 ‘유통 방정식’을 깨부수며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일러스트=더스쿠프 포토]
카카오, 네이버, NHN은 일본 만화시장이 성장해온 ‘유통 방정식’을 깨부수며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일러스트=더스쿠프 포토]

현재 일본의 디지털 만화 플랫폼 1~3위는 라인망가(네이버), 픽코마(카카오), 코미코(NHN)이다(2020년 6월 기준). 흥미롭게도 모두 한국 웹툰 플랫폼 운영사다. 여기에 대항해 일본 메이저 출판사 고단샤가 만든 통합 만화잡지앱은 자사와 계약한 작가들의 만화만 서비스하는 폐쇄형 플랫폼이다. 

한국 디지털 만화시장의 역사를 보면, 폐쇄형 플랫폼은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는 데 실패했다. 이런 점에서 폐쇄형을 선택한 일본 메이저 만화출판사들이 ▲잡지 연재 ▲단행본 발간 ▲애니메이션·드라마·영화에 원작 제공이란 만화 생태계에서 앞으로도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일본 만화업계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는 사례는 픽코마 플랫폼을 운영하는 카카오재팬 김재용 대표의 인터뷰에서 찾을 수 있다. 김 대표는 2020년 9월 매경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픽코마에서 서비스하는 3만4000여개 작품 중 웹툰은 400여개로 전체의 2% 미만이지만, 매출은 픽코마 전체의 35%를 차지한다. 2020년 2분기 웹툰 작품 거래액은 전분기 대비 2.3배, 전년 동기 대비 4.3배 성장했다.” 픽코마가 일본 만화시장의 주도권을 거머쥐었다는 얘기로 들린다. 


이런 점 때문에 고단샤는 자신들이 주역이 될지 아니면 조연으로 비켜설지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다시 김재용 대표의 인터뷰 내용(2018년 이코노미조선)을 보자. “고단샤가 처음엔 픽코마에 3~4개 작품만 공급하다가 성과를 확인하고는 100개 작품을 공급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100개 작품을 한꺼번에 받지 않고 잘할 수 있는 작품만 하나씩 늘려나가겠다고 했다.” 이미 3년 전 고단샤는 ‘픽코마’를 선택했고, 그나마도 거절당했다는 얘기다. 

1회에서 밝혔듯(더스쿠프 468호 일본 망가 ‘한국화’), 2020년은 일본 출판만화의 최고점이자 본격적인 디지털 전환의 첫해였을 가능성이 높다. 바꿔 말하면, 조만간 시장 축소가 진행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일본 출판만화의 한축이자 신인작가 공급을 맡고 있는 잡지만화는 고사했다. 다른 한 축인 단행본 시장이 유례없이 다시 성장하는 것은 만화잡지가 없어도 단행본이 팔린다는 공식이 완성됐다는 의미이고, 이는 또 ‘디지털 만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뜻하기도 한다.

 

일본 디지털 만화의 규격은 역시 ‘웹툰(일본에서는 스마툰이라고 부른다)’이 될 확률이 높다. 1~3위 플랫폼, 이를테면 한국 플랫폼들이 하나같이 밀고 있는 콘텐츠 규격이기 때문이다. 

■일본 망가와 한류❶ 유통의 변화 = 그럼 일본 출판만화 시장은 어떤 변화를 겪을까. 필자는 가장 먼저 유통이 바뀔 것으로 본다. 주장을 펼치기 전에 일본 만화 유통시장을 파악해보자. 일본 출판 유통망의 핵심은 도매다. 일본에서 도매의 역사는 곧 서점의 역사였다. 

강명관의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에 따르면, 1620년대 교토에는 서점·출판사가 14개였다. 1710년께 에도(현 도쿄)와 오사카로 파급된 서점은 두곳에서만 359개나 됐다. 에도 시대에는 서점이 전국에 1140개 있었다. 이중에서 제법 규모가 큰 서점은 책을 저자로부터 직접 사들여 작은 서점에 배포하는 ‘도매상 역할’을 자처했다. 

김시덕 서울대 교수는 2016년 4월 경향신문에 기고한 ‘총칼 놓으니, 책을 들더라’ 제하의 글에서 “17세기까지 일본의 중심이었던 교토와 오사카에 서점거리가 생겨나고, 3000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김시덕 교수는 “오노야 소하치의 대본소처럼 가게를 방문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장사꾼들이 책을 등에 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정기적으로 책을 빌려주는 영업 형태도 생겨났다”고 기술했다. 

현대 일본의 서점 유통망은 19세기에 확립됐다. 일본 도서 유통의 중심인 중개회사를 출판상사라고도 부른다. 만화를 포함해서 거의 모든 도서가 도매망을 통해 책을 유통한다. 책이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팔리면 대금을 결제하고, 남은 책은 반품하는 위탁판매를 하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직접적인 영업 활동을 하지 않는다. 도매상이 서점과 함께 판촉 행위를 한다. 

이런 유통망은 잡지의 왕국인 ‘일본스럽게’ 진화했다. 수십년간 잡지 유통망에 도서를 얹는 방식이 유행하면서 1960년대 만화잡지는 일본 도서 유통망의 중심에 섰다. 실제로 일본의 지방서점은 사실상 잡지·만화 매출로만 운영돼 왔다.[※참고: 일본의 만화를 포함한 잡지는 1996년 이후 판매량이 줄었다. 2018년엔 최악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지방서점은 물론 대형서점도 문을 닫는 경우가 속출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보자. 카카오재팬, 라인은 일본 만화시장에 진출하면서 이런 도매 중심의 유통망을 우회하는 전략을 썼다. 디지털 만화는 기본적으로 도매를 거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성과가 있었다.

무엇보다 일본의 도서 유통망을 배제하면서 유통단계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아울러 일본 만화시장에서 새로운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계산도 어느 정도 먹혔다. 일례로 출판과 디지털을 통틀어 6조원대로 늘어난 전체 일본 만화시장에서 네이버와 카카오를 통해서만 2조원가량이 거래되고 있다. 


이들 웹툰 플랫폼들의 일본 내 거래액은 지난해에도 분기로 보면 2배, 연간으로 보면 4배 이상 늘어났다. 이런 실적은 한국식 웹툰 플랫폼이 일본 만화시장의 지각을 흔들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할 만하다. 

■일본 망가와 한류❷ 작가 시스템의 변화 = 한국 웹툰 플랫폼이 불러일으킬 또다른 변화는 ‘작가 시스템’이다. 2021년 8월 기준 네이버 연재작가 평균 연수익은 2억8000만원을 넘겼다. 플랫폼이 작가에게 주는 연재료는 적지만, 웹툰으로 발생하는 광고·구독료 등 매출의 70%를 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스타 작가에게 유리한 엘리트 시스템이다. 

하지만 일본은 만화작가로 데뷔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데뷔한다고 해도 만화잡지로부터 고정 원고료를 받는다. 일본 만화가들은 단행본 2~3권째부터 돈을 제대로 만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첫 작품부터 매출 70%를 배정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면 일본 만화가들에게도 큰 충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제가 있다. 국내 웹툰 플랫폼이 웹툰 작가들에게 요구하는 한 가지는 분량 준수다. 웹툰의 규격인 컬러 채색과 세로 스크롤에 맞는 구성을 지키면서 매주 최소 60컷 이상의 분량을 요구한다. 이는 일본 주간잡지와 같은 분량이다. 한국 웹툰 플랫폼이 일본 만화의 새로운 규격이 되고 원고료도 한국과 동일하게 된다면, 일본 만화가들에겐 얼마나 빨리 분량을 채울 수 있느냐가 경쟁력이 될 것이다. 

카카오의 일본 자회사 카카오재팬은 올해 2월 일본에 ‘스튜디오원픽’이라는 자회사를 만들었다. 카카오재팬 사업전략실장인 스기야마 유키코는 지난 7월 고단샤 소속 잡지인 현대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스마툰 제작사인 스튜디오원픽 운영 방침을 이렇게 밝혔다.

“대표는 한국 만화잡지 편집자 출신으로, 스마툰(웹툰) 경력을 쌓은 사람이 맡기로 했다. 원작은 일본에서 만드는데, 그림은 한국에서 선까지만 그리고, 채색 등 나머지 작업은 동남아시아에서 한다.” 


일본 출판만화 업계는 지금 기로에 섰다. 만화잡지가 멸종된 시대에 단행본 연재라는 리스크를 기꺼이 질 것인지, 아니면 한국계 웹툰 플랫폼을 만화잡지의 대체재로 삼을지 선택해야 한다. 3년 전 카카오재팬의 ‘픽코마’에 자사 작품 100여종을 유통해달라고 제안했던 일본 최고의 메이저 출판사 고단샤는 한국계 플랫폼들이 장악하게 될 일본의 새로운 디지털 만화 생태계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한정연 칼럼니스트 | Investing.com 기자
 jayhan09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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