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배리어 프리 프렌즈
일방적 장애인식개선 교육 대신
캐릭터 접목한 콘텐츠·교구 개발
‘뿌기’ 통해 장애 인식 바꾸고파

미술학도, 두 번의 자퇴, 초등학교의 특수교사.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온 장훈이(33) 배리어 프리 프렌즈 대표의 이력이다. 그래서일까. 접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키워드 사이에서 장 대표가 종착한 곳은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교육 · 콘텐츠 분야다. 그는 이야기한다. ‘다름’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고. 다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고.

장훈이 대표는 “우리의 캐릭터를 통해 장애를 향한 시선이 변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장훈이 대표는 “우리의 캐릭터를 통해 장애를 향한 시선이 변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소년의 세계는 온통 그림뿐이었다. 어린 시절 장난감 대신 붓과 펜을 쥐었고, 당연한 수순처럼 예술고등학교와 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했다. 남들 말대로 소년은 ‘그림에 미쳐’ 살았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뛰어난 예술가들은 숱했다. 소년의 열정은 청년의 고뇌로 변했다. 청년은 더이상 애니메이션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길로 대학에 자퇴서를 제출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교육 · 콘텐츠 사업을 운영 중인 장훈이(33) 배리어 프리 프렌즈 대표다. 그는 자신을 ‘프로자퇴러’라고 소개했다.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고민할 필요도 없더군요. 대학을 자퇴한 후 새롭게 진학한 컴퓨터그래픽 학과도 제 길이 아닌 것 같았어요. 주저 않고 또 학교를 탈출했죠(웃음).” 

두 번의 자퇴 후 장 대표가 선택한 진로는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특수교육이었다. 특수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어머니의 권유에서였다. 이후 2017년부터 장 대표는 부천시 원종초등학교의 특수교사로 일하며 장애아동들의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했다. 

하지만 장 대표가 목격한 교실 안 풍경은 예상 밖이었다. 비非장애인 학생들 사이에서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상대방을 비난하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었다. 장 대표는 그 배경에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고 있는 장애인식개선 교육이 있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5인 이상의 근무자가 있는 모든 기업체와 공교육기관은 의무적으로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장애인식개선 교육이 연 1회에 불과하고, 수업의 질도 떨어진다는 점이다.

“일선 기업체나 학교 모두 일하기에 바쁘다는 이유로 장애인식개선 수업을 간소화해서 진행하곤 합니다. 연 1회뿐인 단발성 교육이라 장애를 향한 지속적인 관심을 유인하기도 역부족인데, 내용마저 부실하니 교육의 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운 현실이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 대표는 3년 만인 2020년 특수교사를 그만뒀고, 다시 고민했다. ‘보다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장애를 향한 잘못된 인식을 바꿀 수는 없을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장 대표는 해답을 그림에서 찾았다. 강사가 일방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기존의 장애인식개선 패턴에서 벗어나 캐릭터를 활용해 대중의 관심을 모아보기로 한 거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누구나 호감을 느낄 만한 캐릭터를 만든다는 건 쉽지 않았어요. 주변 친구들과 가족들의 혹평을 원동력 삼아 캐릭터를 개발해 나갔죠.” 이런 4개월여의 노력 끝에 탄생한 게 바로 배리어 프리 프렌즈의 대표 캐릭터인 ‘뿌기’다. 뿌기는 선천적으로 등껍데기가 분리된 장애를 갖고 태어난 거북이다. 주변의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다. 

배리어 프리 프렌즈의 세상에서 뿌기의 다름은 특별한 능력으로 발휘된다.[일러스트=배리어 프리 프렌즈 제공]
배리어 프리 프렌즈의 세상에서 뿌기의 다름은 특별한 능력으로 발휘된다.[일러스트=배리어 프리 프렌즈 제공]

하지만 뿌기의 ‘다름’은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특별한 능력이다. 뿌기는 자신의 등껍데기를 과일바구니로 쓰고, 농구할 때 점프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장 대표는 “뿌기를 통해 장애인을 수동적 존재로 바라보고, 그들의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장 대표는 지난 1월 부천시에서 진행하는 단비기업 공모에도 도전했다. “처음에는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활동하면서 동영상 자료나 기념품을 제작할 때 뿌기를 활용할 생각이었죠. 하지만 제가 만든 캐릭터가 장애인식개선에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대해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시점에 우연히 단비기업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어요. 무엇보다 캐릭터 활용에 관한 자세한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배리어 프리 프렌즈’는 단비기업에 도전하며 만든 사명社名이다. 장 대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편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자는 ‘배리어 프리’의 의미를 각인시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배리어 프리 프렌즈는 뿌기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먼저, 장애인식개선 분야의 교육용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점에 주목해 동화책을 비롯한 다양한 교구를 출시할 계획이다. SNS를 통해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홍보할 수 있는 캐릭터 영상과 이모티콘도 개발하고 있다.

배리어 프리 프렌즈는 지난 11월 25일 국내 최대의 캐릭터 박람회인 '캐릭터 라이선싱 페어 2021'에 참가했다.[사진=배리어 프리 프렌즈 제공]
배리어 프리 프렌즈는 지난 11월 25일 국내 최대의 캐릭터 박람회인 '캐릭터 라이선싱 페어 2021'에 참가했다.[사진=배리어 프리 프렌즈 제공]

캐릭터 사업은 이미 진행 중이다. 배리어 프리 프렌즈는 홈페이지를 통해 뿌기의 캐릭터가 그려진 필통 · 노트 · 마스크 등을 판매하고 있다. 물품의 재질부터 소재, 규격, 프린트 방식까지 장 대표가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익히고 선정한 결과물이다. 

장 대표는 향후 ‘남들보다 훨씬 긴 귀를 가졌지만 소리를 듣지 못하는 토끼(죠죠)’,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고양이(윙크)’ 등 새로운 캐릭터를 활용한 상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를 통해 배리어 프리 프렌즈만의 세계관을 확장해 나갈 생각이다. 

장 대표는 “지금의 목표는 우리의 캐릭터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며 “뿌기와 친구들을 통해 장애를 향한 시선이 변화하고, 편견이 사라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배리어(장벽), 프리(자유로운), 프렌즈(친구). 장애가 벽이 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뿌기의 여정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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