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조 파업 본질은 ‘사회적 합의’ 이행
합의 잘 지켜지지 않고, 노사 간 오해도
중재자 역할 자처한 정부는 보이지 않아

2021년에만 벌써 네번째다.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의 총파업 얘기다. 한쪽에선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비난이 나오지만, 다른 한쪽에선 “오죽하면 그러겠냐”는 반박도 나온다. 실제로 양쪽의 주장은 나름의 설득력이 있고, 근거도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건 ‘중재자’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들은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다. 더스쿠프가 택배 대란과 정부책임론을 취재했다. 

택배 파업을 둘러싼 시각은 양극단에 쏠려 있다.[사진=뉴시스]
택배 파업을 둘러싼 시각은 양극단에 쏠려 있다.[사진=뉴시스]

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조(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가 12월 28일 파업에 돌입했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이날 경기 CJ대한통운 성남터미널에서 열린 출정식을 통해 “국민들께 사과한다”고 밝히면서도 “하지만 파업의 책임은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은 CJ대한통운에 있다”고 강조했다. 

파업에는 CJ대한통운 택배기사(총 2만여명) 노조원 2500명 가운데 쟁의권이 있는 조합원 1700여명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엔 파업을 지지하는 비조합원들도 동참하고 있어 하루 평균 50만건의 택배를 배송하는 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CJ대한통운 하루 배송량의 20% 수준이다. ‘택배 대란’ 우려가 쏟아지는 이유다. CJ대한통운본부의 총파업이 택배노조 총파업을 포함해 올해 들어서만 네번째니 그럴 만도 하다. 

한편에선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생각할 게 숱하다. 택배노조가 “국민들께 사과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파업을 강행할 만한 이유도 있고, 택배사의 반박에도 나름의 근거가 있다.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관점❶ 약속 불이행 = 시계추를 파업의 단초가 된 2020년 12월로 돌려보자. 당시 택배노동자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 당일배송•심야배송 등이 경쟁적으로 생기고, 택배물량이 급격히 늘면서 택배노동자들의 업무 강도는 갈수록 세졌다. 그런 와중에 과로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는 이들이 생겨났다. 소비자들이 ‘구매’ 버튼만 누르면 전달받는 택배시스템이 택배노동자들을 사선死線으로 내몬 셈이었다.

다행히 ‘택배노동자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자는 여론이 조성됐고, 이를 발판으로 2020년 12월 택배노조와 택배사, 정부, 소비자단체가 포함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탄생했다. 노사민정勞使民政이 함께 논의하자 곧바로 성과도 나왔다. 2021년 1월 8일 택배법 혹은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법으로 불리는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 법은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막기엔 부족했다. 택배노동자들이 택배를 보내는 본업이 아닌 ‘분류작업’을 계속한다면 근무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배노조는 2021년 1월 총파업을 단행해 “분류작업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했고, 노사는 ‘사회적 합의’에 성공했다. 이 합의엔 택배 분류작업을 택배노동자에게 전가하지 않고, 택배사가 부담하기로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합의가 지켜졌다면 또다른 갈등이 발생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렇지 않았다.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고, 택배노조는 2차 파업(2021년 6월 9일)에 돌입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택배사들이 여전히 택배노동자에게 분류작업을 강요하고 있다. 1월에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

8일간의 파업 끝에(16일 파업 종료) 6월 22일 ‘2차 사회적 합의’가 나왔다. 이 합의엔 ▲2022년부터 택배기사에게 분류작업을 시키지 않을 것 ▲주 60시간 근무 ▲정부의 합의 내용 이행 감시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와 함께 분류작업을 택배사가 부담할 수 있도록 택배비를 상자당 170원 인상(4월)했는데, 이를 ‘택배노동자 처우개선’에 쓰기로 합의했다. 

이번에도 합의를 지키면 갈등을 빚을 일이 없었지만 ‘쳇바퀴 돌듯’ 똑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2차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지 4개월이 흐른 2021년 10월 노조 측은 “택배사가 택배비 인상분을 이윤으로 남기고 있다”면서 “‘택배노동자 처우개선’에 쓰기로 한 합의를 어겼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노조 측은 ▲택배 단가(ASP) 상승 ▲CJ대한통운 3분기 실적 증가 등을 꼽았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택배사가 택배비 인상분을 활용해 이윤을 축적한 건 합의 내용을 어기는 것”이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따라 택배노조는 신선식품의 배송을 거부하는 방법으로 부분파업(3차)을 실시했고, 그럼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지난 12월 28일 총파업(4차)을 단행했다. 결국 1~4차 파업 모두 택배사가 두차례에 걸친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터졌다는 게 택배노조 측의 입장이다. 택배사에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관점❷ 노조 일방적 주장 = CJ대한통운 측은 노조의 주장을 “근거 없는 수치와 자료를 기반으로 한 일방적인 주장”이라면서 정면 반박하고 있다. CJ대한통운 측은 “택배비 인상분은 170원이 아닌 140원이고, 택배비 인상분의 50%가량이 택배기사의 수수료로 배분되고 있다”면서 “‘사측이 초과이윤을 가져가고 있다’는 노조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택배비 인상분의 상당 부분을 택배노동자들이 가져가는데 무슨 말이냐는 거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에는 정부가 중재자로 포함돼 있다.[사진=뉴시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에는 정부가 중재자로 포함돼 있다.[사진=뉴시스]

회사 관계자의 말을 더 자세하게 들어보자. “노조 주장대로 택배비 인상분이 사측 이윤으로 귀결됐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이익이 났어야 한다. 영업이익이 증가한 데는 적자 부문의 계약해지도 포함돼 있어서 단순히 ‘택배비 인상분=영업이익 증가’로 해석하면 안 된다.”

이 지점에선 따져볼 게 있다. 노조는 “사측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측의 반박에도 논리적 근거가 충분하다는 점이다. 더구나 택배비 인상분의 상당 부분이 택배노동자들의 임금을 끌어올렸다는 걸 노조가 몰랐을 리도 없다. 그렇다면 노사는 왜 소통하지 못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CJ대한통운과 택배노동자의 법적 관계는 노사가 아니다. 중간에 대리점이 끼어 있어서다. 이 때문에 오해가 있어도 소통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더구나 원청과 노동자 사이엔 정보의 불균형도 있고, 힘의 차이도 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중재자’인 정부의 역할이다. 더구나 택배업은 소비자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참고: 실제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엔 정부가 중재자로 포함돼 있다. 또한 ‘2차 사회적 합의’엔 정부가 ‘사회적 합의의 이행을 감시’하도록 명시돼 있다.] 

■관점❸ 정부는 뭐 했나 = 하지만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다. 택배사와 택배노조가 극단적인 갈등을 빚고 있지만, 아무런 역할도 하고 있지 않다는 거다. 좀 더 구체적으로 꼬집으면,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가 2021년 10월 택배비 인상분 170원을 둘러싼 문제를 제기했을 때부터 최근 총파업을 단행할 때까지 정부의 역할은 사실상 없었다. 싸움만 벌어지면 얼굴을 알리기 위해 현장에 나타나던 금배지들도 ‘대선 정국’에 빠져 있기 때문인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것도 아니다. 이해당사자들이 도출한 사회적 합의를 원칙대로 이행만 하고, 그 성과를 제대로 공유한다면 택배사와 택배노조가 다툴 일도 없다. 

택배 파업을 바라보는 여론의 반응은 두가지다. 한쪽에선 노조의 반복적인 파업을 비판하고, 다른 한쪽에선 택배사가 택배비 인상분을 투명하게 사용하고 그 용처를 공유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꼬집는다. 이런 와중에도 정부와 금배지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그들은 뭘 하는 걸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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