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대희의 性 코너]

골프 천재 타이거 우즈는 간통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 PGA를 평정했던 인물이다. 마지막 라운드 때면 검은색 바지에 붉은 티셔츠를 입는 그가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초록색 재킷을 입는 모습은 한동안 반복됐다. 그런 신화는 간통사건으로 인한 부부싸움으로 깨지기 시작했다.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엽색행각은 병적인 수준이었다. 자신도 간통의 동기가 넘쳐나는 성욕이라고 자백할 만큼 섹스파트너 수가 상당히 많았다. 섹스중독이란 일정기간 성행위가 없으면 심리적으로 초조하고 불안해져서 일상 업무에 전념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관능적 욕구는 다른 사람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정치인에게서 강하게 나타난다. 프랑스 사회당의 당수 최초로 대통령에 오른 프랑수아 미테랑은 충동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남몰래 애인을 두고 주기적으로 밀회하며 불안심리를 잠재웠다.

그런데 꼬리가 길면 들통이 나는 법. 그에게 감춰둔 사생아가 있다는 사실이 기자의 추적에 잡혔다. 우리나라 같으면 불신임안이 나왔을 텐데, 프랑스는 잠잠했다. 프랑스에서 부인 외 여자친구를 두는 것쯤은 일반적 관행으로 스캔들에 끼지도 못했던 모양이다.

프랑스의 또 다른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도 성추문에 시달렸다. 이전 부인이 낳은 아들 세명을 둔 사르코지가 역시 아들이 있던 카를라 브루니라는 미모의 누드패션모델을 대동하고 국제 외교무대에 버젓이 나섰던 것이다.

브루니는 자신의 알몸이 잡지를 통해 만천하에 알려진 상태에서도 사르코지를 수행하고 이집트에 방문했다. 퍼스트레이디라는 프리미엄 때문이었는지 그녀가 가수로 변신해 부른 ‘누군가 나에게 얘기했다’는 타이틀의 음반은 12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 역시 프랑스 사람들은 개인사의 일부로 가볍게 넘겼다.

극도의 불안감이 섹스중독 불러

중국 관련 뉴스에서 종종 등장하는 그림은 베이징의 천안문에 걸려 있는 마오쩌둥毛澤東의 근엄하고 자애로운 모습이다. 교사 출신인 마오쩌둥은 중국의 혼란기에 출생했다. 지주들의 노동력 착취에 반발해 자본주의 정치 색채를 지우는 농민해방운동에 투신한 그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중국의 국부國父다.

그는 14세 때 자신보다 6세 나이가 많은 시골처녀와 결혼했다. 하지만 그는 성년이 되자 본처를 버리고 자신이 이끌던 게릴라 부대 미모의 여성 통역 우광웨이吳光維와 동거하며 유격전을 이끌었다. 병력과 화력면에서 열세였던 그의 부대는 항일전은 물론이고 미국이 제공하는 신식무기로 무장한 장제스(蔣介石)군과 마주치면 게릴라식 전술을 썼다.

몇 차례 총을 쏜 뒤 도망치는 것을 반복한 것이다. 병사들이 흘린 피가 강을 이뤘던 대장정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했다. 마오쩌둥은 언제 급습당할지 모르는 긴장상태에 살았다. 여기서 기인한 불안심리를 잠재우기 위해 그는 섹스를 활용했다. 정복지에서 만난 연극배우, 부하장병의 아내 등 신분고하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침대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렇게 문란한 성생활로 그의 선악 개념은 자신도 모르게 모호해졌다. 프랑스 대통령처럼 한 사람의 연인을 정해두고 사랑을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수많은 여성과 난잡한 성관계를 갖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성병에 결렸고, 설상가상으로 생식불능이라는 불치의 병에 빠졌다.

세수를 하고 이를 닦는 것을 생략한 게릴라 시절의 습관 때문에 그는 성관계를 마친 뒤에도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지 않았다. 그가 사용하는 수건에는 늘 성병의 원인이 되는 균이 득실거렸다. 스스로 성욕을 참는다면 40여일 견딜 수 있다고 했던 것으로 미뤄 짐작했을 때 마오쩌뚱은 섹스중독자였던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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