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사고 왜 끊이지 않나 보니
다단계 하도급, 최저가낙찰제에
유명무실한 안전관리자 제도까지
고질적 병폐 없애지 않으면 백약 무효
정부와 정치권, 안전 책임 의지가 중요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고다.” HDC현산의 신축 아파트 벽면 붕괴사고를 두고 나오는 말이다. 그 때문인지 파문도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정몽규 HDC현산 회장은 이 사고에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사퇴했다. 정치권은 건설업계의 반발에 묵혀놨던 건설안전특별법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렇다면 이를 계기로 건설현장은 뭔가 달라질까. 아니다. 건설현장이 안전할 수 없는 구조적 원인은 따로 있어서다. 

건설현장 사고를 막으려면 다단계 하도급, 최저가낙찰제, 유명무실한 안전관리제도와 함께 정부ㆍ건설사ㆍ노동자의 안전의식부터 손봐야 한다.[사진=뉴시스]
건설현장 사고를 막으려면 다단계 하도급, 최저가낙찰제, 유명무실한 안전관리제도와 함께 정부ㆍ건설사ㆍ노동자의 안전의식부터 손봐야 한다.[사진=뉴시스]

건설사 CEO들이 취임식에서 한결같이 강조하는 말이 있다. ‘안전’이다. 그들이 사고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이번에야말로 건설현장을 안전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한 사례도 숱하다.

참혹한 아파트 벽면 붕괴사고로 궁지에 몰린 HDC현대산업개발의 정몽규 회장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채 회장직을 사퇴했다. “전국 건설현장의 안전을 진단하고, 우려와 불신의 고리를 끊겠다.” 그의 말대로 건설현장은 정말 안전해질까. 

과거는 현재의 창이고, 현재는 미래를 보여준다. 숱한 사고 앞에서 건설사 CEO들이 사과와 다짐을 거듭했지만, 건설현장은 안전해지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2020년 기준)을 보자. 건설업의 전체 노동자 대비 재해자 비중은 24.7%로 전체 업종에서 가장 높다. 건설업 재해 사망자(567명)는 전체(2062명)의 27.5%에 달한다. 특히 건설업종 내 사망자의 80.8%(458명)는 사고성 사망자다. 

주목할 점은 건설업 노동자 수 대비 재해자와 사망자의 비중이 2015년 이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거다. 건설 노동자 1만명당 사망자 비율은 2015년 1.47%에서 2020년 2.48%로 1.01%포인트 올랐다.

이 비율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기준 건설업에선 매월 2233.3명이 재해를 입고, 47.3명이 사망했다. 연으로 따지면, 재해자와 사망자가 각각 2만6799명, 567명이다. 2021년 3분기 누적 재해자와 사망자가 각각 2만1672명과 449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해자와 사망자는 전년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수많은 CEO와 건설사들이 ‘더 안전한 건설 환경을 만들겠다’고 외쳤지만, 실상은 그 반대란 얘기다. 

정부와 건설사들이 큰 사고가 터질 때마다 각종 안전대책을 내놓는데도 왜 이런 걸까. 이쯤 되면 근본적이면서도 고질적인 문제가 뭔지 살펴봐야 한다. 사실 그 고질병이라는 게 새삼스럽진 않다. 건설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얘기여서다.  

■고질병❶ 다단계와 최저가 = 무엇보다 다단계 하도급은 오랜 병폐다. 다단계 하도급은 원청과 전문건설업체 간 1차 하도급 외엔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2차, 3차 하도급이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최저가낙찰제의 폐해까지 겹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발주처는 가장 싼 가격을 써낸 곳에 공사를 맡긴다. 너무 낮은 가격에 일을 맡기면 부실공사로 이어질 수 있어 공공공사에는 하한선(2015년부터 공사 예정가의 82% 이상 적용)을 뒀지만, 민간공사엔 그마저도 없다. 건설사들이 ‘공사기간(공기) 단축’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꼽는 이유다.

싼값에 공사를 맡았으니, 공기를 줄이지 않으면 많은 수익을 남길 수 없어서다. 비를 맞으면서도 콘크리트를 쏟아붓고, 양생(말리기)이 덜 된 콘크리트 위로 아파트 층을 쌓아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건설 노동자의 말을 들어보자. “최저가낙찰제의 폐해가 다단계 하도급과 얽히는 순간 공기는 더 단축된다. 다단계 하도급을 통해 실제 공사업체가 받은 공사비는 한없이 적고, 타산을 맞추려면 공기를 최대한 단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안전을 생각할 겨를이 있겠는가.” 

■고질병❷ 법과 현실의 괴리 = 고질병은 또 있다. 법ㆍ제도와 현장의 괴리는 안전성을 갉아먹는 요인 중 하나다. 대표적인 건 유명무실한 안전관리자 제도다. 현행법에 따르면 일정 규모 이상의 공사현장엔 안전을 책임질 안전관리자를 둬야 한다. 하지만 안전관리자에게 노동자의 안전을 지도ㆍ감독할 만한 권한이나 독립성은 없다. 현행법이 안전관리자의 고용을 시공사에 맡겼기 때문이다. 

현장 안전관리자의 신분이 대부분 계약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공사는 계약직인 안전관리자의 말을 무시하기 일쑤고, 계약직 안전관리자들이 또다른 일감을 수주하려면 시공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바로 옆에서 안전관리자가 지켜보고 있는데도, 현장노동자가 위에서 떨어지는 돌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2021년 5월 H건설 공사현장)가 벌어지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고질병❸ 안전불감증의 고리 = 구조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정부도, 건설사도, 심지어 노동자들도 안전은 뒷전이다. 먼저 현장을 감독해야 할 정부(국토교통부)는 뒷짐을 지고 있기 일쑤다.

최근 HDC현산 아파트 벽면 붕괴사고로 긴급하게 열린 건설안전 점검회의에서 노형욱 국토부 장관이 강조한 말은 정부의 인식 수준을 가늠하게 한다. “건설사업이 국민 신뢰를 회복하려면 단기적인 이익과 공사기간 단축보단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본원칙을 세워야 한다.” 언뜻 들어도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은 채 원론만 강조하고 있다. 국토부가 감독기관으로서 뭘 잘못했는지를 자성하는 발언도 없었다. 

같은 맥락에서 국토부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일례로 이번 아파트 벽면 붕괴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아파트 벽면 타워크레인 설치’ 문제도 관련 노조가 “심각한 안전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해 왔는데, 국토부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참고: 아파트 벽면 타워크레인 설치 자체는 문제가 없다. 건설사들이 공기 단축을 위해 대충 설치할 것을 요구하는 게 문제다. 노조는 이를 개선해 달라고 요구한 건데, 국토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건설현장 노동자의 집단(노조)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인 만큼 안전을 최우선으로 요구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한 노조 관계자는 “노조 조합원들 중에는 안전을 위협할 만한 현장의 요소들을 제거해 달라고 건설사에 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이용해 건설사와 ‘거래’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면서 “아무리 먹고사는 문제라고는 하지만, 안전문제까지 그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참담한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정치권과 국토부는 이번 HDC현산 아파트 벽면 붕괴사고를 계기로 건설안전특별법을 또다시 꺼내 들었다. 이 법은 건설의 모든 공정과 주체에 안전 책무를 부여하는 게 핵심이다. 2020년 5월 발생한 이천물류센터 화재사고 이후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이 제정을 추진했지만, 건설업계의 반발로 뒷전으로 밀린 법안이다.

중요한 건 건설안전특별법 하나로 건설업계가 안전해질 수 있느냐는 거다. 안타깝게도 앞서 언급한 고질병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 법안은 무용지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참고: 건설안전특별법이 건설업계의 반발을 뚫고 국회를 통과할 수 있느냐는 또다른 문제다.] 

건설안전특별법은 이천물류센터 화재사고 이후 등장했지만, 건설업계의 반발로 제정되지 못했다.[사진=뉴시스]
건설안전특별법은 이천물류센터 화재사고 이후 등장했지만, 건설업계의 반발로 제정되지 못했다.[사진=뉴시스]

그렇다고 1월 27일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모든 기대를 걸기도 어렵다. 50억원 미만 공사엔 2년 후인 2024년부터 이 법이 적용돼서다. 그 이전까지 소규모 건설현장은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제외된다. 건설 노동자 중 사고성 사망자(전체 882명)의 절반가량(49.2%ㆍ434명)이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걸 감안하면 사각지대는 굉장히 넓다. 

법 하나 바꾼다고 달라질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최고안전책임자(CSO)라는 직책을 만드는 건설사들도 많지만, 이 역시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란 지적이 많다. 좀 더 전문지식을 갖춘 책임자를 둬서 만전을 기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오너나 최고경영자의 책임 면피용 혹은 방어막에 그칠 공산이 커서다.

결국 공사현장의 안전을 담보하는 방법은 하나다. 현장에 뿌리박혀 있는 고질병을 하나씩 없애는 거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이숙견 활동가는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고, 그러다보니 법 개정 하나 혹은 제도 하나에 매달리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국민의 안전만은 반드시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정부와 정치권에 있다면 쉽지 않은 길이라도 가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이는 일부의 주장이 아니다. 산업현장의 수많은 안전사고를 접해온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해온 것들이다. 이제는 그 조언에 귀를 기울일 때도 됐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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