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의 재무설계

지출을 통제하는 건 쉽지 않다. 한창 소비에 재미를 붙인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쓰고 싶은 거 다 쓰고 남는 돈을 모으겠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돈을 모을 수 없다. ‘대출은 대출대로, 저축은 저축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말을 믿었다간 큰코만 다칠 게 뻔하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지출을 관리한다고 해도 지출 규모가 계속 늘어나면 통제하기 어려워진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마이너스 통장으로 지출을 관리한다고 해도 지출 규모가 계속 늘어나면 통제하기 어려워진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소기업 직장인 5년차인 안서희(가명·30)씨는 요즘 다들 그렇듯, 지갑에 현금 대신 카드를 들고 다닌다. 그것마저 귀찮을 땐 스마트폰 하나만 갖고 나간다. 그걸로도 충분히 쇼핑을 할 수 있어서다. 

문제는 그런 습관이 계속될수록 경제관념이 약해진다는 거다. 내 씀씀이가 얼마나 커졌는지 무뎌진 지 오래고, 통장에 잔액이 얼마 있는지도 잘 확인하지 않는다. “월급 받은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돈이 있을 거란 생각에 사고 싶은 건 대부분 큰 고민 없이 사는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결제해야 할 카드값이 매월 늘어나더라고요.” 

그래도 안씨는 걱정이 없었다. 그동안 카드값을 연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출이 좀 있긴 하지만 그럭저럭 신용 관리는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한도 내에서 사용해왔거든요. 저축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실제로 안씨는 미래를 위해 매월 100만원씩 적금을 붓고, 펀드에도 20만원씩 투자하고 있다. 20만원 내에서 주식도 하고 있다. 누군가는 그런 안씨를 보고 “차라리 대출부터 갚으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는 ‘대출은 대출대로, 저축은 저축대로’가 맞다고 생각해 그런 기조를 유지해왔다. 고정지출이 줄면 남는 돈으로 마이너스 대출을 갚아왔고, 상여금도 적절히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지인들의 충고와 조언에 상담을 요청해왔다.

Q1 지출구조

안씨는 월 266만원을 번다. 여기에 명절과 여름 휴가비로 나오는 상여금이 총 150만원이다. 고정적인 월급을 기준으로 그의 한달 소비 생활을 살펴보자. 안씨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서 생활비로 월 25만원씩 드리고 있다.

용돈은 월 55만원씩 쓰는데, 직장에서 점심이 제공되지 않아 점심 식비와 커피값 등으로 쓰는 게 대부분이다. 교통비는 급할 때 한번씩 택시를 이용하는 탓에 11만원가량 쓰고, 통신비도 기기 할부금이 남아 7만원씩 빠져나가고 있다. 여기까지 98만원을 쓴다.

비소비성지출도 보장성보험 1만원, 연금저축펀드 20만원, 주식투자 20만원, 적금 100만원이 전부다. 소비성지출까지 포함하면 총 239만원으로 적절하게 가계부를 운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씨의 가계부엔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다. 바로 카드값이다. 그는 최근 치과치료비를 4개월 할부로 결제했고, 안마의자도 10개월 할부로 구입했다. 겨울 옷도 대량 구매했는데, 이 역시 6개월 할부로 샀다.

얼마 전엔 아버지 생신이라 가족외식을 했는데 그때도 안씨가 카드를 긁었다. 그렇게 비정기적으로 쓴 돈이 한달 평균 139만원으로 한달 총 지출이 378만원에 이르고 있었다. 266만원 중 27만원이 남는 게 아니라 112만원이 구멍 나는 가계부였던 거다. 

Q2 문제점

안씨는 “얼마 전 아버지 생신이 있었고, 겨울 옷을 장만하느라 그랬다”고 항변했다. 그래서 그가 사용한 최근 3개월치 카드값을 점검해봤다. 그랬더니 3개월 동안 쓴 비정기지출이 416만원이었다. 또 그보다 3개월 전엔 핸드백을 산다고 388만원을 썼다. 이번에만 그런 게 아니라 카드값이 증가세를 타고 있었던 거다. 게다가 설날 연휴 중엔 지출이 더 늘어날 게 뻔하다. 

상여금으로 150만원을 받고 있지만 이런 소비를 감당하기엔 어림도 없다. 그래서 안씨는 리볼빙(revolving·신용카드 이용금액의 일정 비율만 갚으면 나머지 금액은 다음 결제 대상으로 연장) 서비스와 마이너스 통장으로 카드값을 해결해 왔다. 하지만 비정기지출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어서 시급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머잖아 손쓸 수 없게 될 공산이 크다. 

Q3 해결점

카드값을 줄이는 건 다른 방법이 없다. 신용카드와 손절하고 체크카드를 발급받아 지출을 통제해야 한다. 안씨는 한달 단위가 아니라 주 단위로 지출 목표를 설정하기로 했다. 소비의 즐거움에 빠져버린 사람에게 한달 단위로 처방을 내리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서다. 

안씨는 ‘정기지출 90만원, 비정기지출 30만원’을 목표로 세웠다. 이를 4주로 나눠서 일주일에 정기지출 22만5000원, 비정기지출 7만5000원만 쓰기로 하고, 각 소비통장에 입금해 지출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다면 월 지출은 어떻게 줄여야 할까. 다행히 안씨는 매월 100만원씩 적금을 부어놨던 덕분에 5100만원의 예금이 있었다. 그걸 해지해 신용카드 할부금과 휴대전화 기기값을 모두 갚았다. 5100만원 중 남은 3614만원은 미래를 위해 결혼자금(3000만원)과 비상금(614만원)으로 따로 빼놓았다.

다시 가계부를 보자. 할부금을 털어낸 덕에 통신비는 3만원 절약할 수 있게 됐다. 정기지출 목표액 90만원에 맞추기 위해 용돈도 5만원 줄이고, 139만원이던 비정기지출도 30만원만 쓰기로 했다. 

이 때문에 소비성지출에서 최종적으로 줄인 건 117만원(통신비 3만원+용돈 5만원+비정기지출 109만원)이다. 빚을 청산하기 위해 적금(100만원)을 해지해서 217만원의 여유가 생긴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조정 전 112만원이 구멍 났던 가계부라는 걸 감안하면 실제 새롭게 굴릴 수 있는 돈은 105만원이다. 

금융상품으로는 일단 주택청약저축(2만원)을 추가했다. 저축 비중을 높이기 위해 적금과 재형저축엔 각각 60만원, 20만원씩 적립하기로 했다. 2000만원이 쌓이면 확실한 투자 상품에 분산투자할 계획이다. 적립식펀드(20만원)도 새로 마련했다. 남는 3만원은 CMA를 활용하기로 했다. 이제야 비로소 안씨는 지출을 통제해 저축 여력을 늘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품게 됐다. 

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
shnok@hanmail.net | 더스쿠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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