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양주승 뉴트로협동조합 이사장
LP레코드 활용한 카페 ‘엘피갤러리’ 오픈
부천시 생활문화예술 플랫폼 구축

LP레코드, 턴테이블, 진공관 앰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화 아이콘이자 이젠 보기 힘든 아날로그의 상징이다. 흥미롭게도 이를 활용해 카페 ‘엘피갤러리’를 만들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곳이 있다. 부천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인 등 30명이 힘을 합쳐 설립한 뉴트로협동조합이다. 이 조합의 목표는 많은 사람에게 신세계와 같은 생활문화예술 플랫폼을 선물하는 것이다.

뉴트로협동조합은 생활문화예술 플랫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천막사진관]
뉴트로협동조합은 생활문화예술 플랫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천막사진관]

이른 더위가 찾아왔던 지난해 6월 10일 경기도 부천시 심곡동. 안토닌 레오폴트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가 이날 개업한 카페 안을 아름답게 채웠다. CD나 파일과 같은 디지털 음원으로 듣던 소리와는 달랐다. LP레코드와 진공관 앰프를 통해 흘러나온 음악은 따뜻하면서도 웅장했다. ‘문화예술도시’ 부천을 대표하는 예술인들이 모여 만든 뉴트로협동조합의 카페 ‘엘피갤러리’는 이렇게 막을 올렸다.

뉴트로협동조합은 2020년 11월 설립됐다. ‘21세기 온고지신’을 모토로 오은령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천지회장, 김봉희 부천미술협회장, 서양화가 최의열·인향봉, 전통음식명인 조영희, 김종옥 사진작가, 전통민화 작가 홍미선 등 내로라하는 문화예술인이 참여했다. 여기에 주민자치회 회장, 무료급식소 대표, 부천시 의인 등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 30명이 힘을 보탰다.

각양각색의 문화인을 하나로 묶은 건 음악이었다. 양주승 이사장(부천타임즈 대표)은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라면서 “음악을 통해 문화를 즐기고, 소통할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양 이사장의 특별한 이력도 한몫했다. 그는 1970년대 서울 종로와 대학가 음악다방에서 DJ로 활동했다. 당시만 해도 문화의 유일한 소통창구나 다름없던 음악다방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의 매력에 푹 빠졌다. LP레코드를 한두장씩 사모으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양주승 이사장은 “DJ로 일하면서 LP레코드를 수집하기 시작했다”며 “그렇게 모은 1만여장의 LP레코드가 협동조합과 엘피갤러리의 큰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엘피갤러리에 자신이 수십년간 수집한 LP레코드 1만여장과 진공관 앰프, 오픈릴 녹음기 등을 선뜻 내놨다.

LP레코드와 음향기기가 가진 자산가치만 1억원이 훌쩍 넘었지만 괘념치 않았다. 복고 문화를 대표하는 LP레코드를 통해 엘피갤러리를 단순히 돈을 버는 카페가 아닌 문화 소통창구로 만들겠다는 의지에서였다. 사실 엘피갤러리를 부천시 심곡동에 오픈한 것도 ‘문화 소통창구’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부천시의 원도심인 심곡동은 30~40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신도심에 비해 문화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했다. 원도심의 문화 갈증을 없애기 위해 엘피갤러리를 굳이 이곳에 세운 셈이다.

양주승 이사장의 말을 들어보자. “엘피갤러리는 돈보단 사회적 가치를 추구합니다. 일반 커피 원두보다 30~40% 비싼 공정무역 인증 원두를 사용하는 이유죠. 엘피갤러리가 자리를 잡으면 수익의 60%를 기부할 계획도 세워놨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가치를 좇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좋은 커피와 특별한 LP레코드, 음향기기를 갖췄지만 처음부터 엘피갤러리의 가치를 알아주는 손님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린 좋은 가치를 추구한다”면서 어필할 수도 없었다. 그걸 판단하고 선택하는 건 소비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엘피갤러리 반경 200m 안에 있는 20여개 카페와의 경쟁에서 버티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였다. 이 때문인지 개업 초반 6개월 동안 엘피갤러리는 위기를 겪었다. 생각보다 가게를 찾는 고객은 많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까지 엘피갤러리를 괴롭혔다.

신상현 뉴트로협동조합 이사(부천시 심곡동주민자치회장)는 “예상과 달리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하면서 카페 경영에 빨간불이 켜졌다”며 “아직까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만의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뉴트로협동조합은 엘피갤러리를 ‘생활문화예술 플랫폼’으로 만들려는 계획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7월엔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간에 맞춰 영화 ‘007시리즈 포스터전’을 열었다. 10월엔 애니메이션 마니아와 어린이를 위해 200점에 이르는 ‘만화영화 LP레코드 전시회’를 개최했다. 지난 1월엔 호랑이의 해를 맞이한 ‘맹호도 민화전’을 개최했다.

양주승 이사장은 “코로나19로 이동이 제한되면서 공간이나 장소에 관한 열망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며 “다양한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엘피갤러리가 사람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문화기지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전시회와 행사를 꾸준히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트로협동조합은 그림·음악·사진·문화콘텐츠 기획과 홍보·출판사업 등의 신사업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뉴트로협동조합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금은 뉴트로협동조합과 엘피갤러리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많아서다. 양주승 이사장은 “조합원으로 함께하는 문화예술인만 수십명”이라며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 사업이 넘쳐나서 고민”이라고 강조했다. 뉴트로협동조합이 만들어갈 신세계가 기대되는 이유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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