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 인터뷰 | 서진우 클루닉스 대표
세계 최초 R&D 전용 클라우드 서비스 론칭
연구용 하드웨어·소프트웨어 5분 만에 구축
국내 R&D 업무 환경 개선 공로로 장관 표창
안드로이드처럼 R&D 분야 표준 플랫폼 목표

클라우드(Cloud)라는 말에 R&D가 붙었다. 이를 합쳐 ‘R&D 클라우드’라 부른다.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간단하다. ‘클라우드’라는 공간에 R&D를 위한 IT서비스를 저장해 놓은 거다. 흥미로운 건 이 놀라운 기술이 국내에서 개발됐다는 점이다. 세계 최초로 ‘R&D클라우드’를 창안한 클루닉스가 그 주인공이다. 20년 전 평사원으로 입사해 R&D클라우드를 직접 개발하고, 대표이사의 자리까지 오른 서진우(48) 클루닉스 대표를 만났다.

서진우 대표는 “인류를 위한 슈퍼컴퓨팅이라는 가치 아래 R&D 업무 환경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서진우 대표는 “인류를 위한 슈퍼컴퓨팅이라는 가치 아래 R&D 업무 환경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최첨단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CEO다. 그는 스마트폰 하나로 언제 · 어디서든 회사의 데이터베이스(DB)에 접속해 원하는 정보를 얻고, 이를 활용해 즉석에서 첨단무기를 만들어낸다.

언뜻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보이지만, 아이언맨의 활약을 뒷받침하는 핵심기술은 현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 ting)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사용자가 여러 종류의 디바이스(기기)를 통해 클라우드에 저장된 데이터에 접근하고, 이를 손쉽게 처리 ·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기술이다. 데이터를 가공 · 응용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인프라를 구축하는 작업으로 이해하면 쉽다.

▲대량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는 서버 ▲데이터를 연산 · 제어 · 보관하는 자원(CPU · 메모리 등) ▲데이터를 가공 · 해석하는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는 운영체제(OS) ▲데이터를 전송하는 네트워크 등을 제공하는 게 클라우드 컴퓨팅의 목적이다.

영화에서처럼 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스마트 팩토리 등 4차산업혁명을 이끄는 신산업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뿐만이 아니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인공지능(AI) · 바이오 · 반도체 · 신소재 등 다양한 산업의 연구 · 개발(R&D)에도 적용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R&D에 특화한 클라우드 컴퓨팅을 선도하는 곳이 국내기업이란 사실이다. 2010년 업계 최초로 ‘R&D클라우드’의 개념을 제시한 클루닉스(Clunix)가 그 주인공이다. 2002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R&D클라우드를 개발한 서진우(48) 클루닉스 대표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 지금은 클라우드 컴퓨팅이 핵심 사업이지만 처음엔 고성능 컴퓨팅 기술을 공급하는 회사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컴퓨팅 기술 중 ‘클러스터링(Clustering)’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여러 대의 일반 컴퓨터를 하나로 묶어 고성능 컴퓨팅을 구현하는 기술입니다. 클루닉스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기술이죠.”

✚ 기존의 고성능 컴퓨팅에서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영역을 확장한 계기가 있었나요?
“앞서 말씀드린 클러스터링은 IT 분야에서도 복잡한 기술로 꼽힙니다. 클러스터링의 토대가 되는 플랫폼을 구성하는 방법도, 이를 이용하는 절차도 매우 복잡하죠. 그렇다보니 보다 빠르고 쉽게 클러스터링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 환경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다행히 2000년대 중반 새로운 IT서비스로 클라우드가 출현하면서 클루닉스도 이와 연계한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었죠.”


✚ 어떤 서비스였나요?
“‘아렌티어(RNTier)’라는 R&D 전용 클라우드 서비스입니다. R&D에 필요한 개발환경을 클라우드에 구축해 연구원들에게 직접 제공하는 서비스인데요. 여기에는 고성능 컴퓨팅을 위한 하드웨어 · 운영체제 · 시스템 솔루션은 물론 다양한 응용 소프트웨어도 포함돼 있습니다.”


✚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시겠어요?
“연구 분야마다, 연구원들의 과제에 따라 개발환경을 구성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가령,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과제를 수행하는 연구원이라면 그 소프트웨어에 최적화한 하드웨어 · 서버 · 네트워크 등을 구축해야 합니다. ‘아렌티어’에선 연구원들이 원하는 설정을 선택하기만 하면 5분 만에 최적화한 개발환경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 스마트폰에서 앱을 클릭하면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아렌티어’는 특정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기까지 필요한 수많은 절차와 기술적 제약을 최소화해 이용자에게 직접적인 편의를 제공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스마트폰의 안드로이드처럼 R&D 분야의 플랫폼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죠.”

✚ ‘아렌티어’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R&D클라우드란 개념이 아예 없었나요?
“네, R&D 영역은 클라우드 시장의 불모지나 다름없었죠. 클라우드 업체들이 특정 산업에서, 특정 연구원이 쓰는 개별적인 개발 환경을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기엔 넘기 힘든 기술적 장벽들이 많았으니까요.”

✚ 그런데도 R&D에 특화한 클라우드 서비스에 관심을 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회사의 뿌리가 각각의 연구 분야에 최적화한 고성능 컴퓨팅 기술을 공급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R&D에 집중한 서비스를 개발하게 됐습니다.”


✚ R&D클라우드가 없던 과거의 연구 환경이 궁금해지는데요.
“과거 연구원들은 본인이 필요한 개발환경을 직접 설계하고 구축해야 했습니다. 연구원들이 IT기술은 물론 슈퍼컴퓨터 분야까지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연구원들이 개발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계산하기 위해선 일반 PC보다 훨씬 큰 워크스테이션(workstation)이 필요했습니다. 달리 말해, 워크스테이션이 설치된 사무실에서만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거죠.”

✚ 연구원들 입장에선 R&D클라우드를 통해 시공간의 제약을 해소할 수 있는 셈이군요.
“맞습니다. 이제는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집이든, 카페든, 산이든 어디에서나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노트북으로 클라우드에 접속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아울러 과거에는 연구원들의 IT분야 지식이 연구과제를 수행할 때 경쟁력으로 작용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슈퍼컴퓨터를 공부하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순수한 연구에 집중하겠다는 것이 최근 젊은 연구원들의 문화인데, 이는 R&D클라우드가 보편화하면서 생긴 변화입니다.”

지난 12월 서진우 대표는 국내 R&D 업무 환경을 개선한 공로로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사진=클루닉스 제공]
지난 12월 서진우 대표는 국내 R&D 업무 환경을 개선한 공로로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사진=클루닉스 제공]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걸어온 만큼 클루닉스 앞엔 ‘최초’라는 수식어가 숱하게 붙어 있다. 업계 최초로 ‘R&D클라우드(2010년)’란 용어를 사용한 곳도 바로 클루닉스다. 그만큼 이 회사가 쌓아온 노하우는 독보적이다. 여기에는 서 대표와 클루닉스가 연구 현장을 누비며 흘린 땀과 눈물이 담겨있다.

“국내에 있는 400여곳의 연구소 중 저희가 안 들어가 본 곳이 없을 겁니다(웃음). 저희는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앞서 ‘진단’부터 합니다. 연구원들이 사용하는 앱이 무엇인지, 연구원이 사용하는 컴퓨터에 해당 앱이 적합한지를 먼저 살펴보는 거죠. 소프트웨어의 경우 저희가 잘 모르면 연구원에게 매달려서사용법을 익힙니다. 그래야 연구원에게 최적화한 개발환경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 R&D클라우드 시장의 개척자로서 그동안 숱한 난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포스코가 저희의 서비스를 이용하기까지 과정이 생각납니다. 처음에는 연구원들의 반발이 심했어요. 기존의 연구 환경에 익숙했기 때문이죠. 포기하지 않고 8개월 동안 포스코의 대표 연구원들을 모두 만났습니다. 그들이 어떤 소프트웨어를 쓰는지, 어떤 환경에서 연구를 수행하는지 일일이 자료를 수집했어요. 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연구 환경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식의 개선이 가능한지 입증해 나갔죠.”


✚ 결과는 어땠나요?
“포스코에 있는 26개의 연구그룹에 클루닉스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포스코의 가장 핵심적인 연구 시스템으로 활용되고 있죠.”

✚ 지금의 서비스(아렌티어)를 대표님이 직접 개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사용자들이 좋은 기술을 보다 편하게, 효과적으로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취미로 (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했죠. 혼자서 디자인하고 코딩하고, 시스템도 설계하다가 제품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아렌티어의 초기 버전이었던 셈이죠.”

✚ 보통 열정이 아니고선 이뤄내지 못할 일 같은데요. 대표님의 원래 꿈도 IT기술자가 되는 것이었나요?
“아닙니다. 저의 목표는 무술가가 되는 것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운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중학생 때 우연히 중국 무술을 접하면서 우슈를 시작했습니다. 선수로 활동하면서 전국대회에 나가 입상도 했었죠.”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때론 기회를 주지만, 때론 절망도 준다. 공교롭게도 그 절망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우슈 선수였던 서 대표는 운동이 아닌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군 복무 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운동을 포기해야만 했다.

✚ 예상치 못한 사고로 운동을 포기해야 했을 때 절망하진 않으셨나요?
“처음에는 꿈을 놓기 싫어 1년 동안 재활에 매달렸죠. 하지만 어느 순간 ‘도저히 안 되겠다’는 한계 같은 게 느껴지더군요. 그후 마음이 되레 편해졌습니다. 꼭 선수가 아니더라도 운동이야 평생 하면 되는 거니까요.”


✚ 그래서 IT분야에 뛰어든 건가요? 운동과는 접점이 전혀 없는 듯한데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무엇을 하든 무조건 대학은 가야 한다는 게 시대적 분위기였습니다. 운동을 반대하셨던 부모님과 겨우 타협을 해서 결정했던 전공이 정보통신 분야였어요. 사고 후 재활을 마친 다음 한 제약회사의 인턴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저의 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전공을 살려보자 마음먹었죠.”

✚ 그래도 새로운 일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부산에 있던 한 IT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운영체제의 일종인 리눅스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회사였는데, 그때 IT 기술을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졌죠. 사장님께 부탁드려 6개월간 회사에서 숙식하면서 밤낮없이 공부에 매달렸어요. 운동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기술을 터득하면서 얻는 성취감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우슈 선수 출신인 서진우 대표는 불의의 사고로 꿈을 포기해야 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사진=천막사진관]
우슈 선수 출신인 서진우 대표는 불의의 사고로 꿈을 포기해야 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사진=천막사진관]

✚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이어갔던 건가요?
“아닙니다. 입사 1년 만에 IMF 외환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직장을 잃었습니다. 고민 끝에 컴퓨터 3대를 들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서울에서 못다 한 공부를 이어가고 싶다는 욕심에서였죠. 그후 인터넷 호스팅 업체를 거쳐 2002년 클루닉스에 입사한 후 지금까지 흘러오게 됐습니다.”

✚ 평사원으로 시작해 대표 자리까지 오른 셈이네요. 회사 최초로 ‘평사원의 신화’를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과거 우슈를 할 때 강도가 높고 어려운 기술을 얻기 위해선 긴 시간 힘든 수련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를 견디고 수용할 수 있는 정신적인 수양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어요. 무술을 하며 익혔던 의식이나 명상법들이 회사 생활을 하면서 수시로 발생하는 새로운 도전과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 평사원으로 시작해 대표 서비스를 개발하신 만큼 자부심도 클 것 같은데요.
“클루닉스의 지향점은 컴퓨팅 기술을 전혀 모르는 일반 연구원들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 환경을 구축하는 겁니다. 고객사로부터 이 가치를 인정받기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죠. 이제는 클라우드가 IT업계의 기본적인 서비스 모델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넓은 시장, 더 많은 고객을 대상으로 한 기술이 등장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클루닉스의 클라우드 서비스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현재 준비 중인 새로운 서비스가 있나요?
“클라우드는 연구기관의 내부에 구축하는 프라이빗(private) 클라우드, 외부에 있는 퍼블릭(public) 클라우드로 나뉩니다. 일단 퍼블릭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인 ‘아렌티어 클라우드’를 상용화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두가지 클라우드를 중개해주는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의 론칭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보안상 중요한 연구 데이터는 대개 프라이빗 클라우드에 구축하는데, 연구를 하다보면 바깥(퍼블릭 클라우드)에 있는 하드웨어 자원을 당겨 써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를 통해 이런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2000년 설립된 클루닉스는 창립 22년 만에 국내 R&D클라우드 업계의 대명사가 됐다. 지난해에는 국내 R&D 업무 환경을 개선한 공로로 장관 표창(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수상했다. 서진우 대표는 “지난 20여년간 ‘기술의 목적은 인류를 이롭게 하는 데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켜온 결과”라며 수상의 의미를 곱씹었다.

“향후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모든 R&D 분야에서 클루닉스의 아렌티어 클라우드가 표준 플랫폼으로 자리 잡도록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앞으로도 ‘인류를 위한 슈퍼컴퓨팅’이라는 가치를 지키며, 고객들에게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뛰겠습니다.”

기술은 환경을 바꾸고, 환경은 문화를 바꾼다. 클루닉스의 R&D클라우드 시스템 역시 국내를 넘어 세계를 혁신시킬 준비가 돼있다. 세계를 향한 그들의 또다른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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