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사람입니다, 고객님」의 저자 김관욱 교수
10여년간 콜센터 현장 연구
감정노동 담론 만으론 문제 해결 못해
적정 콜받기 가능한 시대 열어야…

“1980년대 여공들과 2020년대 콜센터 상담사가 다른 게 무엇인가?” 10여년간 콜센터 현장을 연구해온 김관욱 덕성여대(문화인류학) 교수는 이같은 의문을 품었다. 그가 대면한 콜센터 상담사의 현실이 1980년대 구로동 여공들의 현실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콜센터 상담사를 ‘감정노동자’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해야 진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그를 만났다. 

김관욱 교수는 “감정노동 담론만으로는 콜센터 상담사의 문제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사진=뉴시스]
김관욱 교수는 “감정노동 담론만으로는 콜센터 상담사의 문제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사진=뉴시스]

“콜은 언제나 밀려 있다.” 콜센터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비용 절감’을 추구하는 고용주가 밀려드는 고객의 콜을 처리할 만한 충분한 인력을 뽑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콜센터 상담사들은 식사시간, 휴게시간은 물론 생리적 욕구를 해결할 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온갖 질병에 노출돼 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문화인류학자인 김관욱 덕성여대(문화인류학) 교수가 “지금 콜센터 상담사들에게 필요한 건 ‘적정 콜 받기’”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무엇이 콜센터 노동자를 아프게 하는가’란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10여년간 콜센터 현장을 누빈 김관욱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2012년 콜센터 관련 연구를 시작해 「사람입니다, 고객님」이라는 책까지 펴내셨습니다. 콜센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진료를 시작한 2007년부터였어요. 당시 한국 여성의 흡연율이 높아지고 있었는데, 의사로서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죠. 그러다 서비스직 여성, 그중에서도 콜센터 상담사의 흡연율이 높다는 걸 알게 됐어요. 콜센터 상담사의 흡연율(26%·2012년 금천구청 ‘가산디지털단지 여성 노동자 건강실태조사’)은 여성 평균 흡연율 대비 2배 이상 높았는데, 이는 상담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직장·직군 등 환경의 문제라는 방증이었죠.” 

✚ 콜센터 상담사의 흡연율이 높은 이유가 뭐였나요. 
“‘여기선 흡연 아니면 뛰어내리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다’면서 극단적으로 말하는 이들이 있을 만큼 상담사의 업무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그런데 충분한 휴식시간이 보장되지 않다 보니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흡연을 선택한 거죠. 여기에 콜센터 업체들이 업무 능률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흡연을 이용한 것도 한몫했어요. 모든 콜센터는 동선이 짧은 곳에 불법적인 흡연실을 설치해 두고 있죠. 빨리 흡연하고 업무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1980년대 여공들에게 제공되던 카페인 각성제와 같은 역할을 ‘담배’가 하고 있는 겁니다.” 

✚ 이렇게 콜센터 상담사들이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뭔가요.
“충분한 인력을 뽑지 않기 때문이죠. 그 배경엔 콜센터의 ‘원-하청’ 구조가 있습니다. 대부분 콜센터는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과 원-하청 계약을 맺고 운영됩니다. 기업들은 콜센터 2~3곳과 계약을 맺고 이들을 경쟁에 붙이죠.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콜을 처리한 업체와 재계약을 맺고요. 하청업체인 콜센터는 쉬지 않고 콜을 받을 ‘최소한’의 인원만 뽑고 비용을 줄이는 겁니다. 이게 상담사들이 시간에 쫓기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 또 다른 이유는 뭔가요. 
“상담사 업무가 철저한 실적 위주의 경쟁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죠. 상담사들은 매달 실적 평가를 받고 그에 따라 급여를 차등 지급받습니다. 가장 높은 ‘S등급’을 받은 상담사와 가장 낮은 ‘D등급’을 받은 상담사의 급여는 20만~50만원 차이가 나요. 아웃바운드(고객 영업) 상담사의 경우, 서로 좋은 고객 데이터를 받기 위해 관리자에게 빵이나 과일을 상납하기도 하고, 극단적으로는 상담사끼리 왕따를 시키는 사례도 발생하죠. 관리자는 실적을 높이기 위해 이런 ‘을과 을’의 싸움을 부추기고요.” 

✚ 콜센터 전체에 실적 압박과 경쟁이 만연해 있네요.
“이런 경쟁 구도 속에서 상담사들은 ‘경주마’처럼 일할 수밖에 없어요. 상담사뿐만 아니라 상담사를 관리하는 파트장끼리 실적 경쟁을 붙이고, 파트장을 관리하는 실장끼리도 경쟁을 시키죠. 나아가 콜센터 하청업체끼리 경쟁하는 끊임없는 계단식 경쟁 체제입니다.” 

실제로 콜센터들은 ‘자동 콜 분배기’를 통해 상담사들에게 끊임없이 콜을 연결해준다. ‘일일 최대 통화 목표량’을 달성하기 위해 경주마처럼 일하며 상담사가 받아가는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이다. 관리자급이 받아가는 급여도 별반 차이가 없다. 콜센터는 결국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을과 을의 싸움인 셈이다. 

✚ 실적을 높이기 위해 상담사들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파놉티콘(원형감옥)’에 비유하셨는데요. 
“콜센터는 물리적·전자적 감시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센터장과 실장은 상담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중앙에 자리해 업무 현황을 관찰하죠. 이런 파놉티콘 구조는 상담사로 하여금 ‘감시받는 위치에 있다’는 걸 항상 인식하게 만듭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상담사는 업무를 시작해 프로그램에 로그인하는 순간부터 초 단위로 모든 업무 상황을 감시받습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2~3분만 자리를 비워도 관리자로부터 압박을 받죠. 또 상담 내용이 실시간으로 녹음돼 관리자가 청취할 수도 있고요. 상담이 길어지거나 상담사가 실수할 경우 관리자가 대놓고 모욕감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감시 체계가 유지될 수 있는 건가요. 
“오히려 이런 노동 감시 시스템은 더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특히 철저한 경쟁 구도 속에서 인센티브로 급여를 책정하는 방식이 여러 산업 분야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죠. 대표적인 게 플랫폼 노동입니다. 겉보기엔 자유롭고, 일한 만큼 돈을 벌고, 내 할 일만 하면 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죠. 진짜 책임져야 할 사람은 플랫폼 뒤로 사라져, 전자 시스템을 통해 감시하고 플랫폼엔 노동자 간 경쟁만 남게 되죠. 지금 콜센터 노동자의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콜센터 상담사는 1년도 채 안 돼 이직하는 경우가 숱하다.[사진=뉴시스]
열악한 환경에 놓인 콜센터 상담사는 1년도 채 안 돼 이직하는 경우가 숱하다.[사진=뉴시스]

✚ 실제로 일부 이커머스 업체에선 ‘시간당 생산량’ ‘시간당 배송 가구 수’ 등으로 노동자의 효율성을 평가하고 있죠.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지향하는 바죠. 무한경쟁 속에서 ‘능력주의’가 공정하다고 인식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능력주의라는 미명 아래 1초의 잉여 시간이나 잉여 노동도 남기지 않기 때문이죠. 콜센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용주는 끝없는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상담사들에게 일말의 여유 시간도 허락하지 않지만, 그 누구도 적정한 수준이 어디인지 말하지 않죠.” 

이런 심리적 압박 속에서 상담사는 하루 8시간 이상 100~200건의 상담을 처리한다. 비좁은 책상에서 같은 자세로 허리를 펼 틈도 없이 일하는 이들은 어쩌면 온갖 질병에 노출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 상담사가 정신적·신체적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실제로 상담사 대다수가 두통, 만성피로, 수면장애, 청력손실, 위장장애, 어깨·목·허리 등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면역력이 약해져 안면마비가 오거나 공황장애를 겪는 사례도 적지 않죠.” 

✚ 그나마 이런 구조가 드러난 게 2020년 구로 콜센터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였습니다. 
“사실 콜센터 집단감염은 예견됐던 일입니다. 코로나19라는 위기의 순간에 취약한 연결 고리가 드러났을 뿐이죠. 하청업체들은 상담사를 책임져야 할 평생 직원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방역이나 위생, 상담사의 건강관리 등엔 관심이 없죠.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원청과 하청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핑퐁 싸움’만 했고요.” 

✚ 그래서인지 그 이후에도 콜센터의 노동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언론의 관심이 상담사의 인권보단 콜센터가 집단 감염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맞춰졌기 때문이죠. 그 이후로도 콜센터 집단 감염은 꾸준히 발생했어요. 하지만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죠. 되레 부작용도 적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는 콜센터의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하는 계기가 됐지만, 거기까지였다.[사진=뉴시스]
코로나19는 콜센터의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하는 계기가 됐지만, 거기까지였다.[사진=뉴시스]

✚ 어떤 부작용인가요. 
“코로나19 사태로 콜 수가 증가하면서 상담사들의 콜 처리 실적이 높아졌어요. 그러자 콜센터들은 상담사가 하루에 받아야 하는 최소 기준 콜 수를 100건에서 120건으로 상향 조정했죠.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분산 근무’ 지침이 콜센터 ‘완전 외주화’에 악용되기도 했죠. 일부 콜센터는 원청 건물에 있던 세 개의 콜센터 업체를 외부의 세군데 장소로 옮겼습니다. 그다음 하청업체에 모든 것을 ‘풀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변경했죠. 원청에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눈엣가시 같은 콜센터 노조를 내쫓는 기회가 된 셈이었죠.” 

✚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상담사의 ‘감정노동’에만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영국이나 인도 역시 우리나라와 비슷한 콜센터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독 한국 콜센터를 둘러싼 주된 이슈는 고객의 갑질이나 폭언 등 높은 감정노동에 맞춰져 있어요. 감정노동 문제 해결이 모든 문제의 종결점으로 오인돼선 안 됩니다.” 

✚ 콜센터 상담사의 노동에도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콜센터 상담사는 아무런 전문성 없이 감정을 상품화한 감정노동자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상담사는 쉴 새 없이 많은 정보를 확인·처리·기록·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죠. 특히 코로나19 국면에선 상담사들이 재난지원금 지급 절차와 같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왔어요. 감정노동자보다는 ‘정보노동자’라고 새롭게 명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 최근 목소리를 내는 콜센터 노조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개선될 수 있을까요.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콜센터 상담사 수는 40만명, 많게는 200만명에 이릅니다. 그중 노조에 가입한 상담사는 0.1%에 불과하다고 봐요. 콜센터 상담사가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담사가 집단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해 있는 상담사들은 그게 쉽지 않죠. 사업주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요. 그래서 노조 활동을 하려는 이가 있으면 관계에서 배제하거나 집단 따돌림을 꾀하기도 하고요. 설사 노조가 만들어져 파업을 한다고 해도, 다른 인력을 뽑아 대체하는 게 너무나 쉽죠.”

✚ 그렇다면 노조가 요구하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휴식시간을 보장해 달라’ ‘화장실 이용을 자유롭게 해달라’ ‘시간외 근로수당을 지급하라’ 등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것들입니다. 또 매달 치러야 하는 시험을 줄여 달라는 요구도 있습니다. 카드사의 경우, 두꺼운 규정집 같은 걸 외우도록 하는 건데, 시험에서 점수를 받지 못하면 나머지 공부를 시키거나 깜지(공부한 내용을 빼곡히 적어서 제출하는 과제를 의미하는 은어)를 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두 업무 외 시간에 이뤄지는 것들이죠.” 

✚ 상담을 위해 필요한 거라면 교육을 하는 게 맞지 않나요.
“(별도의 교육 없이)범위가 정해지지 않은 두꺼운 자료집을 가지고 매달 시험을 보는 건 상담사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시험 결과로 인센티브를 깎는 것도 문제죠. 이렇게 상담사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고용주는 ‘싫으면 나가면 돼’라는 식이죠. 그렇다고 생계가 달린 상담사들이 쉽사리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습니다.” 

✚ 노동취약계층인 여성들이 많이 근무하는 곳이어서 이런 일들이 근절되지 않는 걸까요? 
“실제로 콜센터에는 경력단절 여성이나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여성들이 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직을 원하지만 떠날 수도 없는 이들이 많다 보니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 때문인지 상담사 중 상당수가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을’로 받아들이죠. 1970~1980년대 소위 ‘공순이’로 불리던 여공의 삶이 현재 ‘콜순이’와 뭐가 다른 건지, 여성의 지위가 도대체 무엇이 개선된 건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 그렇다면 상담사가 놓인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건 뭘까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적정 콜 받기’입니다. 앞서 일부 노조가 적정 콜 받기 운동을 펼치기도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사실 우리 사회에서 경쟁하지 않고,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돈을 벌면 더 행복할 것이다’는 기대감을 주입해 사람들을 경쟁으로 내모는 게 우리의 현실이죠. 그럼에도 그 틀에서 벗어나 적정한 노동, 적정한 임금으로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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