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부부 재무설계 上

2년 전 안혜림(가명·43)씨는 10년 넘게 다닌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자녀를 신경쓸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실업급여를 받았지만, 이젠 그마저 끝났다. 안씨는 꽁꽁 쟁여놨던 퇴직금 5000만원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써야 할지 알 수 없다. 지출을 줄이는 게 먼저 아닐까란 고민도 든다. 그래서 안씨는 남편과 함께 재무설계를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어떤 솔루션을 받을까.

퇴직금의 사용처를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퇴직금의 사용처를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번달이 마지막이네.” 입출금내역을 확인한 안혜림(가명·43)씨는 한숨을 쉬었다. 안씨의 실업급여가 종료됐기 때문이다. 2년 전, 안씨는 육아를 위해 10년 넘게 다녔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코로나19 때문이었는데, 당시 6살이었던 자녀(8)를 안전하게 돌볼 방법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1년간 오롯이 육아를 전담하면서 힘든 일이 많았지만 아이와 가까이 있을 수 있었기에 안씨는 그 시간이 즐거웠다. 실업급여 덕분인지 안씨는 회사를 그만뒀다기보단 휴직을 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실업급여가 끊기고 나서야 안씨는 자신이 ‘백수’가 된 걸 실감했다. 그때부터 안씨는 가계부를 쓰면서 돈관리를 시작했지만, 내키는 대로 돈을 써오던 안씨에게 지출 관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안씨는 CMA통장에 넣어뒀던 퇴직금 5000만원을 사용하기로 했다. 지금까진 아무 생각 없이 쟁여놨지만,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활용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남편 양세훈(가명·45)씨와 논의한 끝에 부부는 자금을 활용할 방법을 3가지로 추렸다.

첫번째는 아내 안씨의 아이디어인데, 지금보다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이다.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집을 팔아 시세차익을 얻겠다는 게 부부의 계산인데, 집을 사려면 5000만원으론 턱없이 부족해 대출을 받아야 한다.


두번째는 남편 양씨의 생각으로, 퇴직금을 자녀의 교육자금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앞으로 자녀가 크면서 발생하는 사교육비부터 대학자금을 이 돈에서 쓰자는 게 남편의 구상이었다.

자녀 1명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발생하는 교육비가 대략 8552만원(신한은행 2018년 보고서)이라고 하니, 일찌감치 교육비로 챙겨놓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였다. 마지막으로 양씨는 퇴직금을 쪼개 2500만원은 자녀 양육비로 먼저 쓰고, 2500만원은 비상금 용도로 적금에 납입하는 방법도 제안했다.


이렇게 여러 방법을 고민해 봤지만 부부로선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이사하는 것과 자녀 양육비를 마련하는 것 사이에서 부부는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부부는 필자의 상담실을 찾아와 재무상담을 통해 답을 얻기로 결정했다.

양씨 부부의 사례처럼 회사에서 퇴직금을 받은 부부 중 상당수는 퇴직금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한다. 일반적으론 자녀 교육비나 노후자금으로 쓰는데, 양씨 부부는 여기에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한다는 옵션을 추가했다.

하지만 아내의 퇴사로 수입원이 남편에게 한정돼 있는 만큼 부부는 리스크를 좀 더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섣부르게 부동산 투자를 했다가 집값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집을 사기 위해 빌린 대출도 악재가 된다. 이를 갚느라 자녀 교육비나 은퇴자금을 준비하는 데도 차질이 생길지 모른다. 부부는 필자와 함께 퇴직금을 어떻게 활용할지 남은 상담 시간에 고민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자! 부부의 스토리를 들었으니 이제 가계부를 살펴보도록 하자. 부부의 월소득은 397만원으로, 이는 중견기업을 다니는 남편이 혼자서 버는 돈이다. 지출 중 정기지출로는 공과금 20만원, 생활비 100만원, 정수기 렌털비 2만원, 통신비 15만원, 교통비·유류비 35만원, 남편 용돈 40만원, 아내 용돈 10만원, 보험료 72만원, 의료비 3만원, 자녀 교육비 27만원, 의류비 12만원 등 336만원이다.

1년간 쓰는 비정기지출은 명절비·경조사비 130만원, 각종 세금 110만원, 여행비 80만원 등 320만원이다. 한달에 26만원씩 쓰는 셈이다. 금융성 상품은 주택청약종합통장(5만원), 적금(10만원), 예금(15만원), 개인연금(20만원) 등 50만원이다. 이렇게 부부는 한달에 412만원을 쓰고 15만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보유자산으로는 CMA통장에 넣어둔 퇴직금 5000만원이 있다.

부부의 가계부를 살펴보면 특별히 과소비를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부부의 수입을 넘어서는 지출을 하고 있으므로 전체적으로 지출을 줄일 필요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부의 지출이 점점 늘어날 거란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지금 초등학교에 입학한 자녀의 교육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게 뻔해서다.

그래서 이번 상담에선 가볍게 생활비(100만원)만 줄여봤다. 부부는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경우가 많았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배달음식 문화가 한국인의 삶 속에 자리 잡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배달음식이 식비 지출을 불리는 주범이란 점은 큰 문제다.

부부는 배달음식 횟수를 가급적 줄이기로 결정했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아내를 배려해 남편은 레토르트 음식이나 국, 반찬 한가지만 놓고 먹는 등 아침을 간소화하기로 했다. 아내도 점심에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걸 자제하고 집밥으로 해결하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부부는 생활비를 100만원에서 85만원으로 15만원 줄였다.

이렇게 1차 상담이 끝났다. 부부는 식비 15만원을 절감해 지출을 412만원에서 397만원으로 줄였고, 적자 15만원도 제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번 상담에선 부부의 사연을 듣는 데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에 지출을 많이 줄이지 못했지만, 다음 상담에선 지출을 대대적으로 손볼 생각이다. 지출을 줄이는 자세한 과정은 다음 시간에 소개하겠다.

글=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
shnok@hanmail.net | 더스쿠프 전문기자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