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툰 | 넘을 수 있는 사회의 벽
둥근 손잡이 금지한 캐나다 밴쿠버
대신 막대형 손잡이 의무화
노약자·장애인도 편리해져

힘이 약한 노약자와 어린이에게는 둥근 손잡이가 불편할 수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2013년 11월, 캐나다의 대도시 밴쿠버시市가 한가지 흥미로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향후 건립되는 모든 건축물 내 둥근 손잡이의 사용을 불허하겠습니다(건축법 조례안).” 언뜻 문에 설치하는 손잡이 모양까지 규제하는 밴쿠버시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시민들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밴쿠버시가 이런 규정을 마련한 이유는 이와 정반대입니다. 손의 힘이 약해 둥근 손잡이를 잘 돌리지 못하는 노약자와 어린이, 장애인을 배려한 조치였죠. 밴쿠버시는 더 많은 시민의 자유와 편의를 위해 둥근 손잡이의 ‘퇴출’에 앞장선 겁니다.

그렇다면 밴쿠버시가 둥근 손잡이 대신 도입한 손잡이 모양은 무엇일까요? 바로 레버(lever)형 손잡이입니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막대형 손잡이’라고 할 수 있죠. 밴쿠버시는 2014년부터 모든 건축물에 반드시 막대형 손잡이를 설치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힘을 줘서 돌려야 하는 둥근 손잡이와 달리, 막대형 손잡이는 기다란 막대를 위에서 아래로 누르기만 하면 문을 쉽게 열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노약자와 어린이에게는 막대형 손잡이가 둥근 손잡이보다 훨씬 편리하죠.

막대형 손잡이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길쭉한 모양 덕분에 손 · 어깨 · 팔 등의 소근육이 경직된 지체장애인,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도 턱이나 팔꿈치를 이용해서 손잡이에 힘을 가할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문을 열 수 있죠. 달라진 손잡이 모양 하나만으로 장애인들의 편안한 일상을 가로막던 장벽이 사라진 셈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노약자나 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이 막대형 손잡이의 편의를 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양손 가득 무거운 짐을 들고 있거나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있을 때 손쉽게 문을 열 수 있는 것도 막대형 손잡이 덕분이죠.  

9년 전 막대형 손잡이의 설치를 의무화한 밴쿠버시의 목표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모든 계층에 보편적인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 혹시 아셨나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막대형 손잡이에는 이런 평등의 가치가 녹아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글 =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기획 = 장훈이 배리어 프리 프렌즈 대표
일러스트 =
정승희 배리어 프리 프렌즈 디자이너 
storkjh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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