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부부 재무설계 中

아이의 치아가 많이 썩었다. 나중에 크라운(인공틀로 치아를 씌우는 시술)을 해야 할지 모른다. 시술비가 많이 들 텐데, 치아보험에 가입해야 할까.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답이 달라지지만, 분명한 건 치아보험이 필수는 아니라는 점이다. 충치가 있다고 무조건 크라운을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아보험뿐만이 아니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가입한 보험은 때론 불필요한 지출을 발생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질병 발생 확률이 높지 않다면 굳이 비싼 보험을 가입할 이유가 없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질병 발생 확률이 높지 않다면 굳이 비싼 보험을 가입할 이유가 없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해를 기점으로 모든 사업장에 퇴직연금제도가 의무 도입된다. 근로자가 재직 기간에 퇴직금 재원을 외부 금융회사에 적립하고, 퇴직 시 퇴직금이나 연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이 제도의 골자다. 기존엔 근로자가 퇴직금을 일시에 받는 제도만 선택할 수 있었지만, 퇴직연금제도 덕분에 근로자로선 선택권이 넓어졌다.

갑작스럽게 도입된 제도는 아니다. 2014년부터 이 제도를 계획했던 정부는 영세사업장을 고려해 사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의무 도입 범위를 넓혀갔다. 2016년 근로자 300명 이상인 사업장의 퇴직연금제도 의무화를 시작으로 ▲2017년 100인 이상 ▲2018년 30인 이상 ▲2019년 10인 이상 ▲2022년 전 사업장 등 순이다.

퇴직연금제도를 의무화하는 건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돕기 위해서다. 당장 목돈이 필요 없다면 퇴직연금을 활용해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언급했듯 퇴직연금제도 의무화가 단계적으로 진행된 탓에 일부 직장인은 퇴직 시 이 제도를 활용하지 못했다.

이번 상담의 주인공인 양세훈(가명·45)씨 안혜림(가명·43)씨 부부가 그랬다. 2년 전 자녀(8) 양육을 위해 10년간 다녔던 회사를 그만둔 안씨는 퇴직금 5000만원을 한번에 받았다. 당시엔 10인 이상 30인 미만의 사업장에 퇴직연금제도가 적용되는 단계였기 때문에 10명이 넘지 않는 안씨의 회사는 대상이 아니었다.

다행히 양씨 부부는 퇴직금을 따로 쓸 곳이 없었다. 자가 주택도 있는 데다 갚아야 할 대출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외벌이 부부가 됐다곤 하지만 당장 경제적으로 부담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안씨 앞으로 매월 나오는 실업급여가 쏠쏠해 퇴직 전과 비교해도 가계부 상황에 큰 변화가 없었다. 부부는 CMA통장에 퇴직금을 전부 넣어두고 한동안 손을 대지 않았다.

이랬던 부부가 다시 퇴직금에 관심을 가진 건 아내의 실업급여가 끊기면서부터다. 남편의 월급만으로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하기 어려워지면서 부부는 퇴직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아내는 퇴직금을 활용해 지금보다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해 집값이 오르는 걸 노려보자고 제안했고, 남편은 퇴직금을 자녀 양육비와 노후 준비에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견을 좁히지 못한 부부는 필자의 조언을 듣고 퇴직금의 활용처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럼 부부의 재정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해보자. 부부의 월소득은 남편의 월급 397만원이 전부다. 비정기로 받는 상여금은 소득에서 제외했다. 월 가계비용은 정기지출 336만원, 비정기지출 26만원, 금융성상품 50만원 등 412만원이다. 부부는 한달에 15만원 적자를 보고 있다. 식비 100만원을 85만원으로 줄여 적자를 메웠지만, 재무솔루션을 짜려면 이번 상담에서 지출을 더 줄여야 한다.

먼저 통신비(15만원)를 줄였다. 부부는 이통3사의 무제한 요금제를 쓰고 있는데, 알뜰폰을 쓰면 비슷한 수준의 데이터를 사용하면서도 부부가 1만5000원씩 3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

‘2년간 알뜰폰을 써야 한다’는 약정이 걸려있고 공짜 영화표나 영화할인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통신비를 더 아낄 수 있다는 말에 부부는 기꺼이 알뜰폰을 쓰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통신비는 15만원에서 12만원으로 3만원으로 줄었다.

다음은 남편 용돈(40만원)이다. 회사 생활 때문이라지만 남편의 용돈은 아내(10만원)에 비해 조금 과한 편이었다. 코로나19 탓에 남편은 구내식당 대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곤 했는데, 맛집을 좋아하는 남편은 이럴 때 용돈을 보태써왔다.

남편은 처음엔 ‘밥값까지 줄일 필요가 있겠는가’라면서 불편해 했지만, ‘지출 줄이기는 작은 부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필자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 남편은 저렴한 식당을 이용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결과 용돈도 40만원에서 30만원으로 10만원 절약됐다.

보험료(72만원)는 손볼 곳이 좀 많았다. 양씨 가족은 모두 갱신형 치아보험에 가입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남편이 임플란트를 해야 할 정도로 치아 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자녀도 충치가 많기 때문이었다. 자녀까지 보험 대상에 올린 건 나중에 크라운(인공틀로 치아를 씌우는 시술)을 할 때 비용이 많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보험은 고강도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안전책이다. 이런 점에서 자녀의 크라운 시술을 대비하기 위해 갱신형 치아보험에 가입한 건 과한 측면이 있었다. 그래도 약간 걱정된다면 치과 두세곳에서 진단을 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듯했다.

부부는 필자의 의견에 동의했다. 충치 하나 없는 건강한 치아를 갖고 있는 아내와 자녀의 치아보험을 해지하기로 했다. 여기에 운전을 하지 않는 아내의 운전자보험도 해지했다. 이 과정에서 부부의 보험료는 72만원에서 50만원으로 총 22만원 줄었다.

마지막으로 의료비(3만원)와 의류비(12만원)도 지출항목에서 제외했다. 원래는 정기지출에서 발생하지 않는 금액이지만, 지난해 11월 의류비와 의료비를 신용카드로 지급한 탓에 지금은 할부금을 갚고 있는 상태다. 부부는 보험을 해지하고 받을 환급금(액수 미정)으로 신용카드 할부금을 상환하고, 앞으로 남편이 받는 상여금에서 의료비와 의류비를 지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2차 상담이 모두 끝났다. 부부는 통신비(3만원), 남편 용돈(10만원), 보험료(22만원), 의료비(3만원), 의류비(12만원)를 줄여 총 50만원을 줄이는 데 성공했고, 이를 재무솔루션을 위한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지난번 상담에서 부부는 필자에게 ▲가계부 점검 ▲퇴직금 관리법 등 단순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만을 요청했다. 하지만 필자는 부부에게 “노후 준비, 자녀 교육비 마련 등 40대에 필요한 재무목표를 세우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 시간에는 이를 위한 솔루션과 함께 퇴직금을 활용할 방법을 고민해보도록 하겠다.

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
shnok@hanmail.net | 더스쿠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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