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탐구생활-사각사각
기초생활수급자의 세상
무심코 저지른 실수와 불편한 배려

더스쿠프(The SCOOP)와 전문가가 함께 하는 ‘같이탐구생활-사각사각’에선 도움을 받던 아이가 도움을 주는 어른으로 성장했을 때,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조명해봅니다. 첫번째 편은 아픈 엄마를 간호하며 간호사를 꿈꿨던 서은지(가명·23)씨의 이야기입니다. 10대였던 은지가 겪었던 세상은 어땠을까요. 그 속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간병인 지원제도를 이용할 수 있지만 은지의 엄마는 이를 거부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초생활수급자는 간병인 지원제도를 이용할 수 있지만 은지의 엄마는 이를 거부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엄마가 쓰러졌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엄마가 한순간 손도 발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아이가 됐습니다. 예쁜 교복을 입은 중학생이 될 날만 기다리던 은지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른들은 엄마의 병을 ‘뇌졸중’이라고 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보살필 사람은 은지밖에 없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인 은지네에서 유일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아빠는 일을 멈출 수 없었고, 은지는 함께 슬픔을 나눌 언니도, 오빠도, 동생도 없으니까요.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낯을 가렸습니다. 은지와 아빠 말곤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곁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일하러 가고, 은지는 학교에 가 있는 동안만이라도 돌봐줄 간병인을 두었지만, 엄마는 “저 사람이 날 해치려고 한다”며 그들의 손길을 뿌리쳤습니다. 그러길 몇번, 엄마처럼 그들도 두손 두발 다 든 채 떠났습니다. 방법이 없었습니다.

매일 아침 은지는 예쁘게 교복을 차려입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밥도 죽도 싫다며 거부하다가도 은지만 보이면 엄마는 순한 아이가 됐습니다.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입에 넣어주고, 골고루 반찬을 집어 꼭꼭 씹어 먹으라며 엄마를 어르고 달랬습니다. 그런 엄마를 보며 은지는 생각했습니다. ‘엄마도 나에게 이렇게 했겠지?’

방학엔 아예 엄마 곁에 붙박이처럼 있었습니다. 주말이면 “집에 가서 잠깐 쉬라”며 아빠가 교대를 해줬습니다. 하지만 은지와 아빠의 그런 정성에도 엄마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병원 생활이 한해 두해 길어지고, 그럴수록 은지가 병원에 드나드는 횟수도 많아졌습니다.

어떤 날은 학교 점심시간에 외출증을 끊어서 나오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조퇴하기도 했습니다. 봄볕이 드는 학교 운동장에서 수다를 떠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바쁘게 걸음을 옮겼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우르르 분식집으로 몰려가고, 삼삼오오 학원으로 향하는 친구들은 은지와 다른 세상에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친구들은 그런 은지를 이상하게 바라봤습니다. 시시때때로 자리를 비우는 은지와 점점 거리를 뒀습니다. 급식비 등 각종 비용을 처리하기 위한 가정통신문이 배부되는 날이라도 되면 친구들과 은지 사이에 깊고 넓은 강이 흘렀습니다. “쟤는 왜 안 내?” “똑같은 밥을 먹는데, 쟤는 왜 공짜로 먹어?” 기초생활수급자인 은지의 상황은 거침없이 노출됐습니다. 그럴 때마다 차가운 시선들이 여린 은지의 몸에 아프게 꽂혔습니다. 

섣부른 배려는 오히려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섣부른 배려는 오히려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친구들이 미웠습니다. 선생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은지는 울음을 속으로 삼켜야만 했습니다. 그런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오늘도 일하러 갔고, 학교와 병원과 집을 오가는 자신의 일상도 그대로였습니다. 달라지는 게 있다면 갈수록 병세가 나빠지는 엄마의 상태였습니다. 여러 합병증이 엄마를 괴롭혔고, 그걸 바라보는 아빠의 한숨은 깊어만 갔습니다. 의료비 지원을 받아도 빠듯한 살림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병원비도 아빠의 한숨을 거들었습니다.

계절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아빠가 은지에게 물었습니다. “구청에서 전화가 왔는데, 어떤 분이 너의 멘토가 돼 주신대. 한번 해볼래?” 은지는 엄마를 간호하느라 제대로 공부에 집중해본 적도, 학원에 다녀본 적도 없습니다. 나중에 은지는 ‘혹시 과외?’라는 기대감에 “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은지는 무엇이든 하고 싶었습니다. 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지금의 생활과 다른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을 거 같았습니다. 그게 공부라도 말이죠. 그렇게 중학교 3학년인 은지에게 ‘멘토쌤’이 생겼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대1 멘토링 전문 NGO ‘러빙핸즈’의 멘토링 프로그램의 일환이었습니다. 

전구를 만드는 회사에 다닌다는 멘토쌤은 자주 은지를 불러냈습니다. 함께 밥을 먹었고, 나란히 걷는 일이 많았습니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돌담길을 걸었습니다, 마로니에공원도 가봤습니다. 처음 해보는 게 많았습니다. 친구들과 교류가 거의 없던 은지에게 멘토쌤은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멘토쌤을 만나면서 은지의 일상에 조금씩 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진로도 결정했습니다. 간호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엄마의 손발이 되는 것도 좋지만, 아픈 사람들을 좀 더 전문적으로 돌봐주고 싶었거든요. 고등학교도 특성화고인 간호고등학교로 진학하기로 했습니다. 언제나 은지 편인 아빠도 은지의 그런 결정을 응원해줬습니다. 

간호사를 꿈꾸며 고등학생이 된 은지는 자신이 원했던 일이니 잘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엄마를 돌봐온 것만 해도 벌써 3년이 넘었으니까요. 하지만 실습을 나간 현장에서 은지는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환자들을 보면 자꾸 아픈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콕콕 쑤셨습니다. ‘곧 익숙해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환자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은지는 괴로웠습니다. 고민이 깊어질 때쯤, 집에 방문하는 담당 사회복지사를 보면서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 내가 꼭 직접 돕는 것만이 방법은 아닐 거야. 정책을 제안하고, 보완해줄 수 있는 일도 있을 거야.” 은지는 간호사라는 꿈을 접고, 사회복지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은지 안에서 많은 변화가 일었지만, 사실 은지가 경험한 세상은 예전 그대로였습니다. 학부모가 참여하는 학교행사는 여전히 은지에게 남의 얘기였고, 초등학교·중학교 졸업식에 이어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은지는 혼자였습니다. 그런 은지를 보고 친구들과 어른들은 함부로 이유를 유추했습니다. “너도 와서 같이 사진 찍자”는 배려가 오히려 불편했지만 은지는 묵묵히 받아들였습니다. 

은지가 교복을 벗고 스무살이 되던 해, 엄마는 오랜 투병 생활 끝에 하늘의 별이 됐습니다. 교복 입은 모습을 상상하던 은지에게 예상치 못한 세상이 열렸던 것처럼 어른이 된 은지 앞에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 열렸습니다. 그 험난한 삶 속에서도 도움을 받아오던 은지는 어릴 적 자신처럼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언덕이 돼주겠다면서 멘토를 선택했습니다.

바랐든 그렇지 않든 어린 은지는 누군가의 시선과 손길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런 은지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땠을까요? 그렇게 어른이 된 은지의 눈에 비친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는 이제 은지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같이탐구생활 사각사각 3편 ‘어린 은지가 본 세상’에서 우리가 무심코 저지르는 실수, 기계적으로 설계된 정책적 결함 등을 살펴보겠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박현홍 러빙핸즈 대표
lovinghands@lovinghand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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