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재탄생의 원조 문래동의 자화상

# ‘폐가를 카페로, 전화국을 사무실로….’ 기존 공간을 혁신하는 스타트업을 다룬 기사는 그 자체로 낭만을 담고 있다. 무서운 폐가가 아름다운 카페로 탈바꿈했으니, ‘낭만’이 충만할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그 낭만이 영원할 수 있느냐다. 

# 사실 ‘공간 재탄생’의 원조는 문래동이다. 2003년 철공소가 몰려있던 ‘준공업지역’ 문래동에 예술가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어 버린 공장의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온 거였다. 작은 카페도 뒤를 이었다. 오늘도 문래동에는 새로운 가게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과연 문래동엔 지금도 ‘낭만’이 숨쉬고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2022년 문래동의 변화를 직접 확인해봤다.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문래동은 숱한 변화를 겪었다.[사진=천막사진관]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문래동은 숱한 변화를 겪었다.[사진=천막사진관]

임차인은 저렴한 임대료가 있는 곳으로 하나둘씩 흐른다. 당연하다. 임차인에게 임대료는 곧 ‘생존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은 2003년부터 저렴한 월세를 찾는 사람들이 ‘빈 공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예술 작가들이 일으킨 이 움직임은 카페ㆍ식당 사장까지 번졌다. 그렇다면 문래동은 그간 얼마나 큰 변화를 겪었을까. ‘문래 예술촌’으로 시작한 이 일대를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시작점은 지하철 2호선 7번 출구다. 이곳에 내려 당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문래 예술촌’으로 가는 ‘도림로18길’이 보인다(지도 포인트❶). 여기서부터 찍는 사진은 사람들의 SNS에 ‘#문래’라는 태그가 붙어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참고: 영등포구 문래동은 1~6가로 구분된다. 대부분 준공업지역이지만 실제로 공단이 있는 구역은 문래동 2ㆍ3ㆍ4가동 일부다. 더스쿠프는 이 구역이 카페ㆍ식당 등으로 바뀌고 있는 만큼 해당 지역만 ‘#문래’라고 서술한다.]

당산로를 따라 걷던 중 문래공원 사거리(지도 포인트❷)와 마주쳤다. 길을 건너지 않고 도림로로 꺾어 걸어야 ‘문래 예술촌’의 경계를 따라갈 수 있다. 그 모퉁이에 있는 식당의 옥상은 한창 공사 중이었다. 옥상 위에 꼬마전구가 매달린 것을 보니 ‘루프톱’을 만드는 중인 듯했다.

걸음을 다시 옮겼다. 도림로를 따라 촘촘히 박힌 골목길의 입구는 모두 다른 모습이었다. SNS에서 ‘#문래’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사진처럼 작고 다양한 카페ㆍ식당이 섞여 있었다. 그 골목으로 들어갔다. 막힌 골목의 끝, 로스터리 카페가 있었다.

막다른 골목 깊숙이 자리한 카페는 6년 전 문을 연 곳이었다. 스스로 문래동 ‘초창기 멤버’라고 말한 카페 사장은 “초기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됐다”며 운을 뗐다.

“그때는 저렴한 임대료를 찾다가 들어온 거예요. 공장 사장님들이 다 말렸었죠. 젊은 사람이 들어와서 여기서 무슨 고생을 하려고 이러냐고요. 그런데도 들어와서 공장 사장님들이랑 친해졌어요. 커피 한잔 편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고 다들 좋아하셨고요. 그때 제가 내던 임대료가 50만원이었어요. 지금은 3배쯤 뛴 걸로 알아요.”

서울시에 따르면 2015년 4분기 문래동의 3.3㎡(약 1평)당 상가 임대료는 7만8998원이었다. 6년이 흐른 2021년 4분기 임대료는 34.5% 상승한 10만6227원이 됐다. 이 통계에는 기존 임대상가까지 섞여 있기 때문에 새롭게 ‘#문래’에 만들어지는 상가의 임대료는 이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다.

임대료만이 아니다. 카페 사장은 6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가게도 꽤 바뀌었죠. 문래동이 유명해지면서 장사를 하겠다고 오는 사람들이 많지만 외부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모습도 있어요. 생각보다 평일 유동 인구가 많지 않아서 한산하기도 하고요. 실망하고 나가는 사람들도 꽤 봤어요. 예전에는 개인이 하는 작은 가게가 많다 보니 사장들끼리 교류도 자주 했는데 요새는 스타트업이 많이 오더라고요. 가게를 가도 사장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건너에 다른 가게들도 많이 생겼는데 한번 보세요.”

계속해서 변한 #문래

사장의 말을 듣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다시 도림로가 눈앞에 있었다. ‘문래 예술촌’으로 불리는 지역은 도림로 북쪽이지만 사실 그 아래쪽에도 ‘준공업지역’이자 ‘문래동’인 ‘#문래’가 있다. 남쪽으로 펼쳐진 ‘#문래’는 ‘문래 예술촌’보다 훨씬 넓은 구역이었다. 도림로를 건너 남쪽으로 향했다. 이곳의 골목 곳곳에도 철공소가 아닌 가게들이 들어와 있었다.

골목을 누비기 전,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부동산정보업체 디스코를 이용해 2015년부터 2021년까지 문래 예술촌을 포함해 ‘#문래’에서 거래된 부동산을 살펴봤다. 이 기간 있었던 거래는 모두 144건이었는데, 그중 공장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 중인 건물은 38채(26.4%)였다. 

문래동 내 준공업지역 일부는 공장 대신 카페나 식당, 갤러리로 변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문래동 내 준공업지역 일부는 공장 대신 카페나 식당, 갤러리로 변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하지만 도로를 사이에 두고 이 비중은 널을 뛰었다. ‘문래 예술촌’으로 불리는 곳을 1구역(지도 포인트❸)으로 놓고 도림로 남쪽 지역을 두 곳으로 나눴다. 도림로139길을 기준으로 서쪽은 2구역(지도 포인트❹), 동쪽은 3구역(지도 포인트❺)으로 봤다.

‘로스터리 카페’가 있던 1구역(문래 예술촌)은 19건의 거래가 있었고 이중 15채의 공장이 다른 용도의 건물로 사용되고 있었다. 비중으로 따지면 78.9%였다. 도림로 남쪽, 도림로139길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는 2구역은 79건의 거래가 있었지만 단 3채(3.8%)만이 공장이 아닌 다른 용도가 됐다. 동쪽 3구역은 46건의 거래 중 20채(43.5%)가 카페나 식당이 됐다.

통계를 확인하고 주위를 돌아보니 도림로 남쪽의 건물이 사뭇 다르게 보였다. 서쪽의 2구역은 경계에 있는 몇몇 식당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부분 공장이었다. 동쪽의 3구역은 달랐다. 도림로에서 파고들 수 있는 골목부터 그 안쪽, 그리고 남쪽 경계인 경인로77길에 이르는 동안 새롭게 만들어진 식당과 술집이 보였다.

3구역에서 만난 한 카페에서는 ‘#문래’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연남동 레스토랑이 ‘#문래’로 확장하면서 카페까지 사업을 확장한 곳이었다. 이곳은 독특한 건물 모양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살렸다.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은 “직접 와서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두달 반을 고민했다”며 “다른 사람들은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지으라고 말했지만 10년간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카페를 나와 남쪽으로 더 내려갔다(지도 포인트❻). ‘#문래’의 마지막 경계인 경인로77길에 가까워졌다. 독특한 분위기의 식당 대신 프랜차이즈 한식당의 간판이 보였다. 2021년 거래된 ‘#문래’의 건물 중 일부는 대형 고깃집이나 한식집이 돼 있었다. 

 

다 무너져 가는 공간이 아름다운 카페나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변했다는 기사들은 심심찮게 나온다. 대부분 스타트업이 들어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방식이다. 낭만적이지만 뒤따라오는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낭만을 따라 들어온 자본은 때론 ‘독특함’을 ‘흔함’으로 변질시켜버린다. 뻔한 고깃집 간판이 늘어난 지금 문래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문래’는 그렇다면 과거일까 미래일까. 거리를 걷는 사람들 입에서 “없었던 곳이 많이 생겼네”라는 평가가 들려왔다. 이건 좋은 평가일까 나쁜 평가일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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