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와 이장
꼭 알아야 할 이장의 역할
 소통령으로 불리는 이장 

“시골에 내려갔더니 이장이 꼰대짓을 한다” “마을주민이 외부인에게 텃세를 부리는데, 이장이 도와줄 생각을 안 한다”. 귀촌·귀농을 다루는 인터넷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입니다. 시골마을 이장의 권한이 생각보다 막강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리가 없는 말도 아닌 듯합니다. 그럼 이장은 꼰대의 상징일까요? 혹시 귀촌이나 귀농을 택한 이들이 문화 차이를 감안하지 않고 이장이나 마을주민을 무시한 건 아닐까요?

행복한 시골살이를 위해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행복한 시골살이를 위해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가든 기업이든 조직이든 리더의 존재는 중요합니다.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조직의 명운이 엇갈리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리더의 법칙’이 귀농·귀촌에서도 통용된다는 겁니다. 도시인이 시골살이에 성공하기 위해선 다양한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중 시골살이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많은 사람이 모르는 사실을 얘기해 볼까 합니다. 

시골의 어느 마을이든 ‘이장里長’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행정구역상 가장 작은 단위의 조직은 읍면동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특별시·광역시(6개)·도(8개)가 있고 그 밑에 시군구가 있습니다.

읍면동은 시군구의 하위 행정구역입니다. 이보다 더 작은 곳을 통·반·리라고 하는데, 마지막 ‘리’의 장을 이장이라고 합니다. 이장은 면장이나 읍장처럼 나라에서 뽑은 공무원이 아닙니다. 

하지만 시골마을에서의 영향력은 생각 이상으로 큽니다. 이는 이장을 선출하는 방식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골마을에선 주민이 다 모인 총회에서 이장을 ‘만장일치’로 선출합니다. 주민의 100% 신뢰로 ‘이장’ 타이틀이 부여된다는 건데, 그 때문인지 이장의 권한은 막강합니다. 

 

이장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사례는 숱합니다. 무엇보다 시골살이에 필요한 정부사업을 활용하거나 정책자금을 지원받기 위해선 이장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이장의 확인서를 받으면 비닐하우스를 지을 때 정부 지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참고: 농지원부를 만들고 농업경영체로 등록하면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농지원부는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을 지자체로부터 확인받은 서류입니다. 농지원부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이장의 서명을 받은 ‘경작사실 확인서’가 필요합니다. 농지원부가 있으면, 농업경영체 신청, 세금감면, 농자재 구매 할인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굳이 정부사업까지 꺼낼 필요도 없습니다. 사소한 일을 처리할 때도 이장의 도움이 큰 힘이 되기 때문이죠. 가령, 퇴비나 고추·배추 모종을 신청할 때에도 이장의 협조를 받아 마을공동체를 거치면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상품을 살 수 있습니다. 시골살이에선 이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도움이 엄청나다는 얘기입니다. 시골마을 이장을 ‘소통령’이라고까지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반대로 이장의 존재감을 간과했다간 큰코다칠 수도 있습니다. 약간 과한 사례이긴 하지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A씨는 시골마을에 전원주택을 지을 요량으로 2000만원의 계약금을 치르고 땅을 사려 했습니다. 

시골마을 소통령이라 불리는 이장의 권한은 막강하다.[사진=뉴시스] 
시골마을 소통령이라 불리는 이장의 권한은 막강하다.[사진=뉴시스] 

그런데 진입로가 말썽을 부렸습니다. 시골마을의 두집을 관통해야 하는 까닭에 전원주택을 지으려면 집주인에게 ‘토지사용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A씨는 무턱대고 두 집주인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보했습니다.

“내가 사려는 땅에 집을 지으려고 하니 토지사용을 허가해 달라.” A씨는 두 집주인을 직접 찾아가 양해를 구하지도, 마을 이장을 만나 겸손하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습니다. 

참고로 시골 땅은 ‘구획區劃’이 깔끔하지 않은 곳이 많고, 무허가건물도 적지 않습니다. 대대로 살아온 탓에 남의 땅을 침범하고 있어도 서로 이해하고 사는 일이 흔합니다. 이런 상황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통보했으니, 마을주민들이 A씨에게 고운 시선을 보낼 리 없었을 겁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한 A씨가 뒤늦게 이장을 찾아가 부탁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냉랭했습니다. 결국, A씨는 전원주택을 짓고 살겠다는 꿈을 잠시 접어야 했습니다.

A씨가 마을사람들에게 직접 양해를 구했다면, 그보다 먼저 이장을 찾아가 정중하게 협조를 요청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A씨는 지금쯤 그토록 원하던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사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이 때문인지 ‘이장이 꼰대짓을 했다’ ‘원주민이 외지인에게 텃세를 부린다’는 말이 인터넷 공간에서 떠돌기도 합니다. 일부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장이나 시골마을 주민에게 막연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이장은 나이가 지긋한 데다 경륜도 많습니다. 필자가 경험한 시골의 이장들은 합리적이고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즘은 고령화로 마을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이장도 많습니다.

막연한 두려움 가질 필요 없어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글처럼 외부인을 무조건 배척하는 이장과 시골마을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귀촌이나 귀농을 선택한 사람들의 ‘태도’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도시와 시골의 문화 차이를 인정하려는 노력은 시골살이를 시작하는 외부인이 먼저 해야 하는 게 마땅합니다. 

어떤 곳이든 새로운 집단에 정착하기 위해선 협조와 양해를 구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한때 도시에서 잘나가던 ○○이었는데 시골 이장 따위가…”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행복한 시골살이를 위한 첫걸음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글 = 조경만 금융컨설턴트(엉클조 대표)
iunclejo@naver.com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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