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탐구생활-행복한 복지
정치논리보다 손실보상 시스템 필요
독일, 사회 전반에 부담조정 원칙 적용

코로나19와 이에 따른 규제로 소상공인들이 숱한 피해를 봤습니다. 당연히 정부는 소상공인들이 입은 손실을 보상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여야 정치권은 보상을 해줄지 말지, 누구에게 얼마를 보상할지 등을 놓고 툭하면 갑론을박을 벌입니다. 기준이 없다는 방증인데, 그러다 보니 손실보상은 정치적으로 결정되기 일쑤입니다. 이거 괜찮은 걸까요. 더스쿠프의 ‘같이탐구생활-행복한 복지’에서 짚어볼 첫번째 이슈입니다.

통일독일은 부담조정의 원칙을 동독 지원에도 적용했다. 사진은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기념해 장벽을 찾은 독일인들.[사진=뉴시스]
통일독일은 부담조정의 원칙을 동독 지원에도 적용했다. 사진은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기념해 장벽을 찾은 독일인들.[사진=뉴시스]

소상공인들의 눈이 온통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쏠려 있습니다. 윤 당선인이 “50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코로나19 규제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들에게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놨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공약 이행을 위한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손실보상의 액수도, 범위도, 재원마련 방식도 제각각이니 말입니다. 보상시스템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원칙에 따라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손실액은 같은데 A정권의 보상액이 다르고, B정권의 보상액이 다르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까요? 더스쿠프의 ‘같이탐구생활-행복한 복지’에서 이 문제를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와 함께 곱씹어봤습니다. 

✚ 정부가 코로나19와 그 규제로 인해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에게 손실을 보상해주는 건 어떤 근거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을까요. 
“민주주의 국가는 애초에 국민과 가상의 약속을 통해 세워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민은 세금을 내고, 국가는 이 세금으로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집니다. 국가가 의무를 다하지 못해서 국민이 피해를 입으면 당연히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국가가 적법한 활동을 했다면 보상을, 불법한 활동을 했다면 배상을 해줘야 하죠. 코로나19에 따른 손실보상은 ‘전자’에 따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해나 산불 등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도 마찬가지입니다.”

✚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이라면 뭔가 체계적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준도 좀 명확해야 할 테고요. 그런데 현실에선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실례를 들어볼까요? 지금 사회의 관심은 소상공인이 코로나19와 그로 인한 규제로 얼마나 피해를 입었고, 얼마나 보상을 해줘야 할지 등에 집중돼 있습니다. 누굴 ‘소상공인’으로 볼 것인지, 왜 다른 업종보다도 소상공인을 더 지원해야 하는지 등을 깊이 있게 이야기하진 않죠.” 

우리나라의 소상공인 피해구제는 원칙보다는 정치적 합의에 따라 결정됐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의 소상공인 피해구제는 원칙보다는 정치적 합의에 따라 결정됐다.[사진=뉴시스]

✚ 근본적인 문제를 합의하지 않은 채 손실보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사회적 합의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문제의 본질을 합의해야 기준을 잡고, 그런 기준이 있어야 국민이 공감하는 정책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보상액도, 보상 방식도, 재원마련 방안도 달라집니다. 이래선 곤란합니다.”

✚ 정치적으로 기준이 정해져선 안 된다는 지적이네요.
“그렇습니다.”

✚ 우리나라에서 이런 기준들이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경험이 부족해서인 듯합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국민에게 사회보상을 제대로 해 준 적이 없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혹은 군사독재로 많은 국민이 피해를 입었지만 보상은 극히 일부에서만 이뤄졌죠. 보상에 일관성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이번처럼 코로나19 관련 보상에서도 우왕좌왕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 정당한 기준을 잡기 위해 우리가 벤치마킹할 만한 사례가 있을까요. 
“독일 사례를 한번 들어볼까 합니다. 독일은 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죠. 다른 나라 국민에게도 피해를 끼쳤지만 자국 국민 역시 적지 않은 피해와 손해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범정부적으로 구제를 해줘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부담조정의 원칙’이라는 걸 적용했습니다.”

✚ ‘부담조정의 원칙’이라는 게 뭔가요.
“독일 헌법에 따르면,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삶의 조건을 갖춰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쟁 피해를 입은 이들이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과 동일선에서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줄 필요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부담조정의 원칙’입니다. 단순히 피해를 얼마나 보상해줄 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게 아닌 거죠.”

✚ 당연하고, 합리적인 원칙 같은데요. 
“그렇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엄밀히 말해 ‘기회를 평준화해 주자’는 건데, 이런 얘기를 하면 우리나라에선 대뜸 사회주의부터 떠올리니까요.”

✚ 독일은 ‘부담조정의 원칙’을 전쟁 피해구제에만 적용했나요? 
“아닙니다. 독일은 이 원칙을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지역간 균형발전 정책을 만들 때에도 ‘부담조정의 원칙’을 적용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별 재정 상황에 따라 세제稅制를 다르게 적용하기도 하고, 재원을 재분배하기도 했죠. 잘사는 곳과 못사는 곳이 나뉘어 있으면 기회가 달라지니까 환경을 비슷하게 만들어주려는 취지에서였습니다. 

독일은 연금제도에도 같은 원칙을 반영했습니다. 비슷한 특징을 가진 사회계층을 묶고, 해당 사회계층이 속한 연금의 재정을 조정했죠. 그래야 공정한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가령,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엔 각각 다른 연금제도를 적용했는데, 블루칼라의 소득수준이 낮아 재정의 균형이 무너지면 재정 재분배를 통해 균형을 맞추는 식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부담조정의 원칙은 독일 통일 준비과정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통일독일은 동독 국민의 삶을 서독 수준으로 맞춰 준다는 취지에서 동독을 지원했죠. 서독 국민이 그런 지원을 감내할 수 있었던 것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마련된 ‘부담조정의 원칙’ 덕분이었습니다. 

✚ 정책 곳곳에 일관된 철학이 녹아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맞습니다.”

✚ 그러면 새로운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을 위한 논의가 좀 더 빨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사회가 합의한 큰 원칙 안에서 다양한 정책을 내놓을 수 있으니까 소모적 논쟁이나 정치적 의사결정은 줄어들겠죠.”

✚ 보상을 하더라도 합의된 철학이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물론 제가 독일의 사례를 말씀드리는 이유는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소모적 논쟁으로 인해 시간을 낭비하고, 정치적 결정으로 일관되지 못한 정책을 내놓는 경우가 많으니 이런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지 않겠냐는 겁니다.”

코로나19 보상 절차는 빠르게 진행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실질적인 보상을 위한 논의도 이뤄져야 할 겁니다. 하지만 속도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50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손실보상을 정치적으로 결정해선 안 됩니다. 중요한 건 사회적 합의이자 철학입니다. 어떤 게 진정 ‘국민이 행복해지는 방법’인지 생각해볼 시점입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이정우 인제대 교수
socwjw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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