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현장 투입 위해 만들어진 모듈러 주택
일반 주택보다 경제성 뛰어났지만
임시조립주택에 밀려 투입 어려워

모듈러 주택은 이른바 ‘레고형 공정’으로 이목을 끌었다. 미리 만들어놓은 자재를 건설 현장에서 뚝딱 조립만 하면 완성돼 경제성과 빠른 시공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때문에 국토교통부는 모듈러 주택이 재난 현장에서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2022년 산불 재난 현장엔 모듈러 주택이 공급되지 않았다. 뜻밖에도 경제성이 좋지 않다는 게 발목을 잡았다.

2022년 산불 피해 이재민 주거 지원을 위해 188동의 컨테이너형 임시조립주택이 제공됐다.[사진=뉴시스]
2022년 산불 피해 이재민 주거 지원을 위해 188동의 컨테이너형 임시조립주택이 제공됐다.[사진=뉴시스]

2022년 봄 강원ㆍ경북 산불은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를 만들었다. 2만4523㏊의 산림이 불탔고 587명의 이재민이 322호의 집을 잃었다. 피해액은 2261억원, 계획된 복구 비용은 4000억원을 넘어섰다.

3월 4일 시작된 강원ㆍ경북 산불은 213시간 만에 진압됐지만 피해 복구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3월 10일 정부는 동해안 산불 피해 수습ㆍ복구지원 방향을 발표하고 실행에 옮겼다.

가장 급한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연수원을 비롯한 공공시설이나 공공임대주택, 매입임대주택을 최대한 활용하거나 민간주택을 전세임대주택 등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한시적 조치다. 주택이 불타 사라진 자리에 ‘임시주택’을 만들기 전까지다.

그런데 이 지점에선 한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공공임대주택을 왜 ‘임시주택’을 만들기 전까지만 대안으로 활용하겠다는 걸까. ‘새 주택’을 지을 때까지 이주민들을 공공임대주택에 머물게 할 순 없었던 걸까.

이 질문의 답은 간단하다. 공공임대주택이든 매입임대주택이든 이미 만들어진 주택은 이재민이 ‘필요한’ 지역에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새 주택이 지어질 때까지 거주지를 떠나 임대주택에 머물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정부가 이재민이 임대주택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을 ‘임시주택’을 만들 때까지로 정한 이유다.

문제는 임시주택의 ‘질質’이다. 이재민을 위해 품질 좋은 임시주택을 공급하는 것도 정부나 지자체가 제공해야 할 서비스 중 하나다. 그렇다면 임시주택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표적인 건 컨테이너형 조립 주택이다. 말 그대로 컨테이너를 이용해 만든 주택으로, 크기는 대략 24㎡(약 7.3평)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임시주택은 ‘모듈러 주택’이다. 이는 이미 제작해 놓은 콘크리트 벽체와 바닥을 건설 현장에서 직접 조립하는 주택을 말하는데, 경제성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일반 주택을 만들 땐 먼저 땅을 다져 터를 만들고 배관공사를 한다. 그 위에 철골로 뼈대를 세우고, 콘크리트를 타설한다. 당연히 양생養生(콘크리트가 굳을 때까지 보호ㆍ유지하는 일) 과정이 필요해 제작기간이 제법 필요하다.

모듈러 주택의 제작 공정은 완전히 다르다. 공장에서 만들어놓은 콘크리트 자재를 건설 현장으로 옮겨와 조립하면 끝이다. 자재 안에 전기배선 등이 깔려 있어 제작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날씨가 험해도 준공이 가능하고, 양생 과정도 필요 없다. 이렇게 공사기간이 줄어드니 공사비도 감소하고 사업성 역시 좋아진다. 

선택받지 못한 모듈러 주택

이런 장점 때문인지 국토교통부는 2015년부터 모듈러 주택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2018년엔 ‘모듈러주택 활성화를 위한 공공주택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해 평창 동계올림픽에선 기자단 숙소를 모듈러 주택으로 제공해 호평을 이끌어냈다. 

재난 현장에서도 모듈러 주택은 그 가치를 입증했다. 전국재해구호협회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총 28호의 모듈러 주택을 재난 상황에 처한 가구에 지원했다. 그럼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이번 강원ㆍ경북 산불 현장에서도 모듈러 주택은 유용하게 쓰였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행정안전부가 산불 피해 지역에 투입한 임시주택은 총 188동이었는데, 모두 컨테이너형이었다. 모듈러 주택에 비해 단열 성능 등이 좋지 않은 컨테이너형이 낙찰받은 이유는 뭘까. 

행안부가 밝힌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성이다. 행안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컨테이너형 임시주택은 1동 제작비가 4000만원가량이다. 하지만 모듈러 주택은 1동에 6000만여원을 투입해야 하는데다, 시공기간도 컨테이너형보다 2~3개월이 더 필요하다는 자문을 받았다.” 모듈러 주택의 장점으로 꼽히던 ‘저렴한 가격’과 ‘빠른 시공’이 인정받지 못한 셈이다. 

그렇다고 성능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도 아니다. 행안부 관계자는 “재난 현장에서 주택으로 사용되는 컨테이너형 임시주택이나 모듈러 주택은 일정 기준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며 “그 때문에 성능 차이가 있다고 보긴 힘들다”고 꼬집었다. 

모듈러 주택은 재난 피해자, 이재민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주택으로 공급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정부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모듈러 주택은 정말 경제성이 없어서 낙점받지 못한 걸까, 아님 경제성(비용)에만 초점을 맞춘 정부의 판단 때문일까. 모듈러 주택은 또 언제쯤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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