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만 빅딜 후 멈춘 M&A 시계 째깍째깍
M&A 전문가 안중현 등장의 함의
파운드리, 시스템 반도체 M&A 노릴까

# 인수ㆍ합병(M&A)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인적ㆍ물적 자원은 물론 첨단 기술력까지 단번에 확보할 수 있어서다. 애플ㆍ구글ㆍ아마존 등 세계적인 기업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들이 몸집을 키우고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M&A 시장을 찾는 이유다. 

# 하지만 삼성전자의 M&A 시계는 현재 멈춰있다. 2017년 미국 전장기업 하만을 인수한 게 마지막 빅딜이다. 그래서인지 추격 속도가 떨어진 파운드리, 성장이 더딘 시스템 반도체, 기반이 약한 신사업 등 삼성전자의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M&A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ㆍ강화하지 않고선 장밋빛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 삼성전자도 이런 우려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M&A 전담조직을 개편하고, M&A에 능통한 전문가를 새로 영입했다. M&A에 쓸 실탄도 ‘장전’해 놨다. 그동안 쌓인 순현금 보유액은 108조원에 이른다. 

# 물론 M&A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M&A 후 별다른 실적을 올리지 못한 채 다시 떼 낸 사례는 어느 기업에서든 쉽게 찾을 수 있다.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의 화학적 결합을 꾀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M&A 심사가 까다로워진 국제 분위기를 감안할 때 M&A가 이전보다 어려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어쨌거나 ‘뉴삼성’을 선언한 삼성전자는 멈춰선 M&A 시계를 다시 돌리고 있다. 삼성은 새로운 미래를 그려낼 수 있을까. 

 

삼성전자가 M&A를 추진하기 위해 인사ㆍ조직개편을 단행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가 M&A를 추진하기 위해 인사ㆍ조직개편을 단행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삼성전자의 때아닌 ‘원포인트 인사’에 시장의 이목이 쏠렸다. 연말 정기인사 시즌이 한참 지난 뒤의 인사 발령으로, 흔치 않은 일이었다. 승진 대상자는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소속 안중현 부사장. 삼성전자 내부에서 인수ㆍ합병(M&A) 전문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2004년 삼성전자-소니 LCD 패널 합작회사 설립 건, 2015~2016년 한화ㆍ롯데그룹과의 화학ㆍ방산사업 매각 건, 2017년 미국 전장업체 하만 인수 건 등 굵직한 M&A를 주도했다. 삼성전자는 안 사장을 삼성글로벌리서치(옛 삼성경제연구소) 미래산업연구본부장(사장급)으로 임명했다. 

예기치 않은 인사였던 만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고, 시장 사람들은 이를 “삼성전자의 대형 M&A가 초읽기에 들어섰다”고 해석했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다. 2021년 1분기 실적 발표 당시 “3년 내 의미 있는 규모의 M&A가 있을 것”이라고 공언했던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대형 M&A를 위한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대표적인 게 사업지원TF 수장 정현호 사장을 부회장으로 임명한 일이다. 사업지원TF는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의 후신으로 통하는데, M&A 전략도 이곳에서 수립한다. 정현호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사업지원TF도 부회장급 조직으로 승격한 셈이다. 당연히 사업지원TF에 더 많은 힘이 실릴 공산이 크다.

M&A 전문가도 추가 영입했다. 그중 한명이 해외 M&A 전문가 임병일 부사장이다. 리먼브라더스, 크레디트스위스, UBS증권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을 거치며 숱한 M&A를 성사시킨 임 부사장은 지난해 6월 삼성증권으로 이직했다가 6개월 만인 지난해 말 삼성전자 사업지원TF로 배치됐다. 

 

앞서 언급했던 안중현 사장의 인사도 M&A 밑그림의 연장선에 있다. 일부에선 M&A를 총괄하던 안 사장이 사업지원TF에서 빠진 것을 두고 “삼성전자의 노선이 바뀐 것 아니냐”고 반문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안 사장이 옮겨간 삼성글로벌리서치의 성격이 이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 삼성경제연구소의 성격이 국내외 경제 동향과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살피는 민간 싱크탱크였다면, 삼성글로벌리서치는 기업 역량 강화를 위한 내부 컨설팅 기관에 가깝다. 실제로 삼성글로벌리서치는 지난해 사명을 바꾼 뒤 “글로벌 경영환경 분석과 관계사 산업ㆍ경영 연구 관련 선제적 지원을 통해 ‘삼성의 글로벌 초일류화’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다졌고, 그에 맞춰 대규모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M&A에 정통한 안 사장을 삼성글로벌리서치로 발령한 건 M&A 작업을 지원하기 위한 포석을 놓은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이런 맥락에서 삼성전자의 M&A도 어느 정도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참고: 그 이후에도 삼성전자는 M&A 관련 조직을 더 강화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 출신의 반도체 투자 전문가 마코 치사리를 영입해 반도체혁신센터(SSIC) 센터장으로 임명했고, 신사업TF도 신설했다. 신사업TF는 한종희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직속 조직으로, TF장은 M&A에 정통한 김재윤 부사장이 맡았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이렇게까지 M&A에 힘을 쏟는 이유가 뭘까. 삼성전자는 지난해 51조633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2018년 이후 최고 실적을 거뒀다. 올해 영업이익은 무려 60조원대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삼성전자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지난해 8만원대를 웃돌던 주가가 현재 6만원대로 내려앉은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삼성전자의 신성장동력을 둘러싼 우려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메모리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제외하곤 딱히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고 있는 사업이 없다. 특히 삼성전자가 주력 사업으로 육성 중인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성적이 기대치를 밑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ㆍFoundry) 사업에선 1위 TSMC와의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는 데다, 이젠 인텔의 추격까지 따돌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더구나 올 상반기부터 3나노(㎚ㆍ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공정을 도입할 계획이었지만, 현재 4나노 공정 수율을 개선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 설계 분야는 성장속도가 더욱 더디다. 
 
삼성전자 M&A 신경 쓰는 이유

그렇다고 미래 산업의 신기술과 경쟁력을 남다르게 쌓고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 삼성전자가 로봇과 메타버스를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며 출사표를 던졌지만 장밋빛 미래를 안겨다 줄지는 미지수다. “소프트웨어 분야에 약한 삼성전자로선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아서다.

 

이재용 부회장이 선언한 뉴삼성의 윤곽이 아직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았다.[사진=뉴시스]
이재용 부회장이 선언한 뉴삼성의 윤곽이 아직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았다.[사진=뉴시스]

M&A는 이런 우려를 덜고 신성장동력을 발굴ㆍ강화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과거에도 숱한 M&A를 통해 변화와 성장을 꾀했다. 2015년 미국 모바일결제 솔루션업체 루프페이를 인수해 ‘삼성페이’를 선보인 건 대표적인 예다.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비서 빅스비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2016년 인수한 미국 AI 플랫폼 개발업체 비브랩스의 기술력 덕분이다. 2017년엔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핵심인 전장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80억 달러(약 10조원)의 거액을 투자해 미국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했다. 

그밖에도 디지털 사이니지(특정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디스플레이) 분야 진출을 위해 미국 디스플레이업체 예스코 일렉트로닉스를, 의료기기ㆍ헬스케어 사업 강화를 위해 메디슨ㆍ넥서스ㆍ뉴로로지카를 인수하기도 했다. 그렇게 M&A한 기업이 2010년 이후로만 따져도 30여곳에 이른다. 

그렇다면 ‘유의미한 규모의 M&A’를 예고한 삼성전자가 이번에 노리는 곳은 어디일까. 아무래도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경쟁력을 개선하는 데 첫번째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특히 파운드리의 경우, M&A 없이는 TSMC와의 격차를 단기간에 좁히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무엇보다 TSMC와 삼성전자는 생산능력 차이가 매우 크다. 직접 공장을 짓는 것만으로는 이 격차를 빠르게 좁히기 힘들다. M&A를 통해 생산능력을 확충하는 게 나은 방법일 수 있다. 다만, 최근 반도체 공급망 이슈로 파운드리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어 M&A 추진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시스템 반도체에서 빅딜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지센서(CIS)는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어느 정도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ㆍ통신칩 등은 M&A를 통하지 않으면 부족한 기술력을 채우기 쉽지 않아서다. 특히 최근 주목받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분야 기업의 인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NXP(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기업) 인수설이 돌고 있을 만큼 삼성전자가 약한 부분의 M&A가 많이 언급되고 있다”면서도 “다만, 소프트웨어 쪽에서 취약한 삼성전자가 M&A 이후 이런 기업들과 어떻게 시너지를 낼지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M&A 드라마틱한 반전 없을 수도 

삼성전자가 최근 출사표를 던진 로봇ㆍ메타버스 등 신산업 분야에서의 M&A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다만, 신산업일수록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승우 애널리스트는 “신산업의 경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떤 전략을 가져갈지 잘 따져봐야 할 것”이라면서 “특히 메타버스는 지난해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였지만 올해만 해도 벌써 시들해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M&A가 늘 드라마틱한 반전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두 기업이 시너지를 내지 못할 수도 있고, 미래 먹거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신시장이 속빈 강정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삼성전자도 역대 M&A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거둔 적이 많지 않다. 앞서 언급한 루프페이와 비브랩스의 인수는 나름 성공적이었지만, 하만의 경우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초반의 부진한 실적을 극복하면서 지난해 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긴 했지만 10조원에 육박하는 인수대금을 감안하면 만족스럽진 못한 게 사실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인수 이후 빛을 보지 못하고 재매각한 경우도 상당수다. 2011년 인수했던 미국 의료기기업체 넥서스를 7년 만인 2018년 매각한 건 대표적인 예다. 프린팅 사업 강화를 위해 2015년 브라질 프린팅솔루션 업체 심프레스를 인수했다가 2년 뒤 프린팅 사업을 매각하기도 했다. 

더구나 M&A 심사가 까다로워진 현 국제 분위기상 빅딜은 성사 자체가 어려울 공산도 크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M&A를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요즘 국제적으로 M&A 승인을 안 하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예고한 대로 유의미한 규모의 M&A를 성사시킬 수 있을까. 중요한 건 규모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느냐다. 이번 M&A는 이재용 부회장의 ‘뉴삼성’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우려를 씻어내고 장밋빛 미래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고준영 더스쿠프 경영전문기자
shamandn2@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