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부부의 재무설계 上

뜻하지 않게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족이 된 부부가 있다. 남편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어서 자녀를 갖는 건 불가능했지만 부부는 실망하지 않았다. 월 수백만원을 내집 마련에 투자하는 등 착실하게 생활했다. 문제는 집 마련에 성공한 이후였다. 저축할 이유가 사라진 부부가 자제력을 잃고 과소비에 빠졌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와 한국경제교육원㈜이 이 부부의 사연을 들어봤다.

딩크족의 문제점은 절제력을 잃고 과소비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딩크족의 문제점은 절제력을 잃고 과소비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양기훈(가명·40), 김하나(가명·39)씨 부부는 자녀가 없다. 아이가 없는 삶을 원했던 건 아니다. 좀처럼 임신이 되지 않자 부부는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았고, 양씨의 몸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인 걸 알게 됐다.

가슴 아픈 상황이지만 부부는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이용해 둘만의 시간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부부는 휴일에 온종일 카페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계절마다 여행을 다니는 등 현재에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 두 사람이 맞벌이를 하고 있었고, 양육비도 들지 않았기에 이런 생활을 하는 데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다행히 부부 주변엔 비슷한 처지인 사람이 많았다. 싱글인 지인들이 많은 데다 그중엔 비혼非婚을 선언한 이들도 있었다. 모두 부부를 응원해서인지 자녀가 없는 건 두 사람에게 아쉬움을 주지 않았다. 되레 양육비가 들지 않아 집을 마련하는 과정이 순탄했다. 지난 1월 부부는 주택담보대출을 전부 갚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문제가 그때부터 생겼다. 부부는 한달에 300만원씩 주택담보대출을 갚는 데 쓰고 있었는데, 앞으로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자녀의 학원비나 대학 등록금, 결혼자금을 준비할 필요도 없었기에 더 그랬다. 노후 준비도 이제 40대에 접어든 부부에겐 먼 얘기처럼 느껴졌다. 두 사람에겐 미래를 위해 저축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자연히 지출이 늘기 시작했다. 남편 양씨는 “여태까지 집을 마련하느라 고생했으니 취미생활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고, 아내 김씨도 이 말에 동의했다. 평소 골프가 취미인 양씨는 용돈을 늘려 골프 장비를 잔뜩 사들였고, 골프를 치는 횟수도 늘렸다. 아내도 골프에 빠지면서 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용돈뿐만 아니라 다른 지출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반려견을 키우는 데 쓰이는 사룟값부터 통신비, 휴가비 등이 갑절로 늘었다. 그래도 300만원을 전부 쓰진 못했지만 부부는 점점 불안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가계부가 조만간 ‘마이너스’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는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가계부를 재정비하기 위해 필자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럼 문제의 가계부를 살펴보자. 중견기업에 다니는 두 사람의 월소득은 총 605만원이다. 남편이 310만원, 아내가 295만원을 번다. 연 100만원의 상여금이 있긴 하지만 정기 소득이 아니므로 여기선 제외했다.

정기지출로는 공과금 18만원, 생활비 105만원, 통신비 22만원, 교통비·주유비 59만원, 보험료 89만원, 부부 용돈 160만원 등 453만원을 쓴다. 1년간 쓰는 비정기 지출은 명절비·경조사비(연 100만원·이하 1년 기준), 각종 세금(97만원), 반려견 비용(130만원), 부모님 용돈(100만원), 휴가비(500만원), 자동차 보험료(100만원) 등 1027만원이다. 한달에 85만원씩 쓰는 셈이다. 이렇게 부부는 한달에 총 538만원을 쓰고 67만원을 남기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부부는 지출을 약간만 줄이면 곧바로 재무 솔루션을 짤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부부는 자녀의 대학 학자금, 결혼자금 등을 마련할 필요가 없으므로 잉여자금 67만원에 몇십만원만 추가하면 괜찮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월 300만원씩 재테크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안정적인 노후를 대비하는 건 물론이고 미래에 더 큰 집으로 이사하는 등 규모가 큰 계획을 세우는 것도 가능하다.

필자의 권유에 따라 부부는 지출을 좀 더 줄여서 여유자금을 많이 확보하기로 결정했다. 1차 상담에선 워밍업 겸 간단히 지출을 줄여보기로 했다. 첫번째 타깃은 식비가 포함돼 있는 생활비(105만원)다. 두 사람이 다니는 회사는 모두 점심 식사비를 지원하고 있다. 아침은 토스트나 시리얼로 간단히 해결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생활비에 105만원씩 쓰는 건 과한 면이 있다.

원인은 저녁 식사에 있었다. 부부는 퇴근 후 만나 술집을 가거나 외식을 하는 등 저녁을 먹는 데 과한 지출을 하고 있었다. 부부 사이를 돈독히 유지하는 건 좋지만 앞으로는 술자리와 외식 횟수를 좀 줄이기로 했다. 이렇게 생활비를 105만원에서 70만원으로 35만원 줄였다.

통신비(22만원)도 절감했다. 두 사람은 각각 9만원짜리 값비싼 5G 요금제를 이용하고 있다. 이런 경우 보통은 상담자의 데이터 사용량에 걸맞은 요금제로 조정하지만, 부부는 꽤 많은 데이터를 쓰고 있어 요금제를 낮추기 쉽지 않다.

필자는 요즘 상담자에게 가능하면 알뜰폰을 쓸 것을 강력하게 권하고 있다. 알뜰폰이 이통3사 대비 요금제 가성비가 무척 좋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엔 알뜰폰으로 번호를 이동하는 고객에게 가격을 확 낮춰주는 프로모션 요금제도 많다. 부부는 번호이동으로 3만원대 알뜰폰 요금제를 쓰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22만원이었던 통신비는 10만원으로 12만원 절감했다.

이렇게 1차 상담이 끝났다. 부부는 생활비 35만원(105만→70만원), 통신비 12만원(22만→10만원) 등 47만원을 줄이는 데 성공했고, 잉여자금도 67만원에서 114만원으로 늘었다. 물론 여기에서 그쳐선 안 된다. 160만원에 달하는 부부 용돈과 보험료(89만원), 휴가비(연 500만원) 등 줄여야 할 게 숱하다. 1차 상담에선 사연을 듣느라 시간이 부족했으므로 다음 상담 때 본격적으로 지출을 줄여보도록 하겠다.

​​​​​​글=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
shnok@hanmail.net | 더스쿠프 전문기자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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