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으로 쉽게 진정되지 않아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 가능성

5월 9일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첫 과제는 ‘물가 안정’이다. 무섭게 치솟은 물가 탓에 서민들의 곡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어서다. 밀가루와 식용유 가격이 치솟고, 경유 가격은 1L당 2000원을 돌파했다. 정부가 여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듯한데, 이 무서운 물가 상승세를 막을 만한 정책이 있을까.

우리 경제 곳곳에서 물가 상승세가 가팔라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우리 경제 곳곳에서 물가 상승세가 가팔라지고 있다.[사진=뉴시스]

# 분식집에서 파는 튀김만두를 즐겨 먹는 A씨. 얼마 전 튀김만두를 한입 베어 물었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남은 조각을 보니, 튀김만두 속이 예전과 다르게 허전했다. 속 재료인 당면이 눈에 띄게 줄어든 거다. A씨의 아내도 맞장구를 치는 걸 보니, 단순히 기분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 B씨는 퇴근길에 순대를 사러 갔다가 머쓱한 경험을 했다. 순대 1인분을 주문하고 평소처럼 1000원짜리 지폐 3장을 내밀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바쁘게 사느라 물가 오르는 것도 몰랐나보다. 얼마 전에 4000원으로 올렸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제야 박씨는 눈을 들어 가격표를 확인했다. 숫자 3이 있던 자리에 스티커 4가 붙어 있었다. 

# 전통시장에서 꽈배기 등 도넛을 만들어 파는 C씨. 그는 최근 도넛 가격을 올렸다. 4개에 2000원씩 팔았는데, 이젠 3개에 2000원을 받는다. 함께 장사를 하는 아내와 몇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지만 손님들이 “가격이 올랐나 봐요?”라고 물을 때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물가가 비상이다. A씨가 예전보다 허전한 튀김만두를 먹고, B씨가 순대 1인분에 1000원을 더 지불해야 했으며, C씨가 도넛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건 모두 물가 탓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4월 106.85(2020=100)를 기록했다. 전년 동월 대비 4.8% 상승했는데, 이는 2008년 10월 이후 1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그중에서도 생활물가가 심상찮다.

[※참고:  5월 소비자물가지수도 107.56(2020=100)으로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했다. 2008년 8월(5.6%) 이후 13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로 올라선 것도 2008년 9월(5.1%) 이후 처음이다.]

‘○○ 이후 최고 수치’ ‘○○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 요즘 물가 관련 지표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문구다. 그만큼 물가가 고삐 풀린 듯 치솟고 있다는 얘기다. 왜일까.

2020년 3분기로 시계를 돌려보자. 당시 기상 이변으로 전 세계 곡물 주요 수출국들이 작황에 어려움을 겪고, 코로나19 확산으로 물류까지 차질을 빚으면서 국제 곡물가격이 꿈틀거렸다. “시차를 감안하면 국내에선 2021년 2분기나 3분기부터 식품가격 인상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그때의 전망처럼 국내에선 지난해 하반기부터 물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올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식량 위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대표적인 곡물 생산지다. 두 국가의 밀과 보리 수출량은 전세계 수출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옥수수도 세계시장의 5분의 1이 두 나라에서 생산된다. 이런 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니 경작과 수확은 물론 수출까지 원활할 리 없고, 국제 곡물가격은 뛰어오를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로, 밀 가격을 보자. 시카고선물거래소(CBOT)에 따르면 지난해 5월 24일 톤(t)당 243.33달러였던 밀 가격은 올해 5월 24일 424.66달러로 74.5% 올랐다. 이런 상황에 식료품 수출을 금지하는 국가들까지 등장하며 그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이번엔 팜유를 보자. 전 세계 팜유 공급량의 60%가량을 생산하는 인도네시아는 지난 4월 ‘자국 가격 안정’을 이유로 약 한달간 팜유 수출을 금지했다. 그러자 곳곳에서 ‘식용유 대란’이 일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통시장에서 도넛을 파는 C씨가 2만2000원에 사던 업소용 18L 식용유를 최근 6만원에 들여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미리 사놓으라는 ‘신호’가 있긴 했는데,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긴 대가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밀가루·식용유 등 원재료 가격이 오르니 가공식품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국수·라면·빵·과자류 등 너나없이 가격이 올랐다. 어디 가공식품뿐일까. 밀·옥수수 가격이 폭등하며 그 영향이 사료가격에 미치면서 육류 가격도 오름세다.

외식비는 또 어떤가. 자장면·칼국수 등 밀가루를 주 원재료로 하는 외식메뉴 가격은 앞자리가 바뀌었다. 자장면 한그릇 평균가격(이하 서울·4월 기준)은 1년 새 5385원에서 6146원으로 올랐고, 칼국수는 7462원에서 8269원으로 뛰었다. 농산물 가격 상승이 일반 물가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 일어나고 있는 거다.


무서운 건 물가 오름세가 쉽게 진정되지 않을 거란 점이다. 나쁜 변수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게 그 이유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손을 써도 한계가 있다는 거다.

일단 물가를 낮추기 위해선 기준금리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5월 26일 기준금리를 0.25% 인상했다. 지난 4월 14일 1.25%에서 1.50%로 끌어올린 것에 이어 두달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한 셈이다. 물가를 잡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금리를 인상하면 수요(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물가상승→금리인상→소비위축→경기침체라는 악순환이 심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또 다른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감세 또는 일자리 창출 등이 그것이다. 범정부 차원에서도 이런 내용을 담은 민생안정대책을 곧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물가를 잡는 건 단기간에 이뤄낼 수 있는 성과가 아니다. 기어코 물가를 잡는다고 해도 그사이 서민들로선 무거운 짐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김상봉 한성대(경제학) 교수는 “경기 상황이 심상치 않다”면서 “이미 스태그플레이션(경제 불황과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stagflation)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금리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감세, 일자리 창출정책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기엔 한참 늦었다. 지금부터 정책을 편다고 해도 수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고, 효과도 장담하기 어렵다. 국내 경기가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5월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암울한 전망을 엿볼 수 있다. 이 조사에서 향후 1년 간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을 전망하는 ‘기대인플레이션’은 3.3%로 2021년 10월 이후 9년 7개월 만에 가장 높게 나타났다. 지난 1년간 소비자들이 체감한 소비자물가상승률을 의미하는 ‘물가인식’도 2013년 1월 이후 최고 기록인 3.4%로 집계됐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데 근거를 제시한 ‘금리수준전망’도 전월 대비 5포인트 상승한 146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썼다. 무엇 하나 낙관적인 전망이 없다. 민생에 내려앉은 그림자가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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