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화학물질 누출 사고 “왜”

▲ 화학물질 누출사고의 책임이 정부에만 있는 건 아니다. 대기업도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정부의 관리체계 부실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성분조차 모르는 화학물질이 수입•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성분을 모르면 콜라도 수입하지 않는 일본과 대비된다. 환경부가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 유독성 화학물질은 전체 화학물질의 1%에 불과하다.

최근 한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불산’ ‘염산’이라는 단어가 인기검색어로 떠올랐다.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국민의 불안감이 커졌다는 얘기다.

지난해 9월 27일 경북 구미시 산동면의 구미4공업단지 주변은 희뿌연 연기에 뒤덮였다. 중소화공업체 휴브글로벌 생산공장에서 8t가량의 불산(불화수소산)이 누출돼서다. 불산이 들어있는 탱크로리 송출밸브가 열려 있는 걸 모르고 작업했던 게 원인이었다. 이 사고로 노동자 5명이 숨지고, 인근 주민 수십여명이 다쳤다. 하늘로 흩어진 불산이 또 다른 주민과 농작물에 2차 피해를 입히면서 정부는 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고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초기대응이 미흡했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유관부처가 명확하지 않아 대응이 늦었기 때문이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화학물질 관리체계는 편의에 따라 부처별로 나눠놓은 수준이다”며 “유독성 물질은 환경부가 맡고,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화학물질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는 식이니 제대로 관리될 리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지난해 12월 김황식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통해 ‘유해화학물질 안전관리 개선대책’을 내놨고, 화학물질 사고 초기대응과 사고수습을 환경부에서 일원화하도록 했다.
그로부터 넉달이 채 지나지 않은 올해 1월 12일 경북 상주시 웅진폴리실리콘 공장에서 200여t의 염산이 누출되는 사고가 터졌다. 화학물질을 부실하게 관리했던 공장 측은 3시간이 넘도록 사고사실을 숨겼다. 염산 누출사고를 주민이 신고했지만 상주시는 이를 묵살했다. 초동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동안 눈(물)과 반응한 염산이 흩어져 2차 피해 우려를 낳고 있다. 하지만 대구지방환경청 관계자는 “휴업 중이어서 관리대상에서 제외했다”고 해명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안전관리개선대책과 관련 부처별 세부대책을 마련하는 중에 일어난 사고였다”고 발뺌했다.

사고는 3일 뒤인 15일 또 터졌다. 충북 청주시 청주공단 내 유리가공 업체에서 불산이 누출됐다. 근무자가 넘어지면서 PVC 파이프를 발로 밟아 깨뜨렸고 이 과정에서 불산이 누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후약방문 아닌 사전예방 해야

화학물질이란 산업의 필요에 의해 특정한 조건에 반응하도록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물질이다. 자연적이지 않은 만큼 사람 몸에 좋을 리가 없다. 유독성 화학물질은 더욱 그렇다. 그중 불산은 증기가 피부에 닿기만 해도 탈색과 물집이 생긴다. 호흡기로 들어가면 폐부종이나 심장마비가 일어날 수 있다. 강력한 산성물질인 염산은 피부를 녹일 정도로 부식성이 강하다. 정부가 화학물질 관리체계를 철저하게 구축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화학물질 유출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화학업체 관계자는 “고위험 화학물질을 제대로 다루려면 첨단시설투자가 우선해야 한다”며 “대부분의 업체들은 영세하다 보니 노후화된 시설이 많다”고 지적했다. 조삼래 한국화학물질관리협회 상임이사는 “운송이나 저장 중에 사용자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많다는 것은 사업장에서 화학물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며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세우고 규정을 잘 지키도록 처벌규정을 만드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전체 화학물질 사고 중 절반 이상이 안전관리 미흡으로 발생했다.

중요한 원인은 또 있다. 최근 일어난 세번의 화학물질 누출사고에서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사전예방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거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화학물질 사고대책은 사후관리 위주”라며 “이는 사전예방이 안되고 있다는 의미로,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이정임 경기개발연구원 환경연구부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제2의 불산사고 사전관리가 해법이다’라는 보고서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정임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전 세계에 유통되는 화학물질수는 10만여종이다. 매년 2000여종이 새로 개발돼 유통된다. 그중 4만3000여종이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으며 매년 400여종이 새로 유입되고 있다. 문제는 국내에서 유통되는 화학물질 중 85%의 기초정보를 모른다는 거다.” 화학물질의 정보가 공유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분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환경부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관리하는 유독성 화학물질은 올 1월 현재 652종으로 총 4만3000여종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환경부 관계자는 “유통량 조사대상 기준에 해당하는 화학물질만 관리하기 때문”이라며 “단일물질은 100㎏ 이상, 혼합물질은 1t 이상이 유통되는 유독물질이어야 관리대상에 오른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국내 화학 관련 기업이 어떤 화학물질을 몇 종이나 취급하는지를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환경통계포털의 화학물질 유통정보에도 관련 정보가 전혀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화학물질 정보가 영업비밀에 막혀 꽁꽁 숨어 있단 얘기다. 화학물질에 대한 현황파악이 되지 않으면 사후대책을 내놔봐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화학물질 정보공유가 문제해결의 열쇠란 얘기다.

국내기업이 화학물질의 기초정보도 모른 채 수입하는 경우도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이 인제대(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국내 주력 산업인 반도체분야에서 사용하는 수백가지의 가스 중 대부분이 맹독성을 가진 화학물질”이라며 “기업이 어떤 화학물질을 사용하는지를 공개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기업에서도 해당 화학물질의 성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누렸던 혜택만큼 책임질 차례

▲ 1월 14일 상주시 웅진폴리실리콘 공장. 사고가 난 이틀 뒤에도 계속 염산이 새어 나와 하늘이 뿌연 연기로 가득하다.(사진=뉴시스)
좋은기업센터와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2010년 9월 화학물질 이슈리포트를 발간했다. 서울대의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화학물질 노출평가 자문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으로, 삼성전자의 화학물질 관리실태가 기록돼 있다. 보고서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사용한 99종의 화학물질 중 자체적으로 성분을 확인한 경우는 단 한건도 없었다”며 “언제부터 사용했는지조차 모르는 제품은 60%에 달했다”고 꼬집었다. 국내 최고기업조차 화학물질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데, 영세한 중소기업은 오죽하겠느냐는 주장이 나올법하다.

윤인섭 서울대(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일본은 콜라도 성분을 모르거나 확인하지 않으면 수입할 수 없다”며 말을 이었다. “IT•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산업이 발전하면서 독성이 센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게 됐고, 종류도 많아졌다. 화학물질의 종류가 많아진 만큼 관리를 까다롭게 해야 하는데, 관련법부터 산업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대응능력이 떨어졌다.”

문제는 화학공장에서만 유독성 화학물질을 다루는 게 아니라는 거다. 금속산업이나 IT산업에서도 쓰인다. 특히 관리가 까다로운 화학물질 대부분은 중소기업에서 생산•저장•유통하는 사례가 많다. 대기업이 자체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대형 생산공장과 달리 중소기업 공장은 주거시설에 인접해 있는 경우가 많다. 화학물질이 누출되면 주민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얘기다. 윤 교수는 “주거시설이 인접한 곳에 이런 사업장이 많이 들어서게 된 것은 사고 발생의 위험성이 더 늘어난 이유”며 “대기업은 위험을 전가한 만큼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이 화학물질의 1차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글로벌 화학기업인 바스프는 협력업체와 계약시 안전준수 규정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업체 현장 검사 후에 개선을 위한 각종 지원을 하고,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으면 거래를 중단하기도 한다.

정부는 정부대로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역할을 나누면 2중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화학물질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화학물질의 정보와 위험성을 공개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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