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5G 개혁안의 자화상
중간 요금제 손 보는 과기부
기지국 늘릴 방안은 요원

새 정부가 말도 탈도 많은 5G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중간 요금제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이통3사 요금제를 다양화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늘리고 통신비를 인하하겠다는 게 골자입니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이 가장 큰 문제로 삼고 있는 ‘낮은 품질’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새 정부가 5G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5G 중간 요금제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5G 중간 요금제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사진=뉴시스]

5월 3일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사청문회. 당시 장관 후보자였던 이종호 과기부 장관에게 국회의원들의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그중에서도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중국은 데이터 제공량에 따라 7가지 요금제, 영국은 6가지 요금제로 나뉘는 등 세분화돼 있지만, 한국의 5G 요금제는 10GB 미만, 100GB 이상의 요금제만 있다. 국민의 통신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홍 의원의 지적은 사실입니다. 한국의 5G 요금제엔 중간이 없습니다. 이통3사 모두 기본 요금제는 10~12GB의 데이터를 제공하지만, 그 윗단계 요금제에선 10배가 넘는 110~150GB를 제공합니다.

올 3월 기준 5G 이용자의 데이터 사용량이 평균 27GB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소비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기본 요금제보다 비싼 110~150 GB 요금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종호 장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는지 홍 의원의 지적에 “해당 문제에 동의하며 논의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른바 ‘5G 중간 요금제’가 도입될 가능성은 꽤 높습니다. 이 장관이 도입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한 데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지난 4월 28일 “5G 요금제 선택폭을 넓히겠다”고 선언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이통3사도 중간 요금제 도입을 검토 중입니다. SK텔레콤이 1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고객의 요구와 이용 패턴, 가입자 추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다양한 요금제를 검토 중”이라고 밝힌 게 대표적이죠.

현재 5G 요금제 가격은 기본 요금제의 경우 3사 공통 5만5000원이고, 110~150GB 요금제는 6만9000~7만5000원 선입니다. 업계에선 이통3사가 5만~6만원대 가격을 중간 요금제로 채택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소비자로선 선택의 폭이 늘어나는 만큼 긍정적인 소식임에 분명합니다.

인사청문회에서 이종호 과기부 장관은 5G 기지국을 늘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인사청문회에서 이종호 과기부 장관은 5G 기지국을 늘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그럼 중간 요금제가 생기면 5G를 둘러싼 불만이 눈 녹듯 사라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5G의 근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품질’입니다. 5G는 그동안 소비자들로부터 “품질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을 숱하게 받아왔습니다.

지난해 과기부의 품질평가에 따르면, 5G 다운로드 전송속도는 이통3사 평균 801.48Mbps로, LTE(150.30 Mbps)보다 겨우 5.3배 빠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상용화 당시 “LTE의 20배 속도를 낸다”는 정부와 이통3사의 발표를 생각하면 소비자들이 배신감을 느낄 만도 합니다.

5G가 LTE의 20배 속도를 내기 위해선 충분한 수의 28㎓ 기지국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통3사가 구축한 기지국 수는 LTE(100만941대·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실·2021년 12월 기준)의 0.5% 수준인 5059개에 불과합니다.

사실상 지금의 5G 서비스는 20배 빠른 속도와는 무관한 3.5㎓ 기지국으로 운용되고 있는데, 그 수도 LTE 기지국의 5분의 1(20만5254개·3월 기준)에 불과합니다. 기지국 수가 이러니 인터넷이 갑자기 끊기거나 속도가 느려지는 등 5G 서비스가 원활하게 제공될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기지국 문제는 중간요금제가 이슈를 끌면서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습니다. 이종호 과기부 장관이 인사청문회 전 서면 질의에 “28㎓의 경우 칩, 모듈, 단말기 등 생태계가 활성화돼 있지 않다”면서 “사업자들의 투자가 부진하며 망 구축률도 3.5㎓ 대비 미흡했다”고 답하긴 했지만 기지국을 늘릴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까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통3사도 5G 요금제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가만 의식하고 있는 듯합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것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요금제를 바꿀 의지가 있는 만큼 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서도 기지국이 부족한 상황을 묻는 질문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특별한 조치를 취할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소비자들은 여전히 5G의 신통찮은 품질 탓에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2020년 해외 시장조사업체 오픈시그널의 조사 결과, 한국의 5G 가용성은 12~15%에 그쳤습니다. 지난해 3분기 시장조사업체 우클라의 조사에선 43.8%를 기록했습니다.

과기부가 지난해 말 “85개 시의 주요 다중이용시설 4500여개 중 5G를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3사 평균 4420개로 전체의 98%에 달한다”고 밝힌 것과는 대조적입니다.[※참고: 5G 가용성은 5G 가입자가 5G 이동통신망에 접속하는 시간의 비율을 뜻합니다. 가용성이 낮을수록 LTE로 접속하는 시간이 많다는 뜻이므로 그만큼 5G가 자주 끊긴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5G 품질이 나쁘지 않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5G 속도가 월등히 빠르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오픈시그널의 4월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통신사인 T모바일의 5G 다운로드 속도는 225.5Mbps로, 이통3사 평균(801.48 Mbps) 속도에 크게 못 미칩니다.

이를 두고 김연학 서강대(경영학) 교수는 “한국 5G의 가장 큰 문제는 신호가 끊겨 LTE로 전환되는 비중이 높다는 점”이라면서 “다운로드 속도로 품질을 운운하는 건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김 교수는 또 “5G 품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최근 이통3사가 수익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경영전략을 바꾸면서 기지국 투자에 인색해졌다. 기지국 수를 늘리는 게 어렵다면 커버리지(기지국이 단말기와 정보를 송수신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정부 차원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5G 중간 요금제를 도입하는 건 분명 반길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핵심 문제인 5G 품질의 해결책을 뒷전으로 미뤄놓는다면 소비자들은 올해도 ‘끊김 투성인 5G 서비스’로 고통받을 게 분명합니다. 5G는 언제쯤 ‘진짜 5G’가 될 수 있을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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