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종이들」
사소하지만 괜찮은 종이 연대기

종이는 수만 가지 모습으로 우리의 삶과 함께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종이는 수만 가지 모습으로 우리의 삶과 함께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오래전 간직하며 놔둔 극장 티켓, 어릴 적 받은 학교 상장, 길거리 화랑에서 구입한 무명작가의 그림, 집에서 다용하던 신문지…. 종이는 수만 가지 모습으로 우리의 삶 속에 자리한다. 형태와 종류는 제각각이지만 가만히 꺼내어 보고 있노라면 그 종이 안에 한사람의 역사가 녹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보통의 일상을 사는 일반인이라면 대부분 종이를 만지지 않는 날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매일 접하는 존재여서일까. 종이의 존재를 특별히 생각해 보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선지 종이로 만들어진 수많은 사물은 쉽게 소비되고 또한 쉽게 버려진다. 

「나의 종이들」은 어느 종이 애호가의 종이에 얽힌 사소하고 사적인 이야기다. 저자 유현정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한때의 시절과 어쩔 수 없이 놔 버려야 했던 고달픈 청춘의 꿈을 방 한구석에 쌓인 종이에서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아픔과 화해하며 스스로 위로하는 법을 찾아간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종이는 오래전 친구에게 받은 편지이기도 하고, 집게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우표이기도 하며, 저자가 드라마 작가 원고 공모전에 정성을 다해 제출한 대본이기도 하다. 저자는 인쇄소집 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기계 위에서 무수한 종이에 활자가 새겨지는 모습을 보고 자란 저자는 몇년 전 고향에 돌아와 작은 인쇄소를 경영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꿈과 도전하고 부딪고 좌절하고 흔들리는 마음 같은 것들 모두가 사각거리는 종이에 배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서랍 속 편지와 우표에서 희미해진 추억을 되짚으며 노트와 다이어리에 지친 감정들을 여과 없이 쏟아낸다.

저자는 매일 공장 한편의 인쇄기에서 찍혀 나오는 종이를 마주하며 다양한 삶의 무게를 가늠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련의 불편한 감정과 타인에게 털어놓지 못한 내밀한 언어를 종이 위에 기록하고 응시함으로써 하루의 의미를 발견해낸다. 이는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일들이지만, 저자 자신에겐 화해와 용서, 도전과 용기의 씨앗이 돼준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종이의 존재가치를 결정하는 건 결국 내 몫이었다. 그것을 재활용하거나 간직할 수 있도록, 자신과의 접점을 발견하기 위한 계속된 고민 속에서 나는 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종이 안에는 내가 먹고, 쓰고, 읽은 것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저자는 종이의 흔적들이 자신에게 용기를 줬다며 이같이 고백한다. 그러면서 종이로 인해 오늘도 충분히 열심히 살았고, 언젠가 노력이 빛나는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믿음이 조금씩 자리 잡았다고 강조한다. 

저자에게 있어 종이는 현명한 카운슬러였다. 인쇄업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 수단이 됨과 동시에, 세상과 불화했던 자아를 위로하고 달래는 존재였다.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연대기를 다뤘지만, 지금 어디선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당하거나 우울함을 겪는 이들에게 보편적 위로를 건넨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누구나 저자처럼 종이에 담긴 과거의 나를 살피고, 버려진 종이의 쓸모를 찾아 재활용하며, 종이 위에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질 것이다. 

세 가지 스토리 

「케빈과 민트 우주의 나인」
크리스티앙 링커 지음|푸른숲주니어 펴냄 


친구라곤 한 명밖에 없는 ‘아웃사이더’ 케빈. 어느날 그에게 아파트 13층에서 초대장이 날아온다. 12층짜리 건물에 웬 13층, 게다가 발신자는 ‘평행 우주 위원회’라는 수상한 단체다. 알고 보니 이들은 100만 광년 떨어진 다른 우주에 사는 또 다른 ‘케빈’들의 모임이었다. 이 책은 평행 우주라는 과학적 가설을 바탕으로 한 청소년 SF다. 독특한 소재와 상상력이 주는 재미뿐만 아니라 마음을 성장시킬 메시지도 전달한다. 

「변화하는 세계 질서」
레더 L홀더 지음|한빛비즈 펴냄


모든 경제, 정치, 역사는 반복돼 왔다. 하지만 인간의 맹점은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지난 500년 동안 반복돼 온 전세계 주요 국가의 경제·정치·역사적 패턴과 그 원인·결과를 연구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빅 사이클’을 찾아냈다. 빅 사이클 외에도 ‘100년 주기 장기 부채 사이클’ ‘8년 주기 단기 부채 사이클’ 등을 분석해 미래에 대응할 방법을 모색한다.

「법관의 일」
송민경 지음|문학동네 펴냄 


16년간 법관으로 일한 송민경 전 부장판사가 ‘직업인으로서’ 들려주는 법관의 이야기다. 그에게 법관의 일이란 ‘온갖 사건과 사람들을 마주하고 무수한 주장과 증거의 이면에 놓인 실체를 파악는 일’이다. 하지만 법을 이해하는 일이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만은 않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법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에 잠시나마 동참해보기를 바란다”고 권한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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