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유 가격 상승도 큰 이유지만
유류세 인하에 경유 할인폭은 감소
인하율 반영도 제대로 안 돼
결국 정유사와 주유소만 배 불려

화물차의 주원료인 경유는 사실 휘발유보다 비싸다. 국내에서 유류세를 낮게 적용했기에 저렴할 뿐이었다. 이 때문에 경유는 서민의 기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 경유 가격이 휘발유를 넘어서는 일이 발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경유 가격이 크게 올랐다. 둘째, 유류세 인하율을 ‘정률’로 정한 탓에 휘발유보다 가격이 덜 떨어졌다. 셋째, 유류세 인하 정책이 경유에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더스쿠프가 경유의 역설을 취재했다. 

14년 만에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앞지른 데는 유류세 인하 정책의 영향이 크다.[사진=뉴시스]
14년 만에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앞지른 데는 유류세 인하 정책의 영향이 크다.[사진=뉴시스]

“경유가 서민을 배신했다.” 최근 국내 경유 가격이 크게 오르자 여기저기서 나오는 푸념이다. 5월 29일 기준 국내 경유 평균가격은 리터(L)당 2006.09원으로 휘발유 평균가격(2008.76원)과 큰 차이가 없다.

올해 초만 해도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보다 L당 200원가량 쌌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유 가격이 폭등한 셈이다. 특히 경유 평균가격은 지난 5월 11일부터 27일까지 보름이 넘도록 휘발유 가격을 앞지르기도 했다. 국내에서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넘어선 건 2008년 6월 이후 14년여 만이다. 

경유는 서민들의 생계수단인 화물차의 주 연료다. 게다가 상당수 국민은 기름값을 아끼려 디젤차를 선호해왔다. 그만큼 경유는 휘발유보다 좀 더 서민적이다. 경유 가격의 역전 현상을 두고 ‘경유가 서민의 뒤통수를 쳤다’는 말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중요한 건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역전한 이유가 뭐냐는 거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내의 유류세 책정 방식, 정부의 유류세 인하 정책, 경유 가격의 급격한 상승에서 기인한 결과다.

우선 국제 석유제품 가격 기준으로 보면, 경유 가격이 휘발유보다 좀 더 비싼 건 일반적이다. 다만 국내에선 경유보다 휘발유에 더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경유가 싸게 유통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정률로 유류세를 깎아줬다. 당연히 세율이 높았던 휘발유의 가격 할인폭이 더 컸고, 세율이 낮았던 경유의 가격 할인폭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 격차가 줄어든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경유 가격이 치솟았다. 올해 2월 말까지만 해도 국제 휘발유 가격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던 국제 경유 가격이 3월 이후 급격하게 뛰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뜩이나 원유와 석유제품 수급이 꼬인 상태에서 경유 사용량이 많은 유럽의 경유 재고가 최근 5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면서였다. 

그 바람에 배럴당 10달러 미만이던 국제 휘발유 가격과 국제 경유 가격 간 격차는 3월 2주부터 5월 2주까지 3개월간 배럴당 평균 20달러 이상으로 벌어지기도 했다. ‘정률’로 진행한 정부의 유류세 인하 정책에 국제적 역학관계가 얽히면서 국내 경유 가격이 급등했다는 거다. 

이유는 또 있다. 경유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덴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가 먹혀들지 않은 탓도 있다. 국내 유일의 주유소 유류가격 조사기관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E컨슈머)에 따르면 대부분의 주유소는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제대로’ 반영한 곳들은 10곳 중 1곳에 불과했다.[※참고: 감시단은 국제유가 등락과 국제유가 반영 시차 등을 모두 고려해 조사 시기마다 달라지는 유류세 인하분의 ‘기준치’를 책정하고, 주유소들이 이 기준치대로 유류세 인하분을 반영했는지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따라서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했다’는 말은 기름값을 낮춰야 할 때 ‘기준치’ 이상으로 낮추고, 반대로 기름값을 높여야 할 때는 ‘기준치’ 이하로 높였다는 의미다.] 

유류세 인하가 ‘경유의 배신’으로

그중 경유는 유독 심했다. 지난해 11월 12일(유류세 인하 시작일) 이후 한달이 되는 시점(12월 2주)부터 매월 2주차를 기준으로 올해 5월까지 6개월간 월별 유류세 인하분 반영 현황을 살펴보니, 경유에 유류세 인하분이 더 형편없이 반영되고 있었다.

다소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보자. 2021년 12월~2022년 5월 사이에 국제 경유가격 인상으로 국내 경유가격을 끌어올려야 했던 시기는 올 3~5월이었다(표 구간➊ 참조). 

이때 유류세 인하분에 따른 ‘기준치’보다 더 많이 경유가격을 인상한 주유소의 비중은 3월 98.7%, 4월 97.4%, 5월 68.3%에 달했다. 가령, 3월 유류세 인하분에 따른 기준치는 ‘L당 28원 인상’이었는데, 98.7%의 주유소가 28원보다 더 많이 인상했다는 얘기다. 88.7%는 경유 가격을 L당 무려 100원 이상 끌어올렸다. 

서민경제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유류세 인하 조치로 정유사와 주유소가 가장 큰 이득을 봤다.[사진=뉴시스]
서민경제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유류세 인하 조치로 정유사와 주유소가 가장 큰 이득을 봤다.[사진=뉴시스]

반면, 국제유가 하락으로 국내 경유가격을 내려야 할 땐 ‘찔끔’ 인하했다(표 구간➋ 참조). 2021년 11월 12일~2022년 5월 사이 국제유가 인하 덕에 경유 가격을 떨어뜨려야 할 시기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이었다.

하지만 12월엔 전체 주유소의 81.6%가, 1월엔 76.0%가 기준치보다 적게 내린 다음 판매했다.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쌌을 때 가격 격차가 고작 1~15원이었으니 주유소가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기만 했어도 가격 역전이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이처럼 국내 유류업계에선 경유가격을 결정할 때도 ‘내릴 땐 천천히 찔끔, 올릴 땐 왕창’이란 공식을 적용했다. 게다가 정유ㆍ주유소업계는 “국제유가를 반영하기까지 시차가 필요하다”거나 “재고를 소진하고 유류세 인하분을 반영해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는 핑계를 대왔지만, 유류세 인하 기간이 길어져도 유류세 인하분 반영률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되레 그사이 국내 정유사들은 역대 최고 실적(올 1분기 기준)을 달성했다. 

이쯤에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유류세 인하 조치는 과연 누굴 위한 걸까. 이런 결과를 두고도 여전히 유류세 인하 정책의 효과분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유류세 인하분을 적절하게 반영하기 위한 촘촘한 감시체계를 마련하지 않은 채 유류세 인하 조치를 연장해도 되는 걸까. 이 질문의 답은 윤석열 정부가 해야 할 듯하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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