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보도 | 11년 전 무선전송기술과
실시간 송출 안 되는 CCTV의 비밀

지하철 객차 내 CCTV의 실태는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지하철 객차 내 CCTV의 실태는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객차 CCTV 실시간 화면 송출 사실상 불가능 
서울교통공사 사장 “현재로선 녹화만 가능” 
11년 전 CCTV 화면 실시간 송출 가능한 
무선영상전송장치 도입했지만 방치 의혹
2015년 나랏돈으로 구축한 LTE-R 허점투성이 

# 공포의 순간
 

2021년 7월 25일 오전 7시 17분. 20대 여성 A씨는 용산역에서 노량진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1호선에 앉아있었다. 여느 아침과 다를 바 없는 출근길. A씨의 마음은 평온했다.

“처걱〜처걱~처걱~.” 노량진역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차창 밖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드는 순간, A씨의 눈에 누추한 옷차림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순식간에 A씨의 앞을 가로막았다.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낀 A씨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그날 따라 객차 안엔 아무도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남자를 피해 옆 칸으로 발을 옮기려 했지만 되레 노약자석으로 밀쳐졌다. “가만히 있어. 아가씨가 너무 예뻐서 그래.” 목에 칼을 들이댄 남자는 서늘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A씨는 힘껏 저항했다. 흉기를 손으로 막고 남자의 완력을 떼치려 애썼다. 남자는 그런 A씨에게 주먹을 날렸다. 말리는 사람도,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객차 안에 둘밖에 없는 데다, 둔탁한 소리와 비명이 열차 소음에 묻혀버린 탓이었다. 객차는 그렇게 끔찍한 ‘무법지대’로 돌변하고 있었다. 

# 그곳에 CCTV는 없었다 

A씨의 머릿속에 ‘나를 도와줄 사람은 나밖에 없구나’란 두려움이 스칠 무렵, 지하철이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번에 정차할 역은 노량진, 노량진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1초, 2초, 3초… 짧지만 그렇게도 길게 느껴진 몇초가 흐르자 문이 열렸다. A씨는 온 힘을 짜내 남자의 손을 뿌리친 다음 앞만 보고 내달렸다. 뒤를 돌아볼 용기도, 겨를도 없었다. ‘묻지마 폭행’은 A씨의 마음에 끔찍한 상흔을 남기고 있었다. 

사건을 접수한 서울지방철도특별사법경찰대는 특별수사팀 20명을 편성했다. 노량진 일대를 샅샅이 뒤진 끝에 사건 발생 11시간 만에 의정부역에서 남자를 붙잡았다. 노량진역사驛舍 CCTV에 그 남자가 찍힌 게 검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남자는 붙잡혔지만, A씨는 지금도 지하철을 타면 손이 흥건해진다. 무서운 트라우마 탓이다. 

# 객차 내 CCTV 현주소 

지하철 객차 내 사건·사고는 A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몇시간, 몇분, 아니 몇초 뒤 객차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A씨에게 감정적 충격을 남긴 ‘1호선 묻지마 폭행사건’을 냉정하게 곱씹어 봐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힘없는 승객이 ‘묻지마 폭행’을 당하고 있을 때, 지하철 승무원은 왜 오지 않은 걸까. 승무원이 ‘객차 내 돌발상황’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1호선 지하철 객차 속엔 CCTV가 없다는 뜻일까. 이 질문들을 하나씩 풀어보자. 

1445칸. 서울시 지하철 열차 중 CCTV가 설치돼 있는 객차 수다(이하 2021년 8월·서울교통공사 운영노선 기준). 1~9호선 전체 객차가 3617칸이란 점을 감안하면, 10칸 중 4칸에만 CCTV가 있는 셈이다. 생각보다 적은 수다.[※참고: 객차는 열차를 구성하는 단위다. 한 열차당 4~10칸의 객차가 연결돼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하철 1·3·4호선 객차엔 CCTV가 한대도 없다. 5·6·8호선 설치율은 3~6%에 불과하다. 객차 내 CC TV가 제대로 설치된 라인은 2호선(97.7%), 7호선(97.2%), 9호선(100%) 세곳뿐이다. 이를 보면, 몇몇 질문이 풀린다. 앞서 사례로 언급한 ‘1호선 묻지마 폭행 사건’은 객차 내 CCTV가 없는 사각지대에서 터졌다. 


# 풀리지 않는 문제 

그럼 객차 안에 CCTV만 설치하면 모든 문제가 풀릴까. 아니다. 지하철 객차 내 CCTV는 현재 ‘빈껍데기’나 다름없다. CCTV가 촬영한 영상을 ‘실시간 송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그러니 객차 내 CCTV가 전송한 화면을 매시간 확인하는 직원(승무원)이나 안전요원도 없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 폭행을 가하거나 불을 질러도 승객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하철 객차 내 CCTV의 맹점은 최근 ‘성추행’ ‘묻지마 폭행’ ‘방화放火’ 등의 사건·사고로 귀결됐다. 

서울교통공사는 18기가 실시간 무선영상전송시스템을 유지보수해 왔다고 주장했지마 신뢰하긴 어렵다. [사진=뉴시스]
서울교통공사는 18기가 실시간 무선영상전송시스템을 유지보수해 왔다고 주장했지마 신뢰하긴 어렵다. [사진=뉴시스]

# CCTV 빈껍데기 된 까닭 

서울 지하철 객차 내 CCTV가 ‘빈껍데기’로 전락한 이유는 뭘까. 지하철 운영주체인 서울교통공사가 실시간으로 화면을 송출·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여태껏 구축하지 않은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 서울교통공사는 무려 11년 전인 2011년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도 실시간 화면을 송출할 수 있는 CCTV용 18기가 무선영상전송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용량 데이터와 영상을 실시간으로 송·수신해 사고 등을 예방하겠다”면서 천문학적인 나랏돈을 투입해 2015년 구축한 철도통합무선망 LTE-R(LTE-Railway)은 ‘먹통 논란’에 휩싸여 있다. 당초 계획과 달리 ‘실시간 화면 송출’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잇따라서다.    
           
서울교통공사에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지하철 객차 내 CCTV에 숨은 비밀을 단독취재했다. 


이윤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서울교통공사 =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서울교통공사 =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영상 분석 = 이혁기·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 관련기사 
실시간 송출 안 되는 지하철 객차 CCTV 왜 달아놨나
http://cms.thescoop.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393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