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결국 답은 ‘중국’에 있지만
성장 발판이 ‘부메랑’으로 변하다
한미동맹 강화에 또 몽니 부릴까

“이제 중국에선 쉽지 않은데, 중국 아니면 답도 없다.” 2016년 중국의 사드 보복조치로 쓴맛을 본 한국 화장품 업계의 일관된 목소리다. 실제로 한국 화장품의 대중對中 수출액은 전체의 45.5%를 차지할 만큼 절대적이다. 하지만 중국 시장의 상황이 K-뷰티가 전성기를 누렸던 2013~2014년과는 다르다. 로컬 브랜드의 약진, MZ세대의 애국소비 성향, 한미 경제공조 강화에 따른 후폭풍 우려까지…. K-뷰티 시장의 우려와 기회 요인을 찾아봤다.

한국 화장품 업계가 위기에 처한 게 중국의 사드 보복조치 때문만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많다.[사진=연합뉴스]
한국 화장품 업계가 위기에 처한 게 중국의 사드 보복조치 때문만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많다.[사진=연합뉴스]

끝날 것 같지 않던 코로나19 팬데믹이 끝을 보이고 있다. 이제 실외에선 마스크를 벗을 수 있고, 2년 넘게 미뤄왔던 해외여행도 떠날 수 있다. 이런 ‘엔데믹(endemic·풍토병화)’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보이는 업종 중 한곳은 화장품이다.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줄었던 화장품 소비가 회복될 거란 기대감에서다. 

여기에 최근 전세계에 불고 있는 ‘K-컬처’ 붐도 ‘K-뷰티’에 호재다. 한국 영화·드라마에 쏟아진 관심이 화장품으로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는 숫자로도 나타난다. 올해 1~4월 대미對美 화장품 수출액은 2억3913만 달러(약 3004억원)로, 2년 전 같은 기간(1억3223만 달러·1661억원) 대비 80.8% 증가했다.

대일對日 수출액 역시 같은 기간 36.5%(1억6509만 달러→2억2535만 달러) 늘었다. 이민정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미국·일본 시장에서 한국의 중소형 브랜드가 약진하고 있다”면서 “한국 화장품은 ‘새롭고’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젊은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미국·일본 등에서 한국 화장품 수요가 늘고 있는 건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하지만 관건은 중국 시장에서 얼마나 회복하느냐다. 시장 규모든 성장성이든 중국을 대체할 시장이 현재로선 없기 때문이다. 올해 1~4월 대중對中 화장품 수출액은 9억6648만 달러(약 1조2148억원)로 전체의 45.5%를 차지했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중국 화장품 시장은 변수가 많지만 가장 큰 매출이 발생하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고 말했다. 

문제는 중국 시장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2013~2014년 K-뷰티 열풍이 중국을 휩쓸던 때와는 분위기가 180도 다르다. 그 이유가 2016년 시작된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보복조치 여파 때문만은 아니다.[※참고: 당시 한국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등이 중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K-뷰티 붐이 확산했다. 한국 화장품 무역수지가 흑자전환한 것도 2013년부터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중국 브랜드의 약진이다. 이른바 ‘C(China)-뷰티’가 중국 시장의 대세로 떠올랐다는 건데, 그 배경엔 한국 ODM·OEM 기업의 중국 진출이 있다. 대표적인 게 한국콜마·코스맥스다. 한국콜마는 2018년 중국 장쑤성江蘇省에 중국 최대 규모의 화장품 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코스맥스 역시 2017년 상하이上海에 제2공장을 준공하고 중국 ODM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중국 화장품 기업들로선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기획력만 있으면 손쉽게 브랜드를 론칭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렇게 성장한 C-뷰티의 대표 브랜드가 ‘퍼펙트 다이어리’ ‘화시즈’ 등이다. 일례로 퍼펙트 다이어리의 모회사 이셴은 중국 화장품 최초로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2020년)할 만큼 성장했다.

컨설팅그룹 리이치24시코리아 손성민 지사장은 “중국 로컬 브랜드의 경우 아직까지 ‘후(LG생활건강)’나 ‘설화수(아모레퍼시픽)’에 미치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면서도 “하지만 이들 브랜드가 고가 화장품 시장에 침투하는 건 결국 시간 싸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소비자의 자국 브랜드 선호도가 높아졌다. 중국 내에서 ‘궈차오國潮(애국소비)’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건데, 그 중심엔 MZ세대가 있다. 이욱연 서강대(중국문화학) 교수는 “중국 젊은 세대의 경우 애국소비 경향이 강하다”면서 “한류韓流에 반감을 갖고 있는 이들도 많아 한국 화장품 기업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소비 수준이 높아지면서, 명품 화장품 브랜들 찾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중국의 소비 수준이 높아지면서, 명품 화장품 브랜들 찾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국 입장에서 좋지 않은 변수는 또 있다. 중국의 소비 수준이 몰라보게 높아졌다는 건데, 이 때문인지 프리미엄 브랜드로 꼽히는 ‘후’ ‘설화수’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 브랜드보다 역사와 전통이 깊은 프랑스의 ‘라메르’ ‘랑콤’, 일본의 ‘시세이도’ ‘SK-Ⅱ’, 미국의 ‘에스티로더’ 등을 찾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중국 온라인 쇼핑몰 ‘징동닷컴’의 스킨케어 제품 판매 순위(2022년 2월 기준)를 살펴보면 10위권 내에 한국 브랜드는 한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참고: 10위권 브랜드의 국가별 비중을 살펴보면 중국·프랑스 3곳, 미국·일본 2곳 등이다.] 

그렇다면 K-뷰티가 나아갈 길은 어디일까.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 시장에서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선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유럽 등에 진출해 브랜드력을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는 거다. 물론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이 중국 외 시장을 등한시해온 건 아니지만 사업 진출과 축소를 반복하면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건 사실이다. 

김주덕 성신여대(뷰티산업학) 교수는 “대기업은 해외 시장에서 버틸 여력이 충분했지만 다소 근시안적으로 접근해왔다”면서 “성과의 압박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전략으로 시장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면에서 일본 ‘J(Japan)-뷰티’의 약진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단기 성과보단 장기적 안목으로 해외 사업을 전개해왔기 때문이다. 손성민 지사장의 말을 들어보자. “일본 시세이도는 30년, 길게는 50년을 내다보고 해외 시장 진출 플랜을 짜왔다. 오랜 기간 국가별 스킨 리서치 센터를 운영하는 등 연구·개발(R&D)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판매 전략 역시 일관되게 유지한다. 생산량이 판매량에 좌우되지 않도록 유지해 브랜드력을 지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글로벌 브랜드엔 다소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는 후나 설화수가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모험’을 감행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격적인 M&A를 펼치거나 한단계 높은 럭셔리 브랜드를 론칭해야 한다는 거다. 손 지사장은 “후나 설화수는 이미 시장이 형성돼 있고, 이들 브랜드를 더욱 고급화하는 덴 한계가 있다”면서 “한단계 더 높은 럭셔리 브랜드를 론칭함으로써 후·설화수의 입지까지 끌어올리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뷰티는 지금 복잡한 국면에 서 있다. 엔데믹과 K-컬처에서 기인한 바람이 K-뷰티의 회복세를 부추기고 있지만, 나쁜 변수도 수두룩하다. 국제 관계도 K-뷰티에 유리하지만은 않다. 중국이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이후 공고해진 한미 경제동맹을 곱지 않게 보고 있어서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에 한국이 참여하면서 중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2016년 사드 배치 때처럼 중국이 또다시 몽니를 부린다면 한국 화장품 업계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 우려도 있다. K-뷰티는 옛 영화를 다시 누릴 수 있을까. 길은 갈라졌고, K-뷰티는 그 갈림길에 섰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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