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는 진로탐색 기간
진로탐색 위한 자기이해 필요
주도적인 삶의 첫걸음

첫째 딸은 의사밖에 모른다. 아빠 엄마가 모두 의사여서 그렇다. 둘째 딸은 다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꿈이 바뀌어서 종잡을 수 없다. 아빠 엄마 입장에서 첫째 딸은 안심되지만, 둘째는 영 미덥지 않다. 그런데 아빠 엄마의 눈에 비친 모습이 전부일까.

청소년이 진로를 탐색할 땐 주도적이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청소년이 진로를 탐색할 땐 주도적이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을지로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공구상부터 대기업, 병원 등이 있는 이곳엔 아침이면 지하철에서 나온 사람들이 건물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점심시간엔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다시 건물에서 물밀 듯 쏟아져 나온다. 저녁에는 야근하는 직원들이 끼니를 해결하고, 퇴근한 이들은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맥주 한잔을 기울인다.

을지로 직장인들의 모습은 우리 청소년들이 진로를 결정한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게 있다. 진로는 한번 결정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인생을 사는 내내 우리는 진로를 탐색한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고, 일할 수 있는 연령도 늘어났으니 더 그렇다. 일찌감치 진로를 결정했다고 해도 여러번 방향을 재설정하고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과 마주하게 될 거란 얘기다.

그런 차원에서 생각하면 진로는 어떤 일을 하며 사는가의 문제인 동시에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삶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그러기 위해선 진로상담을 할 때 자신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일에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고등학생 자매인 유연이와 다영이가 진로검사를 받기 위해 센터를 방문했다. 유연이 사례부터 보자. 유연이의 가족은 모두 의사다. 부모님은 물론 조부모님과 삼촌들까지 모두 의사인지라 가족모임에서 자연스럽게 환자나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장래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늘 ‘의사가 될 것’이라고 말해왔다. 조금의 고민과 갈등도 없었다.

유연이의 성적은 줄곧 중위권이었다. 유연이와 가족들은 그것 때문에 고민이었지만, 그렇다고 의사 외의 직업엔 관심이 없었다. 다른 가족들처럼 막연하게 “의대에 가겠지”라고 생각해왔을 뿐이다.

둘째 다영이는 중학교 때 요리사를 꿈꾸며 특성화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이 바뀌었다. 요리사 말고 검사가 되고 싶었다. 당연히 학교도 특성화고가 아닌 일반고로 진학했다. 그후로도 다영이의 꿈은 자주 바뀌었다. 아이돌이 되고 싶어 실용음악학원에 등록했고, 최근엔 애니메이터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려면 특성화고로 전학을 가거나 자퇴를 할 생각도 하고 있다.

꿈이 바뀔 때마다 다영이는 부모님과 갈등을 겪었다. 이번에도 부모님과 대립 중이다. 부모님은 “조금이라도 힘들 거 같다 싶으면 참지 못하는 네 성격 탓”라고 나무랐다. 다영이는 정말 자신의 성격이 문제인지 궁금해서 진로검사를 받아보고 싶다고 했다.

검사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에서도 유연이와 다영이는 확연하게 달랐다. 유연이는 자신과 관련된 여러 가지 질문에 답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과 다른 직업을 진지하게 탐색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다영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관심이 많았다. 또한 그것을 하려고 시도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실력이 좋은 친구들을 보면 이내 좌절하고 다른 것으로 관심을 돌렸다. 진로검사 후 유연이와 다영이는 개인상담을 통해 자신을 좀 더 이해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청소년기는 진로탐색 기간이다. 진로 방향이 아직 확고하지 않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게 자주 바뀔 수 있고, 합리적으로 진로를 선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부모는 “지금 무엇이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일단 공부를 하자”고 말한다. 

국어교사가 될까 사회교사가 될까 고민하는 자녀에게 “그걸 지금 고민해봤자 사범대를 못 들어가면 끝이다”며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는 게 먼저”라고 말하는 부모도 있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자녀에게 “취업하기 힘드니 공대를 가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부모도 봤다. 

부모의 조언은 대개 현실적이다. 하지만 자녀가 진로탐색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까지 간과해선 안 된다. 청소년은 고민을 부모님, 친구,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더욱 깊이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진로 의사결정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돼 좀 더 자유롭고 책임 있는 인생을 사는 기반을 마련할 수도 있다.

그 과정은 유연이와 다영이처럼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들이 성인이 됐을 때 사회적으로 어떤 성공을 거둘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자신의 인생을 고민하고, 선택의 과정에서 갈등하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인생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갈등하는 경험도 해봐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신의 인생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갈등하는 경험도 해봐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요즘엔 사회적으로도 청소년기의 진로탐색이 중요하다는 걸 인식하고 있어서 학교나 청소년 기관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심리검사를 하거나 집단상담, 직업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로검사’ ‘상담’ ‘꿈그린 진로설계프로그램’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의 핵심은 ‘진로 관련 자기이해’다. 진로탐색을 위한 자기이해는 성격·능력·가치관·흥미·적성 등을 포함하고 있다. 

자기이해가 돼 있지 않다면 부모의 의견이나 여건에 맞추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안정적이고 그럴듯한 일을 할 순 있겠지만, 남의 인생을 대신 사는 듯한 정서적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스스로 진로를 선택하는 건 사회적으로 성공했는가와 무관하다. 내 인생의 주인이 돼 삶을 주도적으로 살게 하는 첫걸음이라서 중요한 거다. 

글 =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 더스쿠프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