섈 위 아트 | 저녁의 시간전

이호인(LEE Hoin), 해운대 Haeundae, 2022, oil on wood panel, 45.5×38㎝
이호인(LEE Hoin), 해운대 Haeundae, 2022, oil on wood panel, 45.5×38㎝

미술계에서 주목할 만한 전시공간이 속속 재개관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갤러리 중 하나인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이 올가을께 재개관을 앞두고 있는 건 대표적 사례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가라앉았던 전시계가 기지개를 다시 펴는 조짐으로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오늘 소개하려는 전시는 ‘언더그라운드 인 스페이스’에서 진행하는 ‘저녁의 시간전展’이다. 전시소개에 앞서 재개관을 준비 중인 ‘아라리오’란 아트조직이 한국 아트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의미를 살펴보면 더욱 흥미로울 것 같다. 

우선 언더그라운드 인 스페이스는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지하에 있는 전시공간을 말한다. 이곳에선 모마미술관(MOMA)의 PS1처럼 거칠면서도 날것 그대로의 메시지와 작가를 소개한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아라리오’가 주최하는 전시회에 갈 때마다 유럽 미술, 그중에서도 영국 미술계의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가령, 씨킴 작가의 조형물이나 영국 화가조직 yBa의 마크퀸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재개관전을 앞두고 있는 아라리오에 ‘저녁의 시간전’은 일종의 전초전 성격의 전시회다. 그만큼 깊게 고민하고 기획했을 이번 전시엔 일반적인 전시공간에선 보기 힘든 젊은 작가 3명을 초청했다. 

연진영(YEON Jinyeong), 파이프 체어 Pipe Chair, 2022, Aluminum, 49×33×78㎝
연진영(YEON Jinyeong), 파이프 체어 Pipe Chair, 2022, Aluminum, 49×33×78㎝

‘저녁의 시간’은 낮이 저물고 밤이 시작되는 시간대다. 그래서 이 시간대에 접어들면 밤의 시작인지 아침의 시작인지 알기 어렵고, 그 경계마저 불명확해 모든 게 모호해진다. 하지만 모호함은 금세 ‘어둠’이란 하나의 상태를 향해 빠르게 수렴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저녁 무렵은 그만큼 빠른 변화의 물결을 품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저녁의 시간’을 닮은 3명의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서도 자신만의 작품 스타일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2016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진행한 아트스펙트럼 단체전에 참여했던 이호인 작가는 밤공기 가득한 추상화된 도시풍경을 그린다. 사실적인 묘사보단 도시가 갖고 있는 여러 감정을 시각화하는 데 주력한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밤의 풍경이지만 빛에 주목하고 빛의 강약표현을 조절해 작품을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왕선정 작가는 규율과 쾌락을 작업한다. 그는 “성서에서 규정한 일곱가지 죄악에 맞닿아 있는 인간과 지옥도의 모습을 통해 쾌락과 그런 쾌락 속 인간의 욕망을 탐구했다”고 말한다. 


왕 작가는 2017년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진행한 단체전에 참여했다. 2007년부터 예술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보안여관’을 방문했던 분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이곳에서 전시한 작가들치고 물렁한 이는 없다. 그만큼 왕 작가의 작품 스타일도 세다. 

왕선정(WANG Seonjeong), 홀리! Holy!, 2022, Oil on canvas, 97×145㎝
왕선정(WANG Seonjeong), 홀리! Holy!, 2022, Oil on canvas, 97×145㎝

연진영 작가는 가구 디자인과 순수예술을 함께 다룬다. 일반적인 조형재료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산업용 기자재나 폐기물을 활용하고, 일반적인 가구디자인의 개념을 비틀어 조형물을 만들어낸다. 디자이너와 예술가 사이에서 자신의 작품이 갖는 역할을 고민한 결과물로 보인다. 

이들 3인의 작품을 전시하는 ‘언더그라운드 인 스페이스’는 특유의 아우라와 무거운 품격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젊은 작가 3인의 작품은 공간의 기에 눌리지 않고 조화로운 미를 맘껏 뽐낸다. 자신들만의 넘치는 개성으로 공간을 장악해 멋진 전시를 보여주고 있다는 거다. 

만약 개성이 너무 강해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떤 포지션을 가져야 할지 고민이 많은 이들이라면 ‘저녁의 시간’전을 감상하길 권한다. 개성 가득한 변화의 일렁임을 만끽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김선곤 더스쿠프 미술전문기자
sungon-k@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