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적자 원인 무엇일까
연료비도 환경비용도 영향
전력구입비 지불 구조도 문제
탈원전 하나로 원인 설명 못해
다양한 관점에서 원인과 해법 찾아야

# “탈원전 때문이다.” “연료비가 올라서다.” “전력도매가격 결정 구조에 문제가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올해 1분기 분기 사상 역대 최대 손실을 입자, 그 원인을 두고 다양한 주장이 나온다. 

# 그중 가장 거친 주장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에 한전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역시 이런 논리에서 한전의 적자를 분석하고 있는 듯하다. 쉽게 말해, 한전 적자의 원인이 ‘기승전 탈원전’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얘기다. 

# 그렇다면 이 논리는 설득력이 있을까. 2017~2021년 원자력발전소의 발전량이 14만8427GWh(2017년)에서 15만8015GWh(2021년)로 늘어났는데도, 탈원전 탓에 한전의 적자가 커진 걸까. 그게 아니라면 또다른 원인이 있었던 건 아닐까. 

# 진단이 확실하지 않으면 적절한 처방전도 내놓을 수 없다. ‘기승전 탈원전’이란 논리만으론 한전의 적자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기 어렵다. 연료비, 전력도매가격, 한발 더 나아가 한전이 부담한 기후환경비용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따져봐야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더스쿠프가 한전 적자를 둘러싼 진짜 문제를 냉정하게 분석해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전 적자 해결을 위해선 전기요금 인상 뿐 아니라 다양한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한전 적자 해결을 위해선 전기요금 인상 뿐 아니라 다양한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전기요금 인상론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16일 한국전력공사는 정부에 전기요금 인상안을 제출했다. 연료비 조정단가를 제도가 허용하는 최대치(직전분기 대비 ㎾h당 ±3원)로 올리고, 조정단가 상하한폭도 늘리자는 내용을 담았다.

올해 1분기 한전이 분기 사상 역대 최대 영업손실(7조7869억원)을 기록한 탓에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론에도 힘이 실렸다. 따라서 한전의 요구도 금세 현실화할 것 같았다. 

결과는 의외였다. 지난 19일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기요금 인상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한전의 요구를 모두 반영할 수 없다는 의미다.

현 정부는 출범 전부터 전기요금의 ‘원가주의(원가를 요금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를 강조했지만, 전기요금 인상이 물가상승 압력을 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 한발 물러선 듯하다. 

다음날인 20일에는 추 장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전은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여러 안案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인상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으려면 한전 스스로 적자를 줄일 자구책을 더 내놔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날은 21일 예정이던 연료비 조정단가를 공개하는 일정을 정부가 연기한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기획재정부가 한전(자회사 포함)을 비롯해 당기순손실이 발생한 공기업에 성과급 자율 반납을 권고한 날이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한전은 “정승일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 모두 2021년도 경영평가 성과급을 전액 반납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한전의 대규모 적자로 전기요금 인상론이 불거졌지만, 적자의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사진=뉴시스]
한전의 대규모 적자로 전기요금 인상론이 불거졌지만, 적자의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사진=뉴시스]


이 과정을 종합해보면 정부의 방침은 이렇게 읽힌다. “전기요금은 올려야 한다. 하지만 전기요금 인상은 국민 저항이 심하다. 물가 상승세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니 전기요금 인상을 위해선 한전의 제스처도 필요하고, 인상 폭도 최소화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한전이 제스처를 취하면 전기요금 현실화를 위한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느냐다. 현재로선 그럴 것 같지 않다. 일례로 한전 경영진이 성과급을 반납하기로 하자 여론은 더 나빠졌다.

일부에선 “실적이 최악인데도 직원들이 성과급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거나 “한전이 지독한 방만경영을 하고 있는지도 조사해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전기요금이 인상되기도 전에 한전을 향한 비난 여론부터 만들어진 셈이다. 

이 때문에 지금 필요한 건 전기요금 인상이 왜 필요한지 그 타당성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것이다. 사실 전기요금 인상론은 한전이 적자를 볼 때마다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역대 정부는 정치적인 이유로 인상을 미루기 일쑤였다.

실제로 2020년 12월 연료비 변동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한 이후 6차례의 연료비 조정단가 결정 과정 중 4차례가 동결이었다. 이번엔 한전의 적자 규모가 지나치게 불어난 탓에 전기요금 인상론에 탄력이 붙은 측면이 없지 않다.

[※참고: 원래 ‘전기요금 현실화’ 논의는 이런 식으로 진행돼서는 안 된다. 한전 적자와는 별개로 ‘전기요금 현실화’는 그 당위성을 갖고 있어서다. 현재 전기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에너지는 대부분 화석연료다. 미래 세대를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러려면 요금을 올려 전기 사용량을 줄여가는 게 타당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뭘 해야 할까. 앞서 언급했듯 한전의 대규모 적자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전기요금 현실화를 꾀할 적절한 대안도 마련할 수 있다. 때만 되면 반복되는 전기요금 인상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선 한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런 과정 없이 한전의 제스처만으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한전 제스처만으론 설득 못 해

문제는 정부가 원인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많은 언론과 전문가들도 산발적으로 한전 적자의 원인을 분석할 뿐이다. 개중엔 명확한 근거가 없는 분석도 있다. 이런 이유로 더스쿠프(The SCOOP)가 한전의 적자 원인으로 거론되는 몇몇 주장을 객관적으로 검토해봤다. 

■쟁점❶ 연료비 증가했나 = 한전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히는 건 연료비 증가다. 한전의 주장도 그렇다. 실제로 연료비는 한전 실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에너지가격에 따라 한전의 실적이 오르내릴 수밖에 없어서다. 

그런데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한전의 영업이익과 에너지원별 연료단가를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두가지 보인다. 하나는 한전이 2019년에는 1조2765억원의 영업적자를, 2020년에는 4조862억원의 영업이익을, 2021년에는 다시 5조8601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한전이 연료로 사용한 에너지 중 90% 이상(2021년 기준)이 유연탄(34. 3%), LNG(29.2%), 원전(27.4%)이란 점이다.[※참고: 유류 발전 비중은 전체 발전량의 0.4%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국제유가가 올라 한전의 연료비가 증가했고, 대규모 적자를 봤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한전의 주장대로 연료단가가 상승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것이라면 2019~2021년 유연탄과 원전, LNG의 연료단가 역시 급격한 변동을 보여야 한다. 한번 따져보자. 한전이 4조원대 영업이익을 올린 2020년 유연탄과 LNG 가격은 각각 9.0%, 32.8%(이하 전년 대비) 떨어졌다. 반면 5조원대 영업적자를 기록한 2021년엔 두 연료의 가격이 11.3%, 52.0% 급등했다. 

이를 통해 한전의 2020년 흑자와 2021년 적자를 설명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1조원대의 적자를 기록한 2019년과 5조원대의 적자를 낸 2021년의 연료 가격 차이도 커야 한다. 그래야 적자폭이 왜 4조원이나 커졌는지 설명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2019년 대비 2021년의 연료단가는 유연탄이 1.3%, LNG가 2.1% 올랐을 뿐이다. 이는 2019년과 2021년의 영업적자 차이를 연료단가 등락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입증한다. 

연료단가 등락이 한전의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한전이 대규모 적자를 냈다고 단정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이 통계대로라면 ‘2021년 한전의 적자 원인은 원전 가격의 상승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쟁점❷ 탈원전 정책 탓인가 = 한전 적자 얘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슈가 있는데, 그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다. 다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정말 ‘탈원전 정책’을 펼쳤느냐는 점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에 짓고 있던 신한울 원전 3ㆍ4호기 건설을 중단한 것 외에 탈원전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을 비판하는 쪽에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주장하겠지만, 이는 통계로도 입증된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은 원전 발전량을 줄이면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겠다는 건데, 원전 발전량은 2017년 14만8427GWh에서 2021년 15만8015GWh로 되레 증가했다. 

따라서 “원전 발전량이 줄어 한전이 적자를 봤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참고: 원전 발전량은 2018년에 잠깐 줄었다가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발전 비중도 마찬가지다. 2018년에 발전량이 줄어든 이유는 안전점검으로 인해 원전 가동률이 줄었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기간 석탄 발전량은 23만8799GWh에서 19만7601GWh로 줄어든 반면, LNG 발전량은 12만6039GWh에서 16만8264GWh로 늘었다. 석탄 발전량 감소분을 원전과 LNG 발전이 메운 셈이다. 따라서 ‘탈원전’은 용어 자체가 잘못됐다.]

그럼에도 탈원전 정책이 거론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나 탄소배출권거래제(ETS) 등으로 한전의 부담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전의 기후환경 비용은 2017년 1조9713억원에서 2021년 3조6228억원으로 늘었다. 

이상한 건 한전이 4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낸 2020년에도 한전은 2조5071억원의 기후환경 비용을 부담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 집권기인 2017~2021년 기후환경 비용이 1조6500억원가량 증가해 한전의 적자에 영향을 준 건 맞지만, 오로지 “탈원전 정책 때문에 한전이 대규모 적자를 봤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한전 적자를 불렀다는 주장에는 모순이 있다.[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한전 적자를 불렀다는 주장에는 모순이 있다.[사진=뉴시스]

■쟁점❸ 전력구입비 지불 구조 탓인가 = 연료비와 탈원전 정책 외에 한전 적자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건 또 있다. 전력구입비 논란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한전의 전력구매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한전은 발전자회사뿐만 아니라 민간발전사들이 생산한 전기도 사들여 재판매한다. 2016년 이후 민간발전사 발전량은 발전공기업 5개사(남동ㆍ중부ㆍ동서ㆍ서부ㆍ남부 발전)를 합친 발전량을 뛰어넘었다. 

전력거래소는 연료비가 가장 싼 발전기(원전)부터 가동하고, 연료비가 비싼 발전기(LNG)는 나중에 가동하도록 지시한다. 원전이 가장 먼저, LNG 발전기나 유류 발전기가 가장 나중에 가동되는 이유다. 이렇게 생산한 전깃값은 전력도매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에 따라 발전자회사나 민간발전사에 지불한다. 

문제는 이 지점부터다. SMP는 전력 거래시간별 수요ㆍ공급을 충족하는 가장 비싼 발전기의 발전비용으로 결정하고, 이를 전체 발전기에 적용한다. 연료비가 가장 비싼 발전기의 발전 비용을 SMP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거다.

이에 따라 전력량이 모자라면 모자랄수록 한전은 더 비싼 값을 치르고 전기를 사올 수밖에 없다. “한전은 적자를 보는데, 민간발전사들은 웃는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대기업 계열의 민간발전사들은 한전이 큰 적자를 낸 지난해에도 대규모 흑자(영업이익)를 냈다.[※참고: SK E&S는 6192억원, 포스코에너지는 2033억원, GS EPS는 212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지난 5월 24일 산업통상자원부가 SMP를 제한하는 긴급정산상한가격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는 연료가격 급등 등으로 인해 전력가격이 급격히 오를 때 한시적으로 평시 수준의 정산가격을 적용하도록 하는 거다. 

한전이 현행 SMP로 얼마나 큰 손실을 입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전의 적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하다.

한전 적자낼 때 민간발전사는 호실적

이처럼 한전의 적자 원인은 딱 하나로 설명하기가 힘들다. 전문가들이 한전의 적자 원인을 두고 복합적이라고 꼬집는 것도 그래서다. 당연히 해법도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전영환 홍익대(전기공학부)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한전의 적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기요금 인상과 함께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한전의 독점적 지위 문제나 SMP 규제 문제 등을 추가로 논의해야 한다.”

진단이 정확하게 나와야 정확한 처방전을 내놓을 수 있다. 한전에 지금 필요한 건 적자의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거다. 그게 없으면 한전의 고질병은 더 깊어갈지 모른다. 과연 윤석열 정부는 이런 분석을 진행하고 있는 걸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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