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 잡을 그물주머니와 M&A 불가론
영세 업체 경쟁력 키워야 가능해

OTT 시장의 콘텐츠 싸움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이 콘텐츠를 따라 서비스를 옮기는 성향을 띠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콘텐츠 경쟁이 결국 자본의 힘과 연결된다는 점인데, 이를 위해선 기업 규모를 키우는 게 필수입니다. 과거 디즈니의 훌루 인수부터 최근 HBO맥스·디스커버리플러스의 인수·합병(M&A)까지 글로벌 OTT 업체들이 M&A를 꾀해온 건 이 때문입니다. 그럼 국내에서도 이런 사례가 나올 수 있을까요? 푹과 옥수수가 뭉쳐 웨이브가 나왔던 것처럼 말이죠.

메뚜기족 소비자를 잡기 위해 OTT 업체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메뚜기족 소비자를 잡기 위해 OTT 업체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 OTT 업계는 넷플릭스 천하였습니다. ‘오징어 게임’을 기점으로 히트작을 줄줄이 쏟아냈기 때문이죠. 넷플릭스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공개한 지 23일 만에 전 세계에서 1억3200만명이 시청했습니다. 여기에 지난 1월 공개한 ‘지금 우리 학교는’도 잇달아 흥행에 성공하며 넷플릭스의 인기는 연일 상한가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경쟁사들이 야심작을 속속 꺼내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애플TV+가 3월 선보인 파친코가 대표적입니다. 파친코는 미국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지수(작품의 신선함을 나타내는 지수로 100%가 최고치) 98%를 기록하는 등 호평을 받았습니다.


국내 시장에서도 OTT 업체들이 나름의 ‘히트작’을 선보이며 반격에 나섰습니다. 티빙(TVING)의 경우, 계열사인 tvN이 제작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동시 송출하며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습니다. 왓차(WA TCHA)도 중소기업을 다룬 드라마 ‘좋좋소’가 호평을 받으며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이끌어냈죠.

이에 뒤질세라 넷플릭스도 5월 27일 최고 기대작 중 하나인 ‘기묘한 이야기’ 시즌4를 선보였습니다. 다만, 전체 회차를 한꺼번에 공개하던 기존 방식과 다르게 이번에는 둘로 나눠 첫번째 파트만 공개했습니다. 두번째 파트는 한달여 뒤인 7월 1일에 공개합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작품마다 효과적인 공개방식이 있기 때문에 예외를 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넷플릭스가 7월까지 유료 시청자를 붙잡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OTT 시청자들의 상당수는 볼 만한 콘텐츠가 소진되면 지체없이 구독을 해지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OTT 시청자들의 상당수는 볼 만한 콘텐츠가 소진되면 지체없이 구독을 해지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목할 점은 이런 콘텐츠 전쟁이 업체 간 출혈경쟁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OTT 업체들이 앞다퉈 작품성이 뛰어난 콘텐츠를 선보이기 시작하자 구독자들을 장기간 유치하는 것도 어려워진 겁니다. OTT 업체들이 시청자를 잡는 데 애를 먹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닙니다. 흥행작을 따라 OTT를 갈아타는 이른바 ‘메뚜기족’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OTT업체들의 작품을 대부분 챙겨 본 시청자 A씨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A씨는 오징어 게임(넷플릭스)→파친코(애플TV+)→우리들의 블루스(티빙)→기묘한 이야기(넷플릭스) 순으로 시청했는데, 파친코를 볼 때엔 넷플릭스를, 우리들의 블루스를 볼 땐 애플TV+를 해지하는 식으로 OTT를 갈아탔습니다. 작품을 다 본 뒤엔 곧바로 구독을 해지했습니다. 신작 외엔 큰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청자들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설문조사도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오픈서베이의 5월 보고서에 따르면 OTT 이용자(3000명)의 41.0%가 ‘최초 가입 후 서비스를 해지하고, 나중에 재가입한다’고 밝혔습니다. 10명 중 4명이 메뚜기족인 셈입니다.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전체의 70%는 ‘가입하지 않은 OTT의 콘텐츠를 보고 싶었던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중 30.8%는 ‘이 때문에 실제로 해당 OTT에 가입했다’고도 답했죠. OTT 서비스 중 가장 높은 이용률을 보인 건 물론 넷플릭스(61.0%)입니다. 넷플릭스는 아울러 다른 OTT에서 유입된 시청자 비율도 가장 높았는데, 디즈니플러스(68.2%), 왓챠(58.7%), 티빙(52.5%), 쿠팡플레이(48.1%) 등이었습니다. 가령, 디즈니플러스 시청자 10명 중 6.8명이 넷플릭스로 갈아탔다는 겁니다.

이처럼 시청자들은 콘텐츠를 따라 OTT를 옮겨타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그 중심엔 ‘넷플릭스’가 있습니다. ‘메뚜기족’이 늘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글로벌 OTT에 유리하다는 겁니다.

물론 국내 OTT 업체들이 시청자들을 붙잡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겁니다. 구독이 한달 주기로 갱신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론상 1년에 12편의 흥행작을 만든다면 소비자들을 계속 붙잡아둘 수 있습니다.

OTT 갈아타는 메뚜기족

하지만 제작비만 수백억원이 드는 콘텐츠를 연이어 제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넷플릭스만 해도 지난해에 한국 콘텐츠를 만드는 데만 5500억원을 쏟아부었습니다. 국내 OTT 업체로선 감당하기 힘든 액수죠.

그렇다면 국내 OTT 업체들이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가장 빠른 방법은 다른 OTT와 인수·합병(M&A)하는 건데, 국내엔 웨이브(Wavve)란 선례가 있습니다. 웨이브는 2019년 SK텔레콤이 자사 OTT 옥수수를 지상파 방송3사가 만든 푹(POOQ)과 합쳐 만든 서비스입니다. 해외에서도 M&A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워너미디어의 HBO맥스와 디스커버리의 디스커버리플러스가 통합한 게 대표적인 케이스죠.

웨이브가 그랬듯 OTT 업체들이 또다시 M&A를 하면 지금보다 경쟁력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이헌율 고려대(미디어학) 교수는 “현재 단계에서 그럴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며 말을 이었습니다.

“국내 OTT 시장은 크게 보면 웨이브·티빙 양강체제로 나뉘어 있다. 나머지 OTT는 워낙 영세해 이들 업체 간의 M&A는 사실상 효과가 거의 없고, 웨이브와 티빙의 M&A가 그나마 파급력이 클 것이다. 하지만 웨이브 뒤엔 지상파 3사와 SK텔레콤이 있고 티빙엔 CJ ENM이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드라마 제작사부터 통신사·방송사·대기업 등 많은 이해관계가 두 서비스에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합치기가 쉽지 않다.”

이 교수의 말마따나 푹(방송3사)과 옥수수(SK텔레콤)가 웨이브로 합쳐졌을 때엔 이해관계가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서로의 니즈도 명확했죠. 옥수수는 콘텐츠가 부족했고 푹은 가입자 유치에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M&A를 통해 방송3사는 콘텐츠 제작에, SK텔레콤은 플랫폼 운영과 콘텐츠 유통에 집중해 시너지를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웨이브와 티빙의 현 상황은 SK텔레콤과 방송 3사가 웨이브를 만들던 때와는 다릅니다. 약점이 뚜렷했던 푹·옥수수와 달리, 웨이브와 티빙은 제작사부터 유통·배급사까지 시스템 면에선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서로가 가진 VOD·TV 등 OTT에서 파생되는 2차 시장도 어느 정도 확보했습니다.

이에 따라 웨이브와 티빙의 M&A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두 업체가 중소 OTT와 기계적이든 화학적이든 결합을 꾀할 공산도 희박합니다. 대단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거나 나름의 경쟁력을 갖고 있지 않은 OTT라면, 웨이브와 티빙의 성에 찰 리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나리오는 HBO맥스와 디스커버리플러스의 M&A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교수의 말을 다시 들어볼까요? “디스커버리플러스는 HBO맥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영세한 서비스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등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해 온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다수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사 HBO맥스와의 M&A가 이뤄진 것이다. 국내에서 M&A가 성사되려면 콘텐츠든 제작 능력이든 영세 OTT들이 관련 역량을 키워야 한다.”

또한번 M&A 가능할까

어쨌거나 OTT 업체들의 콘텐츠 경쟁은 점점 더 뜨거워질 겁니다. 신작이 나올 때마다 메뚜기족들은 ‘구독해지’와 ‘신규구독’을 번갈아 누를 게 뻔하니까요. 이런 소비자들을 계속 잡아두려면 독자 콘텐츠를 늘려야 하는데,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M&A로 몸집을 키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웨이브와 티빙은 어떻게 넷플릭스, 디즈니 등 글로벌 OTT와 맞서 싸워야 할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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