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빚은 왕관

# 하늘이 뚫린 듯 며칠째 비가 내립니다. 얼마 전까지 가뭄 뉴스만 가득했는데 지금은 온통 호우경보와 비 뉴스뿐입니다. 비가 좀 그치길 기대하며 처마 밑에서 빗방울을 바라봅니다. 

#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가 굵어집니다. 빗방울은 점점 더 먼 곳까지 튀어오릅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예전 TV에서 봤던 광고가 떠오릅니다. 우유 한 방울이 천천히 떨어져 왕관 모양을 만들던 바로 그 광고입니다. 평상시 눈에는 볼 수 없는 찰나를 슬로모션으로 촬영한 모습입니다. 

# 문득 ‘나도 찍어볼까’란 생각이 스칩니다. 카메라를 들고 빗방울 튀는 곳 근처를 서성입니다. 아!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몰아치는 비바람에 날아온 수많은 물방울이 렌즈에 튀어 계속해서 닦아줘야 합니다. 우산을 썼지만 등과 엉덩이는 푹 젖어버립니다. 

# 급기야 빗방울 떨어지는 장소가 바람에 따라 달라집니다. 초점을 맞추기 더 어렵습니다. 카메라는 낮춰야 합니다. 그래야 튀어오르는 물방울의 모양이 잘 담깁니다. 

# 땅바닥에서 꾸물거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1장, 2장, 10장, 100장, 500장…. 빗방울의 우연을 기대하며 찍고 또 찍습니다. 끝내 빗방울이 만들어 낸 왕관이 렌즈에 담깁니다. 자연이 빚은 빗방울 왕관입니다. 

# 다시 하늘을 봅니다. 비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당신의 머리에 ‘빗방울 왕관’을 씌워주려는 모양입니다. 언제든 당신이 주인공이니까요.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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