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내각과 정치권
기민한 대응전략 필요

#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환율의 가파른 상승세는 가뜩이나 벼랑에 몰린  민생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입물가가 오르고, 결국 생활물가를 자극할 공산이 커서다. 

# 문제는 환율 상승을 억제할 뾰족한 방안이 우리에겐 없다는 점이다. 환율조작국 지정이란 위험요인 탓에 정부가 환율에 개입하는 것도 쉽지 않다.  미봉책이지만 원화를 맡기고 달러를 빌려오는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건 가능하지만, 이 역시도 우리가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이 때문에 환율상승기엔 정부의 기민한 대응과 정치권의 현명한 판단이 중요하다. 이들의 대응과 판단이 민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과연 윤석열 내각과 여야 정치권은 그런 준비를 하고 있을까. 아직까진 알 수 없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고高 시대다. 고물가는 가계의 실질소득을 사실상 줄여 내수를 짓누른다. 고금리도 마찬가지다.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진 차주借主는 소비를 줄일 공산이 크다.

다만, 3고 중 하나인 고환율은 조금 다르게 인식돼온 측면이 있다. 원·달러 환율이 ‘일정 구간’ 내에서 상승하면 수출기업에 득得이 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넘어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지금, 환율은 고물가·고금리만큼 무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무역수지 적자 행진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5월 수출과 수입은 각각 615억950만 달러, 632만1953만 달러를 기록해 17억1003만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21.3% 늘어날 때 수입은 32.0% 증가한 탓이다. 환율 상승세의 영향으로 수입액이 수출액을 앞지르면서 무역적자가 발생했다. 

‘수출이 줄어든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5월 수출액은 507억25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5월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환율 상승의 영향만큼 수입액이 커진 게 무역적자의 배경인 셈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달러가 유출되면 원화가치가 떨어져 결국 환율이 또 상승한다.

간접적 ‘달러 유출’이 발생할 수도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에서 무역적자의 늪에 빠졌다는 건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선 투자매력을 잃을 만한 변수고, 이는 자본 유출을 부추길 공산이 크다. 무역적자→매력 감소→외국인 자본유출→환율 상승이란 최악의 등식이 설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발생하는 더 심각한 문제는 ‘민생’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가 치솟아 음식료, 원유 등의 가격이 덩달아 상승한다. 대부분 민생에 직결되는 분야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4월 수입물가 상승률은 35.0% 를 기록했다. 그중 환율이 미친 영향은 3분의 1에 해당하는 10.3%포인트에 달했다.

당연히 수입물가도 치솟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4월 수입쇠고기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8.8%, 경유와 휘발유의 가격은 각각 42.4%, 28.5% 상승했다. 원자재 가격 이슈에 환율 상승 영향 까지 더해져 소비자물가상승률이 고공행진을 이어간 거다. 

수입물가는 더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4월 1250원대를 기록했던 원·달러 환율이 최근 1300원대를 위협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6월 23일엔 원·달러 환율이 1303.50원까지 치솟았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를 넘어선 건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경기침체가 가속화하던 2009년 7월 13일(1307.50원) 이후 13년 만이다. 더구나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를 넘어선 게 역사적으로 세차례(1997년·2001~2002년·2009년)에 불과했다는 걸 감안하면 쉽게 넘길 수 있는 일도 아니다. 

1300원 넘어선 원·달러 환율

혹자는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기업에 좋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논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수출기업의 영업이익이 늘어난다는 거다. 이를테면 1달러에 1000원이던 환율이 1300원으로 오르면, 환율 효과로 300원의 추가 이익이 발생한다는 거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문제가 있다. 환율 상승 효과가 이익 증가로 이어지는 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환율 상승에 따른 이익증가분이 당장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게 아니어서다. 

환율 상승으로 늘어나는 기업의 영업이익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 1000대 기업을 조사해 분석한 자료(2019년)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할 때 나타나는 영업이익률 개선 효과는 0.5%포인트에 불과했다.

한경연 측은 “한국의 산업구조는 기업이 다변화된 글로벌 공급망을 갖추고 있는 복잡한 생태계로 변했다”며 “환율 상승이 가격경쟁력을 높여 수출이 늘어난다고 단정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환율 상승 효과가 전체 기업에 돌아가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몇몇 수출 대기업은 환율 상승 효과를 만끽하겠지만 국내 기업의 9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을 공산이 크다. 환율이 오르면 원자재 가격도 올라 납품단가가 상승하는데, 이를 그때그때 반영해주는 대기업은 극히 드물어서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환율이 가동단계별 제품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원자재와 중간재는 각각 5.2%포인트와 4.5%포인트에 달했지만 최종재는 1.1%포인트에 불과했다(2022년 4월 기준). 

또다른 자료도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 10월 대구·경북지역 중소기업 142곳의  환율 상승 효과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환율 상승으로 기업이익이 5.2% 증가할 때 수입중간재 비용·물류비 등의 비용은 6.5% 늘어났다. 환율 상승이 중소기업엔 되레 부정적 영향을 미친 셈이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를 중심으로 납품단가 연동제의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의 오름세와 환율 상승이 함께 나타나면서 수입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며 “원자재 수입 비중이 큰 기업은 고환율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급격한 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를 치솟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사진=뉴시스]
급격한 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를 치솟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사진=뉴시스]

이처럼 환율 상승의 수혜는 생각만큼 크지 않다. 그 혜택이 일부 수출 대기업에 쏠린다는 점도 문제다. 이 때문에 많은 경제전문가는 환율의 가파른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게 쉽지만은 않다. 

사실 이전 정부들이 ‘실기失期’한 측면도 없지 않다. 대표적 사례는 외환보유액이다. 외환보유액는 환율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처럼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오를 때 갖고 있던 달러를 시장에 풀어야 환율 상승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서다.

대만이 1997년 아시아를 휩쓴 경제위기를 비켜 갈 수 있었던 것도 외환보유액을 충분하게 쌓아둔 덕분이었다. 국내외 경제기관이 우리나라를 향해 ‘적정한 외환보유액을 쌓아야 한다’고 조언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환율에 떠는 中企

하지만 이전 정부들은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는 충분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국제결제은행(BIS)이 제시한 적정 외환보유액(9300억 달러)의 절반 수준인 4400억 달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을 때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환율이 상승하자 달러를 풀기 시작했고, 외환보유액은 올해 1월 4615억 달러(약 598조7962억원)에서 지난 5월 4477억 달러(약 580조8907억)로 2.9%(17조9055억원) 줄어들었다. 외환보유액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문제는 외환보유액을 쌓을 달러를 더 모으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무역수지는 4월(24억6478만 달러)과 5월(17억1002만 달러)에 이어 6월에도 24억70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무역수지가 3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간 것은 2008년(6월~9월) 이후 14년 만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올해 상반기 103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상반기 기준 무역적자 최대 규모였던 1997년의 91억6000만 달러를 10억 달러 이상 웃도는 수치다. 

김대종 세종대(경영학) 교수는 “원·달러 환율은 당분간 계속 오를 가능성이 높은데 해법이 마땅치 않다”면서 말을 이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하고 있는 만큼 환율은 계속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무역의존도가 높고 수출과 수입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엔 달가운 소식이 아니다. 외국인 자본이 급격하게 빠져나가면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이럴 때 중요한 게 외환보유고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8%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와 항상 비교되는 대만은 90% 수준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는 현금 비중도 매우 낮다. 외환보유고를 늘림과 동시에 달러의 현금 비중도 확대해야 한다.” 

통제하기 어려운 원·달러 환율

이 때문에 위기 상황에 대비해 우리나라의 통화를 상대국에 맡기고 외화를 빌려오는 통화스와프를 서둘러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만료된 미국과 상설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느냐다. 미국과 상설 통화스와프를 맺은 나라는 유럽연합(EU)·일본·영국·스위스·캐나다 등 5개 기축통화국밖에 없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4월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우리가 원한다고 미국과의 통화스와프가 체결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참고: 통화스와프는 두 국가의 화폐를 약정된 환율에 따라 교환하는 외환거래다. 비상시 자국 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나 달러를 받는다.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외환보유고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외환보유고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그렇다고 외환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고 있어서다(6월 10일 발표). 환율 관찰대상국은 환율조작국의 전 단계다.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 세개 중 두개를 충족하면 관찰대상국이 된다.[※참고: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은 ▲1년간 200억 달러 초과의 현저한 대미 무역 흑자 ▲GDP의 2%를 초과하는 경상수지 흑자 요건 ▲외환시장 개입 요건 등이다.]

환율조작국에 지정되면 미국 기업의 투자 제한 등 직접 제재를 받을 수 있다. 한은이 외환시장이 출렁일 때 직접적인 개입 대신 구두개입으로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도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수 있어서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미국을 따라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를 미국보다 높게 유지해 달러 강세를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봉 한성대(경제학) 교수는 “환율 방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사실상 없다”며 “미국을 따라 기준금리를 인상해 외국인 자본유출을 막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미 기준금리의 역전으로 자본유출이 심화하면 환율은 더 치솟을 수 있다”며 “달러 강세의 원인인 인플레이션이 진정되지 않는 이상 환율은 계속 출렁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원·달러 환율은 고물가, 고금리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서민에게 더 큰 짐을 떠안길 것이다.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물가든 금리든 환율이든 잡을 수 있지만, 가계부채가 많은 우리나라 서민에겐 반가운 소식일 수 없다.

이 때문에 지금 절실한 건 윤석열 내각과 정치권의 현명한 판단이다. 외환보유고를 늘려야할 때 늘리지 않은 이전 정부의 실기를 반복해선 안 된다.

김대종 교수는 “이미 아시아 신흥국을 중심으로 외환위기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며 “한곳에서 시작된 위기가 연쇄반응을 일으키면 신흥국 전체로 위기가 확산할 수 있다”며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것은 물론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시련의 시절은 깊어질 공산이 크고, 민생은 점점 더 벼랑으로 몰리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과연 적절한 정책을 위해 한길을 걸을 수 있을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