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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없는 미래유산
경제 논리에 사라지는 유산들
한국에 100년 가게 없는 이유

1980년 서울 중구 을지로에 문을 연 ‘을지OB베어’가 지난 4월 강제 철거됐다.[사진=뉴시스]
1980년 서울 중구 을지로에 문을 연 ‘을지OB베어’가 지난 4월 강제 철거됐다.[사진=뉴시스]

# “100년 가게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영업을 종료합니다.” 지난 6월 7일 76년 역사의 중국집이 문을 닫았다. 1946년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터를 잡았던 ‘대성관’이다. 대성관을 2대째 이어오던 주인장이 지난해 작고하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 이보다 두달 앞선 4월엔 서울 중구 을지로 노가리골목 터줏대감인 ‘을지OB베어’가 강제 철거됐다. 1980년 문을 연 을지OB베어는 노가리골목의 시초로 불렸다. 하지만 임대인이 2018년 제기한 명도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철거 수순을 밟게 됐다.[※참고: 1980년 영업을 시작한 을지OB베어는 2002년 11월 이후 계약한 점포만 보호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대상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시민들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문을 닫은 두 노포老鋪는 서울시가 선정한 ‘서울미래유산’이다. 대성관과 을지OB베어는 각각 2013년,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표➊). 

서울미래유산은 서울시가 2013년 시작한 제도다. 문화재는 아니지만 보존 가치가 있는, 미래 세대에 물려줄 만한 근현대 문화유산(식당·시장·마을·거리·산업단지 등)을 대상으로 선정하고 있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시민이나 시민단체도 신청할 수 있고, 서울시 내 서울미래유산 보존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선정된다(표➋). 제도가 도입된 2013년 이후 총 506개의 서울미래유산이 지정됐다(표➌). 

하지만 후대에 물려줄 가치를 인정받은 서울미래유산도 경제 논리나 개발 논리 앞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실제로 명맥을 잇지 못하고 사라진 서울미래유산은 대성관이나 을지OB베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엔 1979년 문을 연 종로 ‘서울극장(2013년 지정)’이 경영난으로 폐업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한 2020년엔 신촌 ‘복지탁구장(1962년 개업·2015년 지정)’이 전염병의 직격탄을 맞아 문을 닫았다.

서울미래유산 선정만으로는 문화유산을 제대로 지키는 게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도 보존을 위한 별도의 지원이나  규제 장치가 전무해서다.

서울미래유산과 유사한 제도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로 서울미래유산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숱하게 많다. 서울시가 지정하는 ‘오래가게(2017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운영하는 ‘백년가게(2018년)’가 대표적이다(표➍).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는 “‘서울미래유산’이라는 타이틀을 쥐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말을 이었다. “일본의 100년 가게들은 민간뿐만 아니라 지자체와 정부가 하나의 팀이 돼서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도 기준 법령이나 통일된 제도를 만들어 공신력을 갖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울러 유사한 제도를 통합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줄줄이 사라지는 서울미래유산은 과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까. 현재로선 답을 하기 어렵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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