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중기적합업종 논란❸ 메기의 출현
현장 대리운전기사 “대기업 진출 필요해”
높은 수수료·보험료와 명분 없는 관리비
대기업 진출 이후 변화 생기기 시작했어
경쟁 통해 관행 개선하고 질적 성장해야

지난 5월 대리운전 산업이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이후 업계 종사자들이 상반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대리운전 업체를 운영하는 사업주들은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대리운전기사들은 “대기업 진출을 막는 것이 되레 시장 성장의 걸림돌”이라는 반응입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요? 현장 기사들이 사업주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대기업 진출을 바라보는 현장 기사들의 시선은 사업주들과 다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기업 진출을 바라보는 현장 기사들의 시선은 사업주들과 다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리운전 알바하다 페라리 몰아본 썰’ ‘대리운전 부업 뛰는 20대 일상’. 포털 검색창에 대리운전이란 키워드를 입력하면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만큼 대리운전 시장의 진입장벽은 낮습니다. 부수입이 필요한 직장인 혹은 당장 생계의 위협을 받는 이들에게 대리운전 시장은 가장 빠르게 뛰어들 수 있는 합법적 일터죠.

하지만 대리운전 시장의 현실은 무법지대나 다름없습니다. 국내에는 대리운전 산업 전반을 관리 · 감독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전무합니다. 대리운전기사는 물론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 개개인을 보호할 최소한의 울타리도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리운전 이용요금도, 현장 기사들의 처우와 업무 환경도 ‘업계 관행’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최근 대리운전업이 중소기업적합업종(이하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대리운전기사들이 되레 아쉬움을 표하는 것도 바로 이런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대기업의 시장 진출(2016년 카카오모빌리티 · 2021년 티맵모빌리티) 이후 ‘경쟁 활성화→불합리한 관행 개선→시장 혁신’이란 선순환 구조가 자리잡기를 기대했는데, 중기적합업종 지정으로 이런 과정에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겁니다.

이는 대리운전 업체를 운영하는 사업주들이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정반대 의견입니다.[※참고: 중기적합업종 지정으로 신규 대기업은 대리운전 시장에 진출할 수 없습니다(전화 유선콜 한정). 이미 시장에 진출한 카카오와 티맵은 사업 확장을 자제할 것을 권고받았죠.] 

그렇다면 대리운전기사들의 주장대로 대기업이 대리운전 시장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정말 대리운전 시장에 대기업의 역할이 필요한 게 맞을까요? 현재로선 ‘대체로 사실’로 보입니다. 이창배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사무국장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대리운전 시장은 전화 유선콜 기반 업체들이 전체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이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해서 현장 기사들에게 각종 갑질을 행해왔다. 그나마 대기업이 시장에 진출하고 경쟁이 생기면서 기사들의 처우나 업무 환경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시장경쟁을 통해 업계 나름의 질적 성장을 이루고 있었는데, 중기적합업종 지정으로 그마저 막힌 셈이다.” 

쉽게 말해 대기업이 경쟁을 촉발하고 이를 통해 시장의 변화를 유인하는 ‘메기’ 역할을 했다는 건데요. 현장의 대리운전기사들은 메기효과의 대표적 사례로 처우 개선을 꼽았습니다. 업계 관행으로 굳어진 수익 구조를 하나씩 뜯어보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구조➊ 수수료 = 대리운전기사들은 운행 한건당 발생하는 이용요금으로 돈을 벌어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각 대리운전 업체가 가져가는 수수료 비율입니다. 기존의 유선콜 업체들은 최종 요금의 20%를 수수료로 뗍니다(수도권 기준). 나머지 80%는 기사들의 몫입니다. 지방에서는 수수료율이 최대 30~35%에 이르기도 합니다. 

카카오와 티맵의 수수료율도 기존 업체들과 다르지는 않습니다. 다만 카카오는 수요 · 공급 상황에 따라 수수료율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변동수수료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수수료율 20%를 상한선으로 하되, 이용자 수요가 적을 때는 20%보다 낮은 수수료율을 책정하는 겁니다. 티맵 역시 수급 상황에 따라 수수료율을 낮추거나, 수수료액에서 일정 금액을 기사들에게 현금으로 돌려주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수수료가 적을수록 현장 기사들이 가져가는 몫은 더 커집니다. 기사들의 입장에선 당연히 대기업의 정책을 더 환영할 만합니다.[※참고: 카카오의 변동수수료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모니터링이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구조➋ 보험료 = 혹자는 “애초에 업체보다 기사들이 가져가는 몫이 더 큰데, 변동수수료가 큰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대리운전기사의 총수입에서 빠져나가는 돈은 수수료뿐만이 아닙니다. 현장 기사로 일을 하려면 반드시 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기사들은 연 100만원 이상의 보험료를 모두 자비로 부담하고 있습니다. 반면 카카오와 티맵은 자사와 연계한 보험에 가입한 기사들에 한해 회사에서 보험료를 전액 지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기업의 보험료 지원 정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결국 시장을 독점하기 위한 일시적인 당근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2~3개의 보험에 중복 가입하는 기사들이 상당수인 현실을 감안하면, (대기업의) 보험료 지원은 놓치기 아쉬운 혜택임에는 분명합니다.

[※참고: 대부분의 대리운전기사들은 더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 여러 곳의 대리운전 업체에 등록합니다. 문제는 각 업체가 “우리 회사와 연계된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워 다른 회사에서 가입한 보험은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현장 기사들은 어쩔 수 없이 여러 개의 보험에 가입하고, 결과적으로 보험료 부담은 2~3배 늘어나게 됩니다.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치로 지난해부터는 기사들이 대리운전 업체를 통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지만, 기존 업체들은 개인보험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게 현장 기사들의 중론입니다.]

■구조➌ 기타 비용 = 수수료 · 보험료 외에도 대리운전기사들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비용은 또 있습니다. 프로그램비와 관리비입니다. 대리운전기사들은 손님의 콜(전화)을 중개하고 배정해주는 관제 프로그램을 이용하는데, 한달에 1만5000원씩 사용료를 냅니다. 연간으로 따지면 18만원입니다. 더 많은 콜을 유치하기 위해 기사 한사람당 3~4개의 프로그램을 사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액수입니다. 

반면 유선콜 사업을 운영하는 카카오는 배차 혜택을 주는 유료 멤버십 프로그램(프리미엄콜 · 월 2만2000원)을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의 비용을 기사들 대신 부담합니다. 현장 기사들로선 적지 않은 돈을 아낄 수 있는 셈입니다.[※참고: 티맵은 현재 유선콜 사업이 아닌 플랫폼 사업만 운영하고 있는데, 플랫폼 내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내에는 대리운전 시장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없다.[사진=뉴시스]
국내에는 대리운전 시장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없다.[사진=뉴시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관리비’ 명목으로 대리운전 업체에서 받아가는 돈이 매일 500~1000원 남짓입니다. 언뜻 미미해 보이지만 문제는 이 비용으로 무엇을, 어떻게 관리한다는 건지 알 길이 없다는 겁니다.

경기도에서 프랜차이즈 대리운전 업체의 대리점을 운영하는 이상훈(28) 대표는 “일명 ‘일비’라고 해서 업계 관행상 걷는 돈이지만 솔직히 말해 이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나조차도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카카오와 티맵에는 이런 관리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기업 시장 참여, ‘메기효과’ 기대  

자, 어떻습니까. 현장의 대리운전기사들이 대기업의 시장 참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를 이제 좀 아시겠나요? 물론 현장 기사들의 견해만으로 대기업의 진출을 무조건 옹호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대기업의 시장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규제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경쟁자의 출현은 기존 사업자들로 하여금 차별화된 서비스를 고민하게 만들고, 차별화된 서비스는 소비자들의 편의를 높이는 수단이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대기업의 진출이 궁극적으론 대리운전 시장의 크기를 키우고, 서비스 품질을 제고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 대리운전 업체들이 한번쯤은 돌아봐야 할 대목입니다.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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