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선에서 너도나도 유치 공약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에도 그랬지만
여건 따져보면 실현 가능성은 극히 낮아

“디즈니랜드를 유치하겠다.” 지난 6·1 전국지방선거에서 몇몇 후보가 지역구에 글로벌 테마파크인 디즈니랜드를 유치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빈 약속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주변 국가에 디즈니랜드가 이미 있는 데다, 유치에 나선다고 한들 조건이 녹록지 않아서다. 디즈니랜드 공약, 진심이었을까 막 던진 허풍이었을까. 설마 디즈니의 ‘디’자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글로벌 테마파크인 디즈니랜드는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크다. 너도나도 유치 공약을 남발하는 것도 이때문이다.[사진=연합뉴스]
글로벌 테마파크인 디즈니랜드는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크다. 너도나도 유치 공약을 남발하는 것도 이때문이다.[사진=연합뉴스]

# 2005년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이명박(MB) 서울시장이 한 인터뷰에서 “월트 디즈니사와의 테마파크 유치 협상에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고 밝히면서 다음과 같은 전망을 늘어놨다. “세계적인 테마파크를 서울 근교에 건설하는 계획을 2006년 초 공식 발표할 수 있을 것이다. 테마파크를 건설하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현재 600만명에서 1000만명으로 늘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월트디즈는 그로부터 4년 후인 2009년 새로운 디즈니랜드 사업지로 중국 상하이上海를 택했다. MB는 대체 무슨 근거로 ‘디즈니랜드’를 운운했던 걸까.

# 6·1 전국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던 지난 5월 ‘디즈니월드 경북 유치설’이 번졌다. 한 매체가 “6월 중 유치가 확정된다”고 보도한 게 도화선이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내 화제로 떠올랐지만, 해당 지자체에서 “협의 중일 뿐 확정된 건 없다”고 밝히며 사태가 진정됐다.

사실 6·1 지방선거 때 ‘디즈니랜드 유치’란 말이 떠돈 건 경북만이 아니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자기 지역구에 디즈니랜드를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우후죽순으로 내놨다. 신호탄을 쏘아 올린 건 강기정(더불어민주당) 광주시장(이하 현 직책)이다.

지난해 9월 강 시장은 ‘호남의 미래를 여는 7대 대선공약’을 마련해 각 대선후보 캠프에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광주시장 선거전에 돌입했다. 그 7대 대선공약에 ‘22세기형 디즈니랜드 건립’이 포함돼 있다. 그는 당시 “주요 대도시권에서는 테마파크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 호남은 추진 논의조차 없다는 지적이 많다”면서 “가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22세기형 디즈니랜드’를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민의힘 인천시장 예비후보로 나섰던 안상수 전 의원은 인천시 서구에 있는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 사용을 2025년 종료하고, 그 부지에 디즈니랜드를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옛 쓰레기 매립지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친환경 ESG 디즈니랜드 및 고급리조트를 유치하겠다는 거였다. 

그는 “일본 도쿄, 홍콩, 중국 상하이보다 더 큰 규모로 디즈니랜드를 유치해 인천-홍콩-상하이-도쿄와 ‘디즈니랜드 연계 크루즈관광 사업’을 추진하고, 글로벌 관광객을 유치해 인천 전 지역에 경제적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참고: 안 전 의원은 경선에서 패해 본선에 나가지 못했다.] 


김관영(더불어민주당) 전북도지사 역시 디즈니랜드 유치를 공약했던 사람 중 한명이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새만금에 디즈니랜드와 같은 대규모 테마공원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본 도쿄 디즈니랜드가 지역 사회의 발전을 견인한 것처럼, 디즈니랜드와 같은 흡입력이 뛰어난 매혹적인 테마파크를 반드시 유치하겠다.”

디즈니랜드 유치 공약을 내세웠던 후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재관(더불어민주당) 천안시장 후보는 “성환 종축장에 디즈니랜드를 유치하겠다”며 “공간적으로는 충분하지만 독자적으로 유치하는 것은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충남도, 경기도, 중앙정부와 공동 추진하도록 협의하겠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무소속으로 제주도지사 예비후보로 나섰던 장정애 제주해녀문화보전회 이사장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디즈니랜드 테마파크를 서귀포시에 유치하겠다”며 “약 9만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것은 물론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디즈니랜드가 뭐기에 선거철만 되면 호들갑을 떠는 걸까. 1955년 7월 개장한 디즈니랜드는 전세계 6개 지역(미국 캘리포니아·플로리다·일본 도쿄·프랑스 파리·홍콩·중국 상하이)에서 운영되고 있는 테마파크&리조트다. 하루 평균 이용객이 30만명, 연간 이용객이 1000만명을 넘는다.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낙수효과도 뛰어나 너도나도 디즈니랜드를 유치하고 싶어 한다. 성공 사례로 꼽히는 일본 디즈니랜드를 보자. 일본 지바현 우라야스시에 위치한 디즈니랜드(1983년)는 미국의 디즈니랜드가 그러하듯 규모가 82만6000㎡(약 25만평)에 달해, 하루에 다 보기 힘들 정도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 디즈니랜드 평균 체류시간은 7시간 20분이다.

이 넓디넓은 디즈니랜드가 들어서면서 가장 많은 덕을 본 건 그 지역이다. 디즈니랜드가 조성된 우라야스시 지역은 그 전까지만 해도 일본서도 손꼽는 못사는 마을이었다. 하지만 디즈니랜드 덕에 지금은 부자마을이 됐다. 우라야스역을 이용하는 승객(정기승차권 제외)도 개장 이전인 1982년과 비교해 80% 넘게 증가했다. 

디즈니랜드 개장 직후인 1984년 우라야스시의 고정자산세 수입은 전년 대비 28.5%나 늘어났다.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도로 등 각종 인프라가 개선되고, 관광객들이 지불하는 돈이 지역경제를 살린 결과다.

[※참고: 디즈니랜드를 유치한 모든 지역이 성공한 건 아니다. 유럽에서 첫번째로 디즈니랜드를 유치한 프랑스 파리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김갑성 연세대(도시공학과) 교수는 “파리는 지역균형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디즈니랜드를 유치했기 때문에 디즈니랜드에 많은 특혜를 제공했다”면서 “직간접적으로 5만5000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운영비와 임금 탓에 매년 적자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정치인들의 공언대로 우리도 디즈니랜드를 유치할 수 있을까. 김갑성 교수는 “한국에 디즈니랜드가 들어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 주장을 이어갔다.

“그동안 디즈니랜드 유치를 몇차례 검토했지만 도중에 중단된 걸로 알고 있다. 디즈니랜드 측에선 수요가 많길 원한다. 그런 조건이라면 수도권에 들어서야 하는데, 수도권엔 이미 에버랜드와 롯데월드가 있질 않나. 게다가 글로벌 테마파크가 들어올 땐 현지의 토지를 무상으로 사용하길 원한다. 그만큼 조건이 녹록지 않다.” 

김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크게 흥미롭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협상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템이 아니라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테마를 제안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디즈니랜드가 국내에 들어오더라도 새롭지 않을 것이다.”

디즈니랜드 입장에서도 한국이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글로벌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디즈니랜드는 이미 일본이나 홍콩, 중국 등 주변 국가에서 성업 중이다. 같은 동아시아에 있는 한국에 굳이 디즈니랜드를 만들 필요가 없는 이유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디즈니랜드 공약을 던진 후보 중엔 당선된 이들도 있다. 그들은 과연 지킬 수 있는 약속을 늘어놓은 걸까. 답은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지방선거가 끝난 뒤 디즈니랜드의 ‘디’자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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