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혁신 위한 스마트공장 보급 사업
IT전문가 부족에 시달리는 제조기업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집중해야

‘네카라쿠배.’ 외국말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다.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민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엔 여기에 ‘당토직야’까지 붙었다. 당근마켓, 토스, 직방, 야놀자다. 언뜻 채용시장에서 떠도는 신조어처럼 보이지만, IT 업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네이버, 카카오 등 IT 대기업에 인력을 빼앗긴 제조업계는 ‘인재 고갈’에 시달리고 있다. 

IT전문가가 없으면 스마트공장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힘들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IT전문가가 없으면 스마트공장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힘들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겉만 보면 평범한 전기부품 제조공장이다. 하지만 이곳엔 특별한 게 있다. 우선 하나의 생산라인에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생산이 중단되지 않는다. 가령, A제품에 이어 B제품을 생산할 때 설비가 자동 전환한다. 설비를 애써 교체하지 않아도 다품종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생산 과정에서 불량품이 발생하면 어디서 문제가 생긴 것인지 곧바로 알 수 있다. 작업자가 현장 모니터를 상시 보고 있어서가 아니다. 에러가 생기면 작업자의 휴대전화로 알림이 뜬다. 설비에 이상징후가 있다면 사고 발생 전에 알려줄 뿐만 아니라, 자가 진단을 통해 제어까지 한다. 

A기업 제조공장에 적용된 스마트공장의 실례다. A기업이 제조공장에 생산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하는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설치하고, 딥러닝(자가 학습) 기술로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결과다.[※참고: 스마트공장의 형태와 수준은 업종과 업태, 기업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스마트공장이 제조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걸 입증한 대표적 사례인데, 정부와 산업계가 뜻을 모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스마트공장 보급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14년부터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ICT융합스마트공장 보급 확산’을 위한 지원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이 사업에 투입된 예산만 1조4917억원에 달한다. 올해 배정된 예산은 3570억원이다. 올해 안으로 3만개(누적 기준) 기업에 스마트공장을 보급할 것으로 보인다. 

성과는 적지 않다. 산업연구원이 중기부의 지원을 받아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중소기업들의 성과를 분석한 결과(2020년)를 보면, 생산성이 28.5% 증가했고, 제품 품질은 42.5% 향상됐으며, 원가는 15.5% 감소했다. 이는 기업당 매출 7.4% 증가, 고용 2.6명 증가, 산업재해 6.2% 감소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모든 성과가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대부분의 스마트공장이 ‘기초’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풀어야 할 숙제다. 중기부는 스마트공장의 고도화 수준을 ‘미적용-기초-고도화1-고도화2’까지 총 4단계로 구분해 지원하고 있는데, 고도화1 이상을 갖춘 곳은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 대상인 중소기업의 23% 수준에 불과해서다. 스마트공장 고도화를 통해 제조기업의 경쟁력을 더 높일 수 있는데도, 한계에 봉착해 있다는 거다. 

물론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혁신 의지와 무관하진 않지만, 경영자의 뜻이 확고하더라도 ‘스마트공장 고도화’란 한계를 뛰어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문제다.

다시 A기업 스마트공장의 사례를 살펴보자. 이 공장에서 설비는 사람 손에 의해 제어되지 않는다. 대부분 센서와 센서에 의해 수집된 데이터, 이 데이터들을 분석하는 시스템을 통해 제어된다.

이런 상황에서 공장을 업그레이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공장에 딱 맞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 한다. 당연히 이 공장에서 필요한 인재는 블루칼라 노동자가 아닌, 데이터를 분석하고 알고리즘을 설계할 수 있는 IT전문가다. 

맹점은 IT전문가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 제조기업에서 스마트공장 구축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B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모두가 4차 산업혁명을 외치는 시대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인재는 데이터를 핸들링할 수 있는 IT전문가다. 하지만 이들을 찾는 게 너무 힘들다. 인재 대부분이 네이버나 카카오 등 IT 대기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들의 요구를 얼마만큼  맞춰줄 수 있느냐는 건데, 제조업은 고정비가 많아서 (고정비가 적은) IT 대기업처럼 인건비를 맞춰주는 게 쉽지 않다.” 인재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중기부의 스마트공장 보급 확산 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 관계자도 “현장엔 IT 인재가 필요하지만 이들의 이직이 잦고, 연봉도 높아 기업들이 애로를 겪고 있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IT 전문가의 쏠림 현상만이 아니다. 전문인력의 수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국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소프트웨어(SW) 전문인력은 총 35만1600명인데, 이 가운데 데이터 전문가는 8000명(2.3%)에 불과하다. 정부와 민간기업이 손잡고 스마트공장 보급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스마트공장을 제대로 활용할 인재가 없다는 얘기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일부에선 IT전문가의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낙훈 경북대(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교수는 “IT 전문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많이 나오지만, 정작 대학에선 정원을 늘릴 수 없으니 공급에 한계가 많다”면서 “대학들이 자유롭게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해주면 자연스럽게 공급이 늘어나고 임금이 낮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익명을 원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수많은 IT 전문인력이 배출되고 있지만, 그들은 실리콘밸리에 있는 IT 대기업에 들어가려 줄을 서고 있으며 절대로 제조기업으로 가려 하지 않는다”면서 “공급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제조기업이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는 건 힘든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IT전문가를 산업별로 골고루 배분할 구조를 만들기 전에는 공급이 수요를 맞추긴 힘들 거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 제조기업들은 생산공장들을 해외로 돌렸다가 최근 몇년 사이 꾸준히 자국으로 복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아마 공장들이 점차 복귀하고 나면 IT 전문가가 넘치는 미국도 똑같은 문제를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소프트웨어(IT인재)보다 하드웨어(스마트공장 보급)에만 집중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는 소프트웨어(IT인재)보다 하드웨어(스마트공장 보급)에만 집중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 때문인지 전문가들은 ‘절충론’을 제시한다. 제조기업이 B2B를 전문으로 하는 IT기업들과 협업하면 인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주장이다. 가능한 대안이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B2B IT기업의 IT전문가가 제조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B2B IT기업들 역시 IT전문가 부족으로 몸살을 앓고 있어서다.

대기업 계열의 IT기업 관계자는 “우리 역시 SW기업으로의 인재 유출이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내부에서 인재를 키워도 이직을 막기가 벅차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도 정부는 스마트공장 구축 등 하드웨어에만 집중하는 모양새다. 중기부는 지난해부터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K-스마트 등대공장’을 선정해 지원하는 사업도 펼치고 있다. 성과가 없지 않지만 IT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다면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젠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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