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주년 광복절 특집➊ 토종벼의 민낯
일제강점기 때 사라진 우리나라 토종벼
양평군 토종벼 품종 연구·보급 사업 전개
6·1 지선 이후 권력 교체되자 사업 위기  
정치 프레임에 휘말린 토종벼 사업의 민낯

# 2021년 경기도 양평군은 ‘특별한 사업’을 시작했다. 토종벼 품종을 연구하고, 보존·보급하는 사업이었다. 어쩌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군 차원’에서 진행했던 건데, 그 중심엔 더불어민주당 소속 군수가 있었다. 그는 이 특별한 사업에 특별한 힘을 쏟아부었다. 농민의 호응도 대단했다. 

# 하지만 지방선거를 1개월여 앞둔 올해 5월 토종벼 사업은 난데없이 ‘정치적 프레임’에 걸려들었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군수가 교체된 이후엔 관련 사업이 크게 축소됐다. 토종벼 사업을 시작한 지 고작 1년 만의 일인데, 그 과정에선 ‘토종벼 좌파 프레임 논란’도 벌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더스쿠프가 77주년 광복절 특집으로 토종벼의 민낯을 취재했다. 그 1편 토종벼 좌파 프레임 논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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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군의 토종벼 보존사업이 ‘좌파 프레임 논란’에 휘말렸다.[사진=더스쿠프포토, 게티이미지뱅크] 
경기도 양평군의 토종벼 보존사업이 ‘좌파 프레임 논란’에 휘말렸다.[사진=더스쿠프포토, 게티이미지뱅크] 

경기도 이천시에서 생산하는 ‘임금님표’ 쌀은 토종벼에서 나온 걸까. 지금의 이천쌀이 밥맛이 좋아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하던 그 시대의 이천쌀과 같냐는 건데, 그렇지 않다. 그럼 경기도 여주에서 생산하는 ‘대왕님표’ 쌀은 토종벼에서 나왔을까. 이 역시 아니다. 모두 ‘아키바레’라는 일본의 개량종 벼에서 나온 쌀이다. 

비단 이천쌀·여주쌀만의 얘기가 아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엔 토종벼가 거의 없다. 일제강점기와 개발독재 시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쌀을 수탈할 계획을 세운 일본은 다수확 품종이 가능한 일본의 개량종을 들여와 재배를 강요했고, 이 때문에 토종벼 품종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광복 이후엔 박정희 정부가 산업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식량의 수요가 늘어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국내 개량종)’를 보급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토종벼는 더 빨리 사라졌다. 그럼 토종벼의 종자는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으려면 시계추를 다시 일제강점기로 돌려야 한다. 조선총독부는 한반도에서 쌀을 수탈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벼 품종을 조사했다. 이 조사를 토대로 1913년 ‘조선도 품종일람(2022년 6월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유전자원센터에서 한글 번역본 발간)’이라는 자료집을 냈다. 이에 따르면 당시 한반도에는 1451종의 벼 품종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토종벼다. 이중 25.1%인 364점의 종자가 농촌진흥청(농진청) 농업유전자원센터에 남아있다. 

문제는 토종벼 연구 작업이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기관 관계자는 “정부는 수확량을 기준으로 삼은 연구에 집중했기 때문에 토종벼 연구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토종벼를 비롯한 종자산업은 명실상부한 ‘미래산업’이다. 세계 종자 시장의 규모는 2020년 기준 440억 달러에 이른다. 같은해 세계 D램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가 656억 달러, 세계 PC게임 시장 규모가 369억 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종자산업의 어마어마한 가치를 어림잡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토종벼의 연구·육성에 관심을 가진 지자체가 있었다. 경기도 양평군이다. 양평군은 친환경농산물의 생산·유통 시스템을 구축해 친환경농업 특구로서의 위상과 가치를 재확립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토종작물의 유전자원을 보전·보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참고: 토종작물이란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 땅에 적응해 변이가 일어나지 않는 작물이다. 그래서 토종작물은 그 씨를 받아 심으면 똑같은 작물이 자란다. 반면 대부분의 작물은 사람이 개량한 품종이다. 그래서 그 씨를 심어도 똑같은 작물을 생산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토종벼를 심는 농가는 거의 사라졌다.[사진=뉴시스]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토종벼를 심는 농가는 거의 사라졌다.[사진=뉴시스] 

양평군의 사업엔 ‘토종벼 유전자원 협력연구개발사업(이하 토종벼 사업)’도 있었다. 연구·개발(R&D)을 통해 토종벼의 역사성을 되살리고, 벼 품종을 다양화하겠다는 게 사업의 목표였다. 이를 위해 양평군은 2020년 12월 4일 토종벼 종자로 농사를 지어오던 ‘우보농장’과 협약을 맺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종자와 농법을 연구·보급하는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수확량을 담보할 수 없으니, 이 사업을 통해 생산하는 쌀은 양평군이 수매하거나 판매처를 구해주기로 했다. 이 사업엔 양평군 12개 읍면 농가 14곳과 청운면 가현리 농가 8곳이 참여했다. 

문제는 양평군의 토종벼 사업이 정치싸움에 휘말렸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토종벼 사업을 둘러싼 역학구도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이 사업을 밀어붙인 이는 민선 7대 정동균 군수(더불어민주당·2018년 7월 1일~2022년 6월 30일)였다.

하지만 지방의회의 다수를 점한 국민의힘(군의원 7명 중 4명)은 토종벼 사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토종벼 사업이 정치적 불균형 속에서 진행된 셈이다.[※참고: 이는 토종벼 좌파 프레임 논란의 발단으로 작용한다. 이 이야기는 후술한다.] 

어쨌거나 2018년 토종종자 확대 사업을 시작한 정동균 군수는 토종벼로 사업을 확장했다. 군수가 직접 농민을 찾아 토종종자와 토종벼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농민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지난해 1월엔 전국 지자체 최초로 군 농업기술센터에 토종자원 육성 전담기구 ‘토종자원팀’을 신설했고, 3월에는 ‘토종농작물 보전과 육성에 관한 조례’를 공포했다. 토종벼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도 개최했다. 

지난해 3월 ‘토종볍씨 나눔행사’를 시작으로 토종벼 손 모내기 행사(5월), 토종벼 벼베기 행사(9월), 전국 토종벼 농부 대회(지난 4월) 등을 통해 토종벼를 알리는 데도 힘을 쏟았다. 양평군이 토종벼를 알리고 막걸리·맥주 등의 가공식품 개발을 위해 지난해 수확한 토종벼 15톤(t)을 수매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대선을 6개월여 앞둔 2021년 9월부터 상황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토종벼 사업을 위해 편성한 예산이 군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양평군은 그해 9월 ▲토종벼 채종포(종자를 채취하기 위해 마련한 논) 표찰 제작(3000만원) ▲양평토종씨앗 홍보 달력 제작(1600만원) ▲토종자원 제품 패키징 디자인 개발(2000만원) ▲토종벼 재배와 활용방안 교류 심포지엄 개최(2200만원) 등의 예산을 편성했지만 군의회의 반대로 모두 삭감됐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 군의회는 토종자원 거점단지 조성에 사용할 부지 매입 예산 40억55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토종자원 거점단지 관리센터 건립 예산(1억5150만원) ▲토종자원 가공 상품개발 지원사업(4800만원) ▲토종자원 교육 프로그램 운영예산(4000만원) 등 2억원이 훌쩍 넘는 토종벼와 토종자원 예산이 군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양평군 관계자는 “토종벼 사업은 계속 진행하고 있다”며 “단지 방법과 진행과정에서 논의가 필요해 사업 속도가 늦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사업의 타당성과 적합성을 따지는 건 필요한 과정이다.

문제는 토종벼 사업을 시작한 지 고작 1년이 흐른 시점에서 왜 예산을 삭감하고 나섰느냐다. 농민들 사이에서 토종벼 사업에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양평군 측은 “오해의 소산”이라고 해명했지만, 오해로 보기 힘든 측면이 많다. 정권이 교체된 지난 3월부터 지방선거가 열린 6월 1일까지 토종벼 사업을 둘러싼 상황을 보면 특히 그렇다. 

자! 지난 5월 6일 열린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청문회 현장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이 청문회에 참석한 김선교 의원(국민의힘·경기 여주시 양평군)은 “우리 지역구 양평에서 친환경 농업 특구 대신 토종벼 사업을 장려하고 있다”며 “지난해 36톤(t)을 생산했는데 한톨도 못 팔아 창고에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양평군이) 토종벼 시범사업을 하면서 농지 46억원어치를 구입하려 한다”며 “이런 정책은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조사를 해봐야 하는 게 아니냐”고 질문했다.

정 장관은 “살펴보겠다”고 답했지만, 장관의 자격을 검증하는 청문회에 걸맞은 질의응답이었는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몇몇 양평군 농민은 “국민의힘 측이 토종벼 사업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걸 입증한 질의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의원이 질의만 한 것도 아니다. 김 의원은 6·1 지방선거를 10여일 앞둔 지난 5월 19일 자당 후보의 출정식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토종벼는 키가 커서 잘 쓰러지고, 병충해에 약해 소출이 적다. 농림부나 농진청도 연구를 안 한다. 토종 씨앗 관련 정책을 연구하는 곳은 좌파 쪽 시민단체 말고는 없다.” 

6·1 지선에서 재선을 노리던 정동균 군수가 적극적으로 펼친 토종벼 보전·보급 사업의 성과를 폄훼하는 과정에서 색깔론을 펼쳐놓은 셈이었다. 이게 바로 지방선거 직전 양평군에 휘몰아친 ‘토종벼 좌파 프레임 논란’이다. 

당시 사업에 참여했던 농민들이 분개했다. 농민들은 “토종씨앗 재배농민을 좌파로 몰아세우냐”는 내용의 현수막을 양평군 청운면 가현리에 걸었다. 김 의원의 주장은 사실관계가 맞지도 않았다.

토종벼 사업에 참여했던 농민들의 연령은 대부분 60~70대로 ‘좌파’로 몰아세우기엔 어딘가 어색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김 의원이 “연구소를 좌파로 지칭했지, 재배 농민을 좌파로 표현한 게 아니다”면서 한발짝 물러났고, 논란은 살짝 수그러들었다. 

문제는 6·1 지방선거 결과가 토종벼 사업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토종벼 사업을 이끌었던 정동균 군수가 패하고, 국민의힘 소속 전진선 전 양평군의회 의원이 당선됐다.

전진선 신임 군수는 지방선거 승리 이후 청운면 가현리 마을잔치를 방문해 농민들에게 “마음 편하게 토종벼를 재배하시라”고 밝혔지만, 이후 상황은 농민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언급했듯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토종작물 유전자원 보전·보급’ 사업도 축소됐다. 


토종벼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토종벼 수매 예산이 없어지면서 양평군은 올해 토종벼 수매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 양평군 관계자는 “지난해에 연구목적으로 사용할 쌀을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에 올해는 수매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농가의 자립을 돕기 위해 판매업체나 가공업체를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만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국 지자체 최초로 신설했던 토종자원 육성 전담기구(토종자원팀)도 사실상 축소됐다. 토종자원팀엔 지난해까지 총 8명의 공무원이 일했다. 그중 4명은 일반직, 시간제와 기간제 근로자가 각각 2명이었다.

이중 일반직 공무원 4명 가운데 2명(차석인 행정 7급 공무원과 지도직 공무원)이 지방선거 이후인 지난 7월 부서를 옮겼다. 시간제·일자리 공무원 4명은 올해 12월이면 계약이 끝난다. 담당 부서 팀장은 “조직이 축소된 이유를 (실무선에선)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양평군은 토종벼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군수 교체 후 사업이 축소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양평군은 토종벼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군수 교체 후 사업이 축소되고 있다.[사진=뉴시스]

 

당연히 농가를 위한 지원도 줄었다. 지난해에는 사업에 참여한 농가의 모내기와 수확을 도왔지만 올해부터는 일손을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농가로선 불편한 일이다. 모내기와 수확을 돕지 않으면 당장 품삯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서다.

양평군 관계자는 “지난해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군에서 토종벼를 함께 키운 것”이라며 “올해부턴 농민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키워봐야 한다는 취지로 농민이 스스로 농사를 짓는 건 당연한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때문인지 지난해 토종벼 사업에 참여한 양평군 12개 읍면 농가 14곳 중 8개 농가가 토종벼 사업을 하지 않겠다면서 빠져나갔다. 

사업에 참여한 한 농민은 “사업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사업을 진행하겠지만, 그 기간이 끝나면 탄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며 “가공센터·토종자원 클러스터 건립 사업이 흐지부지됐으니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지 않겠냐”고 토로했다. 양평군의 핵심사업으로 주목받았던 토종벼 사업이 단 1년 만에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사실 토종벼 연구 사업은 정부 차원에서 진행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양평군은 토종벼 복원이라는 어려운 사업에 뛰어들었고, 소기의 성과도 올렸다. 하지만 좌파 논란 끝에 사업은 사실상 중단될 위기에 몰렸다.

여기서 기인하는 피해는 군이 추진한 사업을 믿고 따랐던 농민들이 입을 공산이 크다. 토종벼를 둘러싼 정치싸움에 애먼 농심農心만 멍들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토종벼, 이제 누가 복원하고 육성할 텐가.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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