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열매 맺은 CEO 몰락기

젊은 창업자는 늘 주목받는다. 성공한 창업자라면 더욱 그렇다. 젊은 나이에 명예와 부를 손에 쥔 이들은 동경의 대상이다. 이들처럼 살기를 원하는 젊은이는 국내에도 많다. 하지만 이른 성공이 평생을 좌우하는 건 아니다. 젊은 창업가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경험부족, 오만과 편견이다.

▲ 그루폰 창업자 앤드류 메이슨은 20대 나이에 주목을 받았지만 최근 실적부진 등을 이유로 퇴진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청년실업률이 심각하다. 치열한 경쟁은 젊은이의 숨통을 조인다. 청년실업을 탈출하기 위해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도 늘어난다. 원래 창업을 하려고 했든 그렇지 않든 다르지 않은 게 있다. 십중팔구 잭팟을 꿈꾼다는 거다.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의 성공스토리를 보면서 대박꿈을 키운다.

젊을 때 도전해야 하고, 젊을 때만이 혁신을 꾀할 수 있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젊음은 힘이다. 젊을수록 창조적인 생각을 할 가능성도 크다. 그렇다고 젊음이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젊을수록 경험이 부족하고, 젊을수록 오만과 독선에 빠질 수 있다.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젊은 창업가일수록 뒤탈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크 주커버그(29) 페이스북 창업자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최근 소셜 검색 엔진 ‘그래프서치(Graph Search)’를 신규 론칭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검색기능을 공유하던 그가 ‘동지’ MS에게 경쟁의 칼을 들이댄 것이다. 주커버그는 왜 이런 결단을 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빈약한 수익모델로 고전 중인 페이스북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다.

주커버그, 빈약한 수익모델로 골머리

치과 의사 아버지와 정신과 의사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주커버그는 평탄한 삶을 살아왔다. 하버드대에 진학한 주커버그는 2004년 친구들끼리 연락처와 개인정보를 공유하는 페이스북을 만들었고 미국 대학 전역으로 서비스를 확대했다. 페이스북은 승승장구했고 주커버그는 타임지 선정 ‘2010년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기업공개(IPO) 이전인 2011년 월스트리트저널은 페이스북의 기업가치가 몇년 안에 1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2012년 5월 기업공개 후 페이스북의 공모가는 주당 38달러에 달했고 상장 첫날 42달러를 넘어서며 윌스트리트저널의 예측이 꿈만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그러나 IPO 5개월 만에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페이스북의 수익창출 능력에 의문이 제기돼서다. 현재 페이스북은 온라인 광고(비중 85%) 외에는 내세울 만한 수익모델이 별로 없다. 이른 나이에 세계적인 기업을 일군 데 따른 도취감 때문이었을까. 주커버그는 주도면밀한 수익구조 설계에 실패했다. 그의 미숙한 모습은 투자자들의 불평을 사고 있다.

기술책임자, 플랫폼 담당자, 마케팅 책임자 등 핵심인재들도 퇴직한 상태다. 한편에선 “페이스북이 위기를 벗어나려면 주커버그가 물러나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주커버그가 최근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는 것이다. 선물하기 기능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페이스북 기프트’ 서비스, 7달러를 내면 자신의 게시글이 타임라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노출되는 ‘프로모트’ 서비스를 선보이며 수익모델을 다각화하고 있다.

위기를 겪고 있지만 주커버그는 살아 있다. 하지만 주커버그와 비견되던 천재 에론 스워츠(26)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스워츠는 14세 때 RSS(Rich Site Summary•사이트 요약)를 만들어 세상에 보급한 컴퓨터 천재였다. RSS는 e-메일 목록처럼 헤드라인만 볼 수 있도록 하고 원할 경우 클릭을 통해 해당 페이지로 들어가게 만든 간편 서비스다. RSS개발 후 스워츠는 뉴스•정보사이트 ‘레딧’을 설립하고 인터넷 운동가로 변신했다.

이후 인터넷 검열에 맞서기 위해 온라인 활동모임 ‘디멘드 프로그레스’를 창설하며 미국의회와 한판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하버드 법대 학벌까지 갖춘 장래가 보장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며칠 전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목을 맨 흔적과 외상이 없는 점을 들어 뉴욕경찰은 그가 자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2011년 MIT 과학저널을 해킹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온라인 정보는 가감 없이 세상과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 탓인지도 모른다. 외신은 스워츠가 재판에서 유죄판정을 받을 경우 최고 30년 이상의 징역형과 벌금 수십억원을 물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런 압박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스워츠가 남긴 정보공유에 대한 메시지는 강렬하다. 국제 비영리 디지털 인권단체인 일렉트로닉 프론티어재단은 “호기심 많고, 머리 좋고, 아이디어가 많던 스와르츠는 인터넷의 협객처럼 공익을 위한 해킹에 앞장섰던 비상한 활동가였다”고 추모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할인쿠폰 소셜커머스업체 그루폰의 창립자인 앤드류 메이슨(32)의 입지도 좁아지고 있다. 미 경제전문방송 CNBC는 최근 최악의 CEO 중 한명으로 메이슨을 꼽았다. 2011년 11월 공모가를 20달러로 책정하며 IPO를 단행한 메이슨은 1년 만에 주가가 4달러 아래로 떨어지는 걸 멍하니 지켜봐야 했다. 한정된 사업모델이 매출부진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업초기 그루폰의 성장세는 눈부셨다. 2008년 시카고에서 출발한 그루폰은 서비스 시작 2년 만에 전세계 44개국, 500여개 도시에 진출했다. 기하급수적으로 매출액이 늘었음은 물론이다. 그루폰의 기업가치를 알아본 구글이 60억 달러에 인수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그루폰은 다른 업체 상품을 취급하면서 성장해야 하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많은 투자자가 메이슨에게 자체수익을 창출할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충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메이슨은 고집을 부렸다. 자체 시스템을 개발하는 대신 쿠폰 할인율을 낮추는 전략을 고수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메이슨은 패기와 창의력은 있지만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경험과 훈련된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른 성공, 독이 될 수도

20대의 나이에 중국 100대 부자에 올라 세상을 놀라게 했던 우잉(31) 번써그룹 전 회장도 몰락했다. 그

 

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15세의 나이로 미장원을 운영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어렵게 전문대를 마친 후 친지로부터 돈을 빌려 부동산 투자를 시작한 우잉은 2006년 중국 경제계 전면에 등장했다.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해 번써그룹을 세운 그는 호텔•백화점•유흥업소를 잇달아 인수하며 영역을 확장했다. 그의 자산규모는 360억 위안(6조1200억원)에 달했다. 중국의 한 리서치그룹이 선정한 ‘중국 100대 갑부’ 중 68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부를 늘리지 않았다. 윗돌을 빼 아랫돌을 괴는 방식으로 자산규모를 부풀렸다. 그에게 돈을 맡긴 투자자들이 불만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우잉은 부와 명성을 쌓고 있지만 자신들은 약속한 수익금마저 배당받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투자자들의 고소로 중국 사정당국이 조사에 나선 결과, 그의 천문학적인 금융사기가 공개됐다.

우잉은 중국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형집행을 기다리는 중이다. 우잉의 변호사는 “사업을 위해 돈을 빌렸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변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경제사범에게 사형집행은 과도하다”는 여론이 일면서 그의 형 집행이 유예되고 있다는 점이다. 설익은 억만장자의 슬픈 최후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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