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파트1] 목차로 경제 트렌드 읽다

▲ 서점에 주류경제학이 아닌 행동경제학에 기초한 경제 관련 책들이 많아졌다.
목차를 보면 책의 줄거리를 어림잡을 수 있다. 경제서적의 목차를 보면 경제트렌드가 읽힌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그 틈새를 새로운 경제학 ‘행태주의’가 파고들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경제서적도 ‘행태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The Scoop가 목차경제학을 살펴봤다.

경제학을 보는 관점이 바뀌고 있다. 서점에 자주 가는 사람이라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이전과는 뭔가 다른 관점에서 경제를 조명하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다. 개인적인 느낌만은 아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경제 관련 신간도서의 배치를 담당하는 직원은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다”며 “행동경제학에 바탕을 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예전 자기계발서는 ‘무조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주로 다뤘다면 요즘엔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마케팅 전략을 다루는 책 대부분은 행동경제학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 관계자는 “최근 들어 주류경제학을 다룬 경제서적보다는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밝혔다.

10년 새 경제관련 책 트렌드 달라져

주류경제학 ·행동경제학 등 어려운 경제용어를 싹 빼고 보면 이렇다. 기존 경제학의 철학은 ‘인간은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다르다. ‘인간이 언제나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고 지적한다. 인간을 판단하는 전제가 완전히 다르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주류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가만히 놔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방임, 자유경쟁, 세계화, 규제완화, 정부역할 축소,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신자유주의 기본철학으로 이어진다. 행동경제학은 때론 비합리적인 인간을 다루기 위해선 조정자 역할이 필요하다는 걸 역설한다. 당연히 정부개입 이야기가 나오고, 신자유주의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주목할 점은 서점에 행동경제학을 다루는 책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가 힘을 잃고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실제로 베스트셀러 경제서적과 그 책의 목차만 봐도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음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꼭 10년 전인 2003년 경제경영서 베스트셀러 1위는 「한국의 부자들」이다. 목차엔 ‘부자 마인드’ ‘부자 노하우’ ‘부자의 재산운용’ 등 소득 1%에 진입하기 위한 방법론이 요약돼 있다. 그해 말 출간된 「아침형 인간」은 당시 트렌드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2003년엔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가 화제를 일으키던 때다. 그들이 ‘나는 4시간만 자며 공부했다’‘ 3시간만 자고 일했다’고 말하자 자기관리 열풍이 불었다. 이 열풍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이 바로 「아침형 인간」으로,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담고 있다. 역시 신자유주의를 밑에 깔고 있다.

당시 출간된 경제전망서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읽힌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의 저서 「단절의 시대」는 다가오는 지식사회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짚고 있다. 목차에는 ‘개인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국제경제에서 글로벌경제로’ ‘가난한 국가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이 등장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필요한 시장원리의 적용론을 설파하고 있다.

이외에도 「부의 혁명」 「경제발전론」 「기업과 정부(자유주의 시리즈)」 등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도서들이 2000년대 초반에 출간됐다.

그럼 최근에 나온 경제 관련 서적을 보자. 지난해 경제경영서 베스트셀러 1위는 「스티브 잡스」다. 혁신 CEO로 붐을 일으킨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의 평전이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곤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견해가 실린 서적이 베스트셀러의 상위를 차지했다.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의 목차에는 ‘공정한 거래’ ‘그들이 잘 살아야 우리가 성공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 ‘윤리적인 상품’ 등 키워드가 포함돼 있다. 분배를 강조한 것이다.

행동경제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 3위를 차지했다. 2002년 노벨상을 수상한 학자의 책이 출간되는 데 10년이 걸렸다는 건 국내 경제 트렌드가 외국에 비해 얼마나 뒤처지는지 잘 보여준다.

「운명을 바꾸는 10년 통장」이라는 책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강조한 ‘투자’를 그만두라고 강조한다. ‘올바른 저축’이 해법이라는 거다. 이외에도 「앞으로 10년 돈의 배반이 시작된다」 「문제는 경제다」 등도 10위권 내에 자리 잡았다. 10위권 중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 서적은 「보스의 탄생」 밖에 없었다. 「한국의 슈퍼리치」 「10년 후 세상」 「나무 부자들」 「장사의 신」 등 부자를 조명한 경제서적과 자유경쟁을 부추기는 책은 모두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준구 서울대(경제학) 교수는 “지금까지는 전경련이나 대한상의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같은 경제서적이 더 많았다”며 “신자유주의의 ‘시장은 만능’이라는 주장이 틀렸다는 게 확실해지면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행동경제학이 조명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조원희 국민대(경제학) 교수는 “신자유주의에서 말하는 경쟁을 해보니 자유경쟁은 해답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라며 “요즘은 주류경제학의 이론을 믿지 않는 대학생이 많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특히 “신자유주의는 역할이 작아야 효율적인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붕괴를 막는 형국을 만들어냈다”며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시장에 풀어 경제를 떠받친다는 건 어떤 경제학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행동경제학은 미래경제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두 교수 모두 “새로운 대안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준구 교수는 “행동경제학은 심리학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 수치로 증명하기 어렵다”며 “이론적 골격이 약해 경제학이 될 수 없고 금과옥조로 여겨졌던 전통적인 경제학적 이론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는 역할만 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조 교수는 “행동경제학은 신자유주의 붕괴 이후 대안이 없는 혼란한 상황에서 나온 하나의 모델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조 교수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주류경제학 잡은 행동경제학, 대안은 글쎄

“사람은 벼랑 끝에 몰리기 전까지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결정을 하지 않는다. 그 전까지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게 마련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신자유주의의 해체보다는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보수적 경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로 인해 더욱 골병이 들어간다는 것쯤은 누구든지 알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벼랑 끝에 몰렸을 때를 대비해 각종 대안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공론화해야 한다.” 행동경제학을 경제이론으로 정립하기는 어렵더라도 활용가치는 있다는 얘기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2010년 명사들의 강연장인 TED에 참석해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을 정리한 로버트 케네디의 아름다운 꿈은 오늘날 더욱 쉽게 실현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정보기술과 행동경제학을 이용할 것을 밝힌 바 있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오바마 정부에서 규제업무를 담당한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각종 공공정책에 행동경제학을 접목했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의 보수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말하는 것도 주류경제학의 붕괴와 맞물려 있다”며 “지금을 신자유주의 체제를 바꾸는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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