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Edition 파트1]스마트시대 설 풍속도

누구나 자기가 살아온 세월만큼 설날의 추억을 갖고 있다. 10시간을 달려 고향에 가고, 가족이 둘러앉아 분주하게 음식을 만드는 모습은 설날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다. 스마트폰 가입자 3000만 시대, 설날 풍경이 변하고 있다. 모바일 연하장을 보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설 인사 글을 올린다. 달라진 설날 풍속도를 되돌아봤다.

▲ 스마트시대가 도래하면서 설날 인사를 주고받은 풍경이 변하고 있다.
#올해 50번째 설날을 맞은 김용식(가명ㆍ50)씨. 그에겐 설음식의 추억이 있다. 설이 다가오면 동네 방앗간에선 떡 뽑는 소리가 밤새도록 이어졌다. 어머니는 잘 말린 가래떡을 송송 썰어 떡국 끓일 준비를 했다. 온종일 사골을 고아 뽀얗게 국물을 내고, 예쁘게 빚은 만두를 넣었다. 그 위에 김을 뿌리면 떡국이 완성됐다.

설음식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부침개다. 기름내가 솔솔 풍기면 식구가 하나 둘 부엌으로 몰려들었다. 전을 부치는 어머니 옆에 앉아 하나씩 집어먹으면 그렇게 맛날 수가 없었다. 찹쌀 반죽을 기름에 튀겨 조청을 묻힌 강정은 김씨가 가장 좋아하는 설음식. 입안에서 살살 녹는 강정을 먹을 때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설날 주전부리로 빠지지 않는 콩고물 잔뜩 묻힌 인절미도 좋아했다. 김씨는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주문만 하면 차례상을 차려준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이 설날 풍속 바꿔

# 전통의상을 공부한 정인영(가명ㆍ47)씨에게 한복은 각별하다. 새해 아침이면 설빔을 입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다. 정씨는 어렸을 때부터 한복을 좋아했다. 알록달록한 색동저고리를 입으면 부잣집 아가씨가 된 듯 의기양양해졌다. 하지만 빠듯한 살림에 5남매 중 첫째였던 정씨에게 설빔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설날이면 한복을 입혔다. 설빔을 입은 정씨는 동생 손을 이끌고 동네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렸다. 친구들에게 새 옷 자랑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날은 설빔을 뽐내는 아이들로 동네가 시끌시끌했다. 그 시절엔 설날에 설빔을 입는 게 기쁨이고 즐거움이었다.

# 시골에서 자란 이강훈(가명ㆍ31)씨는 설날 아침이면 어른이 건넨 덕담을 기억한다. “강훈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건강해라.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어른에게 덕담 듣는 게 일이었던 그도 이젠 조카를 챙겨줄 나이가 됐다. 덕담만큼이나 인상 깊은 건 제사다. 이씨가 제사를 추억하는 건 독특한 가풍 때문이다.

집안의 어르신은 제사를 지낼 때마다 편지를 썼다. 선조에게 안부를 묻는 거였다. 한자로 된 축문을 한글로 풀어서 썼는데, 내용은 이랬다.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서 음식과 술을 올립니다. 편안하게 계시다 가세요.” 누군지도 모르고 절만 해왔던 이씨는 편지에 귀를 기울이면서 사진의 주인공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해했다. 그는 “고인에게 인사를 하는 건 의미있는 일이란 걸 그때 알았다”고 말했다.

 
설날이 돌아왔다. 설날이면 설빔을 차려입고 인사를 했다. 식구가 한상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어른은 복주머니에 빳빳한 세뱃돈을 넣어줬다. 훈훈한 덕담 한마디를 하는 것은 설날 고유의 풍경이었다. 시대가 변했고, 설날도 변했다. SNS으로 새해 안부를 전하고, 기프트콘을 전송한다. 설 선물을 주고받는 새로운 방법이다. 스마트폰이 바꾼 설날 풍속도다.

스마트폰은 생활의 본질을 바꿨다. 설날을 맞아 오랜만에 친척과 만났지만 집안 분위기는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세뱃돈을 받고 신난 어린 조카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장난치느라 시끌벅적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세뱃돈을 받고 좋아하는 건 잠시다. 이내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 빠져든다. 간간히 큰소리가 난다. 중학생 오빠와 초등학생 여동생이 서로 부모의 스마트폰으로 게임하겠다고 싸워서다.

어른도 예외는 아니다. 차례를 지내고 거실에 모였지만 조용하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반가울 법도 한데 대화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각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들여다보느라 대화가 줄어든 것이다.

LG유플러스에 따르면 2011년 설 연휴 데이터 통신량은 2010년보다 300% 증가했다. 가족과 모인 자리에서 SNS나 인터넷을 한 결과다. 쉬는 날이라는 이유로 눈치 보지 않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빠져든 것이다.

 
스마트 시대는 설날의 일상적인 풍경도 바꿔놨다. 명절 연휴기간이면 시청률이 반등했던 TV는 외면당하고 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서가 아니다. 스마트폰 때문이다. 지난해 방송사의 설 연휴 기간 방송된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전반적으로 하락했다. AGB닉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KBS2 주말 연속극 ‘오작교 형제들’ 50회는 시청률 25.7%로 연휴 전에 방송된 49회(27.0%) 보다 1.3%포인트 떨어졌고, 예능 프로그램 ‘개그콘서트’ 629회는 18.7%로 628회(22.0%)보다 3.3%포인트 하락했다. 작은 화면의 스마트폰에 TV가 고개를 숙인 것이다.

스마트폰의 원동력은 통신기술이다. 통신기술이 발전해온 만큼 새해 인사 방식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연하장 대신 스마트폰으로 인사를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PCS폰의 등장과 함께 설날 인사는 문자로 대체됐다. 이모티콘을 넣은 단문메시지(SMS)가 그것이다. 이 흐름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카메라폰이다. 2000년 삼성전자는 국내 최초로 카메라폰을 출시했는데, 슬로건은 ‘바로 찍어서 보낸다’였다. 이 슬로건은 설날 인사에 그대로 적용됐다. 사진이나 영상을 첨부파일한 장문메시지(MMS)가 사람들에게 신선한 반응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영상통화 휴대전화가 등장한 후에는 서로 얼굴을 보며 안부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직장인 70% 모바일 연하장 보내

설날 인사의 패러다임이 획기적으로 바뀐 건 2009년이다. 스마트폰 열풍이 불면서다. 스마트폰•QR코드(이차원 바코드)를 활용한 모바일 연하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 2011년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종이 연하장의 발송이 줄어드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 스마트시대의 설날은 간소화되고 지능화되고 있다.
직장인 390명에게 신년카드ㆍ연하장을 어떤 형태로 발송했냐는 물음에 응답자 10명 중 3명만 ‘종이 연하장과 문자메시지로 보냈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67.1%는 모바일ㆍ온라인 메시지나 모바일 연하장을 보냈다. 종이 연하장의 발송이 줄어든 반면 모바일 연하장의 발송은 가파르게 늘어난 셈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과 서비스를 이용해 새해 인사를 전하는 일은 이제 익숙하다. 설 인사를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리면 모두에게 뜬다. 일일이 문자메시지를 보낼 필요도 없다.

현금을 인출해 세뱃돈을 주는 대신 스마트폰을 이용해 모바일 상품권을 선물하는 것도 스마트시대의 설날 풍속이다. 스마트폰 가입자 3000만명 시대, 스마트시대의 설날은 간소화되고 지능화되고 있다. 그러나 ‘정’이 사라진 건 아쉽다. 늘 그렇지만 디지털보단 아날로그가 정감이 가지 않는가.
김건희 기자 kkh4792l@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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