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3] 기업어음의 유혹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 기업어음(CP) 발행기업의 80%는 투기등급에 속해 있었다. CP를 발행할 때 기업사정을 상세히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문제는 투자자 보호다. 기업이 망하면 투자자는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어서다.

▲ LIG건설 CP 부당발행 의혹을 받고 있는 구본엽 LIG건설 부사장이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유력 건설업체 LIG건설의 명성에 흠집이 났다. LIG건설은 지난해 3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구자원 LIG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는 재판을 받고 있다. LIG건설 기업어음(CP)을 사들인 개인투자자들은 손해배상소송을 진행 중이다. LIG가 벼랑에 몰린 이유는 뭘까. CP 때문이다.

CP란 기업이 단기간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어음이다. 담보나 보증없이 해당기업의 신용만으로 발행이 가능하다. 만기는 3개월로 회사채(3년 이상)보다 짧다. 이런 이유로 기업이 신속하게 자금을 조달해야 할 때 주로 CP를 발행한다. 최근 들어 기업의 CP발행이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CP발행 잔액(미상환 잔량)은 2010년 73조원에서 2011년 89조원으로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100조원을 넘어섰다.

CP는 투자자 입장에선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발행내역에 대한 정보가 전혀 공개되지 않아 리스크가 크다. CP를 발행한 기업의 재무상태가 더욱 악화돼 부도가 난다면 투자자들은 큰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LIG건설이나 웅진의 사례처럼 말이다.

 
문제는 CP의 부족한 투명성이다. CP는 공시의무가 없다. 회사채처럼 발행기업의 재무상태를 체크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 CP발행 기업의 약 80%(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기준)는 투기등급으로 분류된다.

투자 적격등급에 속하는 기업이 발행하는 CP는 15% 안팎에 불과하다. 그만큼 신용이 취약한 기업이 CP를 발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신용평가사의 기업 신용등급도 공신력이 떨어져 투자자의 CP 매입 기준을 정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CP발행 정보를 투자자에게 투명하게 공급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회사채•CP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리스크는 투자자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것은 CP의 가장 큰 문제이지만 이는 개선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다”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불투명한 시장은 투자자가 외면하고 그 시장은 성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최근 전자단기사채제도를 시행했다. 투자자의 리스크가 적지 않은 CP발행을 줄이고 전자단기사채를 유도한다는 취지였다. 한국예탁결제원 전자증권추진단 단기사채팀 관계자는 “전자단기사채는 CP에 비해 투명성이 높고, 발행처리는 회사채보다 간편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부정보를 밝히기 꺼리는 기업들이 CP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 금융전문가는 “기업들이 유동성이 부족해 CP를 찍는다는 사실을 시장에 알리겠는가”라며 “투자자는 단기 고수익을 원하고, 기업은 조용히 자금난을 해소하고 싶어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CP시장은 사라지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그래서 투자자 보호 강화 차원에서 은행이 CP 만기시 유동성을 공급하는 대기신용한도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또 증권회사 등 CP를 중개하는 회사가 투자자 피해의 일정비율을 보상하는 부분보증제도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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