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지에 오른 검객 찰나의 순간 벤다
경지에 오른 검객 찰나의 순간 벤다
  • 유두진ㆍ김미선ㆍ김건희 기자
  • 호수 30
  • 승인 2013.02.15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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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神 3人‘신의 한수’

결단의 승부사는 칼 뺄 때를 안다. 검객은 찰나의 순간 벤다. 상황을 읽는 통찰력,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3인이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항공 명예회장,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주, 인드라 누이 펩시콜라 회장이다. 그들은 단 ‘한수’ 만으로 시장 판도를 흔들었다.

▲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항공(JAL) 회장은 철저한 독립채산관리 시스템인 '아베마 경영'으로 침몰해가는 JAL을 일으켜 세웠다.
2012년 9월 19일 일본항공(JAL)이 도쿄주식시장에 재상장됐다. 상장폐지된 지 2년7개월만이었다. JAL의 기업공개(IPO) 당시 모인 금액은 6630억엔(약 8조원). 2012년 상장된 회사 가운데 페이스북에 이어 세계 두번째 규모였다. 폐허가 되다시피한 JAL제국이 화려하게 부활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엔 불세출의 기업인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신의 한수’가 있었다.

2009년 말 JAL은 파산 위기에 몰렸다. 이전까지만 해도 JAL은 항공기 280여대를 보유하고, 전 세계 335개 지역노선을 운영하던 글로벌 톱클래스 항공사였다. 그러나 2008년 터진 리먼사태에 따른 세계경기침체와 연료비 상승, 그리고 그룹 전반에 깔려 있는 관료주의를 넘어서지 못했다.

아베마 경영으로 관료주의 무너뜨려

2010년 초 JAL은 주당 1엔이라는 굴욕적인 종가로 상장폐지됐다. JAL에게 남은 것은 약 2조3000억엔(27조6000억원)에 달하는 빚뿐이었다. “JAL 그룹은 회생불능”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시장에 나돌았다.

일본정부는 자국기업의 상징인 JAL을 포기할 수 없었다. 침몰하는 JAL호를 구원할 선장으로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당시)에게 SOS를 쳤다. 그는 세계적 전자기업 교세라와 일본 2위 통신회사 KDDI를 일군 경영의 귀재였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나모리 회장의 가족은 JAL 회장 취임을 결사반대했다. 겉으론 건강문제를 내세웠지만 자칫 실패할 경우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나모리 회장은 ‘마지막으로 국가에 봉사할 기회’라면서 JAL 회장직 제안을 받아들였다.

2010년 2월 JAL호의 선장에 취임한 그는 신의 한수를 던졌다. ‘아베마 경영’이었다. 조직을 평균 6~7인의 소집단으로 쪼개 그룹별로 경쟁하게 만든 것이다. 공무원 조직처럼 변해버린 JAL에 ‘혁신 DNA’를 주입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이나모리 회장의 한수는 놀라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독립채산시스템 도입으로 소집단 간 사내 경쟁이 불붙었고, 효율성 강화로 이어졌다. 이나모리 회장의 ‘솔선수범’ 경영도 한몫을 톡톡히 했다. 그는 4만9000명에 달하는 종업원을 1년 만에 줄이고 직원급여도 평균 20% 삭감했다. 그 역시 무보수 경영을 펼쳤다. “많은 사람을 해고해야 하는 내가 어떻게 월급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아베마 경영이 알찬 열매를 맺기 시작하자 채권단은 JAL의 숨통을 터줬다. 은행권은 5200억엔에 달하는 대출금을 탕감해 줬다. 일본정부는 ‘법인세 7년 면제’라는 카드를 내놨다. JAL 부활작업에 날개가 달렸고, 단 14개월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JAL은 2011년 4월~2012년 3월의 회계 기준에서 사상 최대인 2049억엔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이나모리 회장의 ‘신의 한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한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간단한 말이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특히 CEO는 그렇다. 수많은 변수 때문에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순간의 선택이 잘못되면 회사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결단의 승부사는 ‘칼 뺄 때’를 안다. 경영환경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직감이 있는 CEO는 ‘한수’ 만으로 전세를 역전시킨다. 이런 CEO를 우리는 ‘경영의 신’이라고 부르고, 이들의 결단을 ‘신의 한수’라고 한다. 아마존을 세계 최대 쇼핑몰로 키운 제프 베조스도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베조스는 머리가 좋고 돈을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투자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1500억 달러가 넘는 자산관리 업무에 활용한 것이다. 능력을 인정받아 28살의 나이로 뉴욕 월스트리트 투자회사 D.E.쇼&컴퍼니의 수석부사장에 올랐다. 최연소 임원이었다. 이를 계기로 베조스가 전자상거래의 잠재력을 알게 됐다.

1991년 베조스는 여느 때와 같이 인터넷으로 기사를 읽고 있었다. 세계적인 인터넷망 월드와이드웹을 이용하는 네티즌이 매달 200~300%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전자상거래 시장은 매년 2400%씩 성장하고 있었다. 인터넷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모이고 있다는 얘기였다. 순간 그의 머릿속을 아이디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인터넷에 물건을 파는 사이트를 만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책상을 탁 내리쳤다. “그래, 바로 이거야!”

베조스는 인터넷에서 판매할 만한 상품목록을 작성했다. 20가지를 선정했다. 그중 서적•CD•비디오•컴퓨터 하드웨어ㆍ소프트웨어 5가지로 추렸다. 시장의 규모와 보관ㆍ운반이 쉬워야 했고, 고객이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데 부담되지 않는 가격이어야 했다. 고민 끝에 책을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베조스는 D.E.쇼&컴퍼니 사장에게 인터넷에서 책을 팔자고 제안했다. 반응은 냉담했다. 현실적이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주변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는 자신이 존경하는 상사를 찾아갔다.

상사가 말했다. “참 멋진 아이디어야. 그런데 직업이 없는 사람의 아이디어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베조스는 48시간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연봉 100만 달러(10억8700만원) 직장을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후회할 게 뻔했다. 이참에 자신이 가진 사업 수완과 재능을 활용해 회사를 성공적으로 운영해보고 싶었다.

 
기사 한줄이 바꿔놓은 운명

방향을 정한 그는 행동을 시작했다. 아내와 애완견을 데리고 서부로 향했다. 미국 땅을 반쯤 가로질렀을 즈음 서적 유통업체 잉그램이 있는 시애틀에 도착했다. 1994년 2월, 회사 이름을 아마존닷컴이라고 지었다. 세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아마존강처럼 인터넷에서 가장 큰 업체가 되겠다는 의미였다. 아마존은 미국 시애틀 임대주택 차고에서 창업했다. 중고가구를 고쳐서 만든 책상이 집기의 전부였다.

하지만 아마존은 1년 만에 전자상거래를 주도하는 업체가 됐다. 지금은 태블릿PC를 놓고 애플과 경쟁하고, 클라우딩 서비스 시장에서 구글을 상대한다. 월마트와는 소매유통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영원한 맞수 이베이와는 전자상거래 라이벌이다. 매출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아마존의 최근 3년(2009~2011년) 연평균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31%, 53% 증가했다. 업계 평균이 3%라는 점을 감안하면 눈부신 성과다. 아마존이 닷컴기업의 교과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은 베조스의 영민함 덕분이다.

기회는 새로운 트렌드를 타고 온다. 베조스는 기사를 읽으면서 두가지 변화상을 포착했다. 인터넷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 될 것이라는 사실 하나, 그 공간에서 물건을 판매할 수 있다는 사실 둘이었다. 이처럼 자신에게 온 순간을 냉철한 통찰력으로 놓치지 않을 때 경영의 신은 탄생한다. 대표적인 탄산음료업체였던 펩시를 ‘웰빙음료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인드라 누이 CEO도 예리학 통찰력으로 시장의 판도를 바꿔놨다.

예리한 통찰력으로 주력사업 접어

2005년 음료업계를 관통한 말이 있다. ‘펩시의 반란’이다. 불가능해보였던 코카콜라의 아성을 펩시가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그해 펩시는 시가총액에서 코카콜라를 따돌리고 글로벌 음료업계 1위에 올랐다. 펩시가 코카콜라의 철옹성을 뚫을 수 있었던 비결은 펩시 회장이자 CEO인 인드라 누이의 탁월한 결단이다.

 
코카콜라가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던 1996년으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인드라 누이는 펩시에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짜 CEO였다. 펩시의 영향력은 코카콜라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코카콜라 CEO였던 로베르토 고이에타주는 이런 말까지 했다. “펩시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를 못 느낀다.”

그럴 법도 했다. 당시 코카콜라는 미국에서 시장점유율 42%를 기록하면서 펩시(31%)를 10%포인트 이상 앞지르고 있었다. 미국 언론들도 “100년 콜라전쟁에서 코크가 펩시를 이겼다”며 코카콜라의 손을 들어줬다. 펩시는 1898년 설립 이후 100년이 넘도록 12년 먼저 시장에 뛰어든 코카콜라를 단 한 번도 넘어본 적이 없었다. 코카콜라의 이같은 발언은 만년 2위 펩시의 자존심을 구겨 놨다.

 
펩시 관계자들은 이런 분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펩시는 음료기업이 아니라 종합 외식브랜드 기업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펩시는 당시 자회사로 타코벨ㆍ피자헛ㆍKFC를 거느리고 있었다. 수익성은 물론 전망도 밝았다.

인드라 누이의 생각은 달랐다. 피자헛ㆍKFC 등 외식브랜드를 잘라내지 않으면 코카콜라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웰빙 콘셉트로 무장하지 않으면 영원히 ‘2인자’ 자리에 머무를 것으로 판단했다.

인드라 누이는 ‘신의 한수’를 준비했다. 과감하게 피자헛과 KFC 등 외식브랜드를 매각했다. 여기서 마련한 매각자금으로 과일주스 전문기업 트로피카나(1998), 게토레이로 유명한 퀘이커오츠(2001)를 M&A했다. 펩시의 사업포트폴리오를 ‘웰빙’에 맞추기 위한 포석이었다.

한순간의 선택은 통했다. 펩시의 실적은 2000년 이후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 펩시의 매출은 전년보다 72%, 순이익은 두배 이상 늘어났다. 2005년엔 시가총액에서 코카콜라를 따돌리고 업계 1위에 올랐다.

 
펩시는 2009년 이후 미국지역에서 식음료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글로벌 불황이 시작된 2008년 이후에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음료사업부문의 수익은 전년비 3% 늘어났다.

주목할 점은 웰빙 콘셉트를 내세운 펩시의 성장가능성이 코카콜라를 압도한다는 것이다. 탄산음료가 건강을 해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는 최근 “탄산음료의 시대는 끝났나?(Is This the End of the Soft-Drink Era?)”라는 주제로 탄산음료 시장의 위기를 심층 보도했다.

하지만 펩시는 이러 위기를 가뿐하게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코카콜라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과일주스업체와 시리얼 제로업체를 M&A하면서 일찌감치 탄산음료 전문기업 이미지를 탈피했기 때문이다. 인드라 누이의 ‘한순간의 선택’이 펩시의 평생을 좌우하고 있다.
유두진ㆍ김미선ㆍ김건희 기자 ydj123@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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