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 엔저를 느끼다

엔저시대가 본격화하면서 명동은 썰렁해졌다. 일본인 관광객이 부쩍 줄어들어서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떨까. 한국인 관광객이 넘쳐나지 않을까. The Scoop가 일본 오사카大阪를 현지취재했다. 숙소는 예약조차 하기 힘들었고, 관광지엔 한국인 관광객이 넘쳐났다. 특히 일본의 중고명품시장은 엔저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아베 정권이 출범한지 두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효과는 벌써부터 가시적이다. 일단 아베정권의 양적완화 정책은 엔화가치를 무차별적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지난해 6월 4일 100엔당 원화가치는 1514.80원이었다.

 
그로부터 8개월이 흐른 올 2월 4일 100엔당 원화가치는 1160.22원이다. 무려 354.6원, 23.4%나 떨어진 수치다. 1인분에 1000엔 하는 오코노미야키를 먹는다고 치자. 예전 같으면 1만5000원이 넘던 것을 지금은 1만2000원도 채 되지 않는 가격에 먹을 수 있다. 숙박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1박에 15만원이 넘는 숙소를 지금은 12만원 이하의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아베 정권 출범 이후 가속화되는 엔저시대는 한일 양국 관광객의 발걸음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줄어드는 반면 일본으로 나가는 한국인 관광객은 되레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전체 관광객의 약 30%를 차지하던 일본인 관광객은 수개월 전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초부터 8월까지 늘어나다가 9월 마이너스를 찍은 후 감소폭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달 일본인 관광객수는 22만7227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 줄었다. 반대로 일본으로 떠나는 한국인은 꾸준히 늘고 있다.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한국인의 일본입국객수는 전년 대비 37%, 12월 한달에는 41.2%나 늘었다.

엔저열풍이 분 이후 일본열도는 어떻게 변했을까. 한국인 관광객에 일본 관광업체가 어깨춤을 들썩거리고 있진 않을까. The Scoop가 일본 현지 취재를 기획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설 연휴 일주일 전, The Scoop는 취재장소를 오사카로 정했다. 거리가 가까운데다 국내인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기 때문이다. 볼거리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 일본의 옛 수도 교토京都가 30분 거리에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출발 3일 전인 2월 4일 오사카에서 묵을만한 숙소를 알아봤다. 그런데 웬걸, ‘만실’이라는 메시지만 돌아왔다. 오사카 지역 최고 번화가이자 교통 요지인 ‘난바難波’와 ‘신사이바시心斎橋’ 지역의 숙소는 씨가 아예 말랐다. 한인민박집을 급하게 수소문했지만 ‘만실된 지 한달 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답이 돌아왔다. 그나마 남은 숙소는 일본 현지인이 집에 돌아가지 못했을 때 간편하게 이용한다는 ‘캡슐호텔’ 두곳 정도였다.

난바에서 다소 떨어진 텐노지天王寺•우메다梅田 지역의 숙소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한인민박은 물론 중저가 호텔 모두 만실이다. 오사카에서 가장 큰 한인 민박집 코니텔 관계자는 “설 연휴기간은 성수기라서 금방 마감된다”며 “하지만 이번에는 예전보다 예약이 더 빨리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2월에는 예약가능한 날이 하루 이틀 정도밖에 없다”며 “엔화가치까지 떨어지고 있는 올해엔 비수기에도 예약이 빨리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2월 7일 오후 3시. 인천국제공항에서 오사카행 비행기를 탔다. 1시간40분의 비행 끝에 4시 40분 간사이국제공항関西国際空港으로 도착했다. 간사이공항에선 오사카 주변 도시로 쉽게 갈 수 있다. 일본 지하철인 난카이선南海線을 타면 오사카의 중심부인 난바로 간다. JR철도를 이용하면 교토역으로 바로 갈 수 있다. 한국인 관광객은 대부분 간사이공항에서 오사카로 바로 가지만 숙소를 오사카에서 조금 떨어진 교토에 잡은 탓에 JR 철도의 특급열차 ‘하루카’를 탔다.

정치적 문제로 중국인 관광객은 급감

 
하루카에 탑승해 짐을 옮기는 데 한 일본인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친절하면 일본? 정말 그런가 보다. 오사카에 있는 글로벌 기업에서 일한다는 도시 사토씨는 영어실력이 출중해 말이 잘 통했다. 더구나 한국에 몇번 방문한 적이 있단다. 뜻밖에도 독도 이야기가 나왔다.

기자: “독도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는 일본인이 많은가.”
사토: “별로 그렇지 않다. 대다수 한국인은 독도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인 중에선 20% 정도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뜻밖이다. 정말이냐고 물었다. 사토씨는 “일본인은 독도분쟁 같은 정치문제보다는 경제현안에 더 민감하다”면서 말을 이었다. 장기불황에 허덕이는 일본의 현주소가 읽혔다. “최근 소니ㆍ파나소닉 같은 일본 전자기업은 삼성전자 같은 한국기업 때문에 위협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일본기업과) 비슷한 품질의 휴대전화나 가전제품을 저렴하게 내놓을 뿐만 아니라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기 때문이다.”

어느덧 교토역. 시계침이 오후 8시30분을 가리킨다. 교토역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역사 안에서 헤매고 있는데, 또 다른 일본인 한명이 다가왔다. 교토역에서 유지•보수업무를 보고 있는 마사노부씨다. 그는 최근 또 다른 업무를 받았다고 했다. 그게 뭐냐고 물었다.

마사노부: “하루카를 타고 오는 한국인에게 길을 안내하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긴 많은가 보다. 오죽하면 유지ㆍ보수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한국인 관광객 안내 역할을 맡았을까.

기자: “한국인 관광객이 최근 많이 늘었는가.”

마사노부: “요즘 교토역에서는 대만•홍콩인보다 한국인 관광객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오후 10시. 교토 숙소에 도착했다. 마사노부씨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일본에 도착하기 전 작성한 취재수첩을 꺼냈다. 김영록티엔티 투어 대표의 말이 적혀 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크게 줄어들었던 관광객수가 최근 들어 회복세로 돌아섰다. 여기에 엔저현상까지 맞물리면서 그 수가 더욱 증가했다. 특히 대지진 피해가 적었던 일본 남부 지방의 규슈九州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일본 관광의 회복속도가 가파르다.” 과연 그럴까.

다음날 오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교토의 기요미즈데라淸水寺로 가는 오르막길. “여기가 멋있어! 얼른 사진 찍어.” 익숙한 말이 들린다. 과장 조금 섞어 물 반 한국인 반이다. 교토뿐만이 아니다. 오사카의 대표 관광지 오사카성大阪城에도 한국인 관광객이 넘쳐난다. 눈대중으로 보니 관광객 중 30% 이상이 한국인이다. 오사카성 매표소 직원은 “중국 관광객들은 많이 줄어든 반면 한국인 관광객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오사카 여행을 하는 대부분의 한국인은 쇼핑을 즐긴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품목은 국내에 비해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일본 식료품과 화장품이다. 유명 베이커리 숍 등지에서 케이크를 찾는 이도 많다. 이런 이유로 난바역에서 미도스지선御堂筋線 지하철을 타고 10분 정도 가면 나오는 한큐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을 찾았다.

오사카 명물로 꼽히는 디저트 ‘도지마롤’을 한국인이 좋아한다는 정보를 입수해서다. 우메다역 근처의 본점에서 도지마롤을 사려면 최소 30분 이상 줄을 서야 한다는 말에 한큐백화점에 있는 분점으로 향했다. 도지마롤은 최고급 우유로 만든 생크림이 듬뿍 들어간 롤케이크다.

도지마롤을 판매하는 몽쉐르 베이커리. 실제로 도지마롤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중 적게 잡아도 3분의 1은 한국인이다. “오사카에 다녀온 친구가 그러는데 천상의 케이크래. 3개 사가자” “아니야, 다 못 먹을지도 몰라 하나만 사가자”는 한국말이 귀를 때린다. 도지마롤의 개당 가격은 하나당 1200엔. 세금까지 더하면 정확하게 1260엔이다. 2월 8일 100엔당 원화 환율 1178.09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만5000원 정도인데도 불티나게 팔린다. 판매 직원 마키는 “한국 고객이 갈수록 늘어나는 게 사실”이라며 “가끔은 일찍 동나 구매를 못하고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오사카의 명동’으로 불리는 난바역 근처의 도톤보리에도 한국인 관광객이 득실댔다. 식료품부터 화장품ㆍ명품까지 총 4만점의 물품을 취급하는 할인쇼핑몰 돈키호테에는 특히 많았다.

식료품이 진열된 돈키호테 1층 매장.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려오는 데 이곳이 일본인지 한국인지 구분조차 하기 어렵다. “이거 내가 편의점에서 2500원에 사먹었던 건데 1000원 정도밖에 안 해” “녹차맛 초콜릿이 제일 맛있대. 이것만 노려” 곳곳에서 한국인 특유의 구매전략도 들려온다. 오죽하면 이곳에서 ‘머스트아이템’으로 꼽히는 상품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게 한국인 덕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돈키호테는 일본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물건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할인쇼핑몰로 통한다. 일반 상점보다 적게는 10%부터 많게는 50%까지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게다가 엔화까지 떨어지니 한국인들에게는 천국이나 마찬가지다. 이곳저곳 한국인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중고명품시장, 엔저 수혜 톡톡

흥미롭게도 엔저로 호황을 누리는 곳은 또 있었다. 일본의 중고명품시장이다. 오사카 신사이바이에는 중고명품 숍이 많다. 한국 시세와 비교했을 때 20~30%가량 저렴하게 중고명품을 구매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엔화가 떨어지면서 더 싸졌다. 신사이바시 지역의 중고명품 숍에도 한국인 관광객이 북적인다.

신사이바시에 있는 클럽에서 DJ를 하고 있다는 한인 한명을 만났다. 그는 “출근할 때마다 보면 중고 명품매장에 한국인이 넘쳐난다”며 “엔화가 떨어져서 중고명품을 찾는 한국 관광객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에는 아예 중고 명품을 갖다가 파는 사람들도 많다”며 “이들 때문에 한인민박까지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의 중고명품을 수입해 팔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오사카에서 소호무역을 하고 싶다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한국과 오사카를 오가며 소호무역 관련 강의를 하고 있는 황동명 도큐핸즈 대표는 “최근 들어 일본 중고 명품 판매를 위한 창업 문의가 많다”며 “오사카 지역에서 진행하는 창업 연수가 전년 대비 30%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3개월 전쯤부터 엔화가 본격적으로 떨어지면서 최근 이를 감지한 많은 한국인이 일본 중고명품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2월 11일, 일본 일정의 마지막 날. 신사이바시역 근처에 있는 쇼핑몰 빅텐에서 마지막 식사를 한 후 서점에 방문했다. 그런데 한국 연예인을 표지로 내건 잡지가 가득한 K-팝 코너는 한적하기 짝이 없다. 국내 언론에서 떠들던 K-팝 열풍이 어디갔나 싶다. 일본에 가면 K-팝이 여기저기서 들릴 거라고 생각한 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생각보다 K-팝을 들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 도톤보리 지역에는 다양한 맛집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다코야키가 유명하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다코야키 맛집으로 통하는 와나카 다코야키의 모습.
2010년 이후 명동을 방문하는 일본인 관광객이 늘어났을 때 우리는 호들갑을 떨었다. 명동은 ‘아시아의 쇼핑 중심지’, 서울은 ‘문화도시’로 우뚝 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엔화가 떨어지자 일본인 관광객은 명동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끊었다. 일본인 관광객의 수요를 기대하던 화장품 매장은 썰렁해졌다. 실제로 일본인 입장에선 굳이 명동에 올 필요가 없다. 자국에서도 얼마든지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살 수 있어서다.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지금은 일본이 엔저효과로 한국인 관광객 특수를 누리고 있지 않는가’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다. 오사카 사람들은 한국 관광객의 증가 여부에 별 관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차피 올 사람은 온다’는 생각에서였다. 오사카의 관광 콘텐트에 대한 신뢰가 읽혔다.  오사카에서 만난 수많은 상인이 걱정한 건 정치적 문제로 급감하는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도톤보리 지역의 전자상가 빅카메라의 상인의 말을 들어보자.

독일 관광객의 냉소 “싸이가 한국인?”

“카메라처럼 고가 제품을 사는 한국인은 별로 없다. 한국인은 마사지 기계나 헤어드라이기 같은 저렴한 품목을 구매한다. 한국인 관광객이 증가한다고 우리 매출에 큰 영향이 있는 건 아니다.” 교토에서 만난 터키 관광객과의 대화내용이다.

터키 관광객: “세계 배낭여행 중이다. 후지산에서 도쿄東京와 교토를 지나 오사카로 넘어갈 예정이다. 다음 행선지는 중국으로 잡았다.”

기자: “한국은 왜 건너뛰는가.”

터키 관광객: “미안하지만 한국에 특별히 갈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옆에 있던 독일 관광객이 비슷한 이야기를 건넸다. 그는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지만 한국은 잘 모르겠다”며 “싸이가 독일인이 아니었냐”는 얼토당토않은 말까지 했다. 2월 12일. 6일간의 오사카 취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엔화당 원환율은 취재를 가기 전보다 더 떨어졌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명동에 들렀다. 일본인 관광객의 수는 확실히 줄었다. 무료관광지인 남산한옥마을에 중국인 관광객이 득실거린 것과 대조적이었다. 명동상인들은 환율 때문에 죽겠다며 아우성이다. 문득 오사카가 스쳤다. 그곳에서 만난 터키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독일인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싸이가 독일인이라고?” “한국인 관광객이 늘든 말든 상관 없다고?” 이게 현실일까.
일본 오사카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 | @itvfm.co.kr

Issue in Issue 오사카 취재수첩

교토역에서 한국인 관광객 돕는 무라타 마사노부
“한국인 역장에 감동받아 새 꿈 키워”

▲ 도톤보리 지역의 전자상가 빅카메라 휴대전화 매장에서 갤럭시를 가리키고 있는 마사노부군.
교토역은 무척 복잡했다. 유동인구를 계산하기 힘들 정도라고 하니 오죽하겠나. 더구나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버스 정류장이 AㆍBㆍC와 1ㆍ2ㆍ3 등의 번호를 달고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숙소를 가는 버스를 타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그때 한 청년이 어눌한 한국말을 쓰면서 다가왔다. “숙소를 알려주세요. 버스를 알려드릴게요.” 여의치 않았는지 그는 조금 후 숙소를 직접 안내하겠다고 제안했다.

30여분 후 그를 다시 만났다. 약속시간보다 5분 늦었다며 연방 고개를 숙인다. 뒤늦은 통성명. 나이는 26세, 이름은 무라타 마사노부, 직업은 지하철 직원이란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제 스마트폰은 갤럭시입니다. 케이스는 명동에서 싸게 샀습니다.”

그는 지난 3년간 한국을 9차례 찾았다고 했다. 1년에 3번꼴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스마트폰에는 저비용 항공사의 가격을 수시로 체크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깔려 있다. 그는 갤럭시에 다운로드된 앱을 켰다. “제주항공은 왕복 2만엔도 하지 않아요. 올 4월에도 제주항공 타고 한국에 갈 예정입니다.”

그는 제주항공의 경쟁력에 혀를 내둘렀다. “제주항공은 다른 저비용 항공사와 달라요. 특히 서비스가요. 삼각김밥 같은 간식은 일품이죠. 수화물 허용량이 넉넉해 짐이 많아도 별도 비용이 필요 없어요.”

마사노부군이 좋아하는 한국 여자 아이돌그룹 멤버는 카라의 강지영, 소녀시대의 태연이다. 그의 스마트폰 배경화면은 강지영이다. 어느덧 숙소. 고마움의 표시로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다. 그는 “저렴한 레스토랑이 있으니 안내하겠다”며 흔쾌히 수락했다.

롯데리아처럼 생긴 사이저리아라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니 피자가 399엔. 한국돈으로 치면 50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시쳇말로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엔화까지 착해졌으니(?) 한결 부담이 없었다. 그에게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어냐고 물었다. 그는 “친절함에 반했다”고 답했다. 예상치 못한 답이다. 친절하면 일본 아니던가. 마사노부군은 환하게 웃으며 다시 답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교토역 근무자로 일을 했어요. 권태기가 찾아올 무렵인 2009년 한국에 여행을 갔죠. 서울역에서 길을 몰라 헤매고 있는데, 한 한국인이 다가와서 길안내를 해주더라고요. 식사까지 대접받았죠. 나중에 알고 보니 지하철 역장이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감동받았죠.”

이날의 충격은 마사노부군의 인생목표를 바꿔놨다. 그는 “지하철 역장처럼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한국어 실력을 더 키워 교토역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을 돕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그가 기자에게 말을 건 것도, 교토역에서 ‘한국인 관광객 안내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돈을 주는 것도 아니란다.

“그저 한국이 좋고 한국인을 돕고 싶을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실제로 그의 하루 일과는 한국인 관광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매일 간사이 공항에서 출발한 하루카가 교토역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플랫폼으로 나간다. 도움이 필요한 한국인 관광객이 없는지 보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을 구분하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스니커즈에 레깅스, 배낭을 메고 있으면 백발백중 한국인 여성이죠.” 정말 그랬다. 오사카를 찾은 한국인 여성 관광객은 미리 짠 것처럼 비슷한 패션을 하고 있었다.

그의 바지주머니에는 한국어 문장 몇 개가 적힌 꼬깃한 종이가 들어 있다. “틈나는 대로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그는 말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 명동에 들렀을 때 마사노부군이 문득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길을 헤매는 외국인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사노부의 친절 바이러스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뭐! 따지고 보면 그리 고맙진 않다. 어차피 그 바이러스의 원조는 한국인 지하철 역장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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