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4] 흔들리는 박근혜 복지공약

▲ 새 정부의 복지공약이 출범 전부터 삐걱대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가 원인이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이 벌써 흔들리고 있다. 기초노령연금은 차등지급으로,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은 3대 비급여 부문의 제외로 결론 났다.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는 ‘증세 없는 복지’ 전략으론 복지공약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부 출범 초기부터 복지공약을 뜯어고치지 말고 ‘실천방안’을 찾으라는 거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모두 포함한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질환)의 총 진료비를 건강보험으로 100% 보장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하지만 이 공약公約은 벌써 공약空約으로 전락했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3대 비급여 항목은 제외’하는 것으로 결정해서다. 인수위 출범 한달 만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도 “비급여 항목은 당연히 포함된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3대 비급여 항목을 제외하면 환자들의 실질적인 부담이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쇄신위원회의 활동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13.3%였던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2008년 15.2%, 2010년 16%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2010년 기준)’를 보면 선택진료비가 26.1%, 상급병실료가 11.7%를 차지했다. 나머지 62.2%는 간병비가 가장 높은 1조5000억원을 차지했고, 나머지는 주사•처치•수술료(8000억원)•초음파(6000억원)•MRI(8000억원) 비용이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가장 부담이 큰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를 빼면 박 대통령의 공약은 거짓말이 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인수위가 말을 바꾼 사례는 또 있다. 인수위와 새누리당은 올 1월 10일 “기초연금 재원의 일부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충당하겠다”고 주장했다가 국민연금을 탈퇴하는 가입자가 생겨나자 “국민연금은 쓰지 않는다”며 말을 바꿨다.

 
결국 인수위는 2월 20일 “기초연금제도를 도입해 ‘65세 이상의 모든 어르신에게’ 현재 급여수준(2012년 기준 9만4600원)의 2배 연금을 2013년 상반기부터 지급하겠다”던 공약을 2013년 하반기(7월)부터 4단계로 분류해 4만~20만원까지 차등지급하기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이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 당선증’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약속을 어긴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려한 것처럼 복지공약을 이행할 수 있는 막대한 재원을 조달하기 쉽지 않아서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기간 내내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했다.

조세연구원장을 역임한 황성현 인천대(경제학) 교수는 “선진국은 바보라서 세출조정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높은 조세부담률을 유지하고 있겠는가”라며 “무슨 수로 증세 없이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겠나”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문제는 박근혜 당선인의 ‘증세 없는 복지’라는 비현실적 방향 설정에서 비롯됐다”며 “새 정부가 복지공약을 실천할 의지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증세는 불가피하고, 증세를 하지 않겠다는 건 복지공약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진보와 보수 모두 “증세가 대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을 지낸 이경태 고려대(국제대학원) 석좌교수는 ‘한국경제학회 공동학술대회’에서 ‘근혜노믹스의 이해와 성공조건’이라는 기조발표문을 통해 “보편적 복지를 하는 나라들은 보편적 증세를 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되고, 보편적 과세 없는 보편적 복지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세의 방법론을 주장한 것이지만 증세의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여전히 증세를 공론화하지 않고 있다. 재원조달이 쉽지 않다는 걸 실감한 새누리당은 대선공약을 수정하거나 미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약을 이행할 수단을 찾지 않고 공약을 뜯어고치거나 폐기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박사는 “18대 대선 당시 모든 후보가 국민의 눈치를 보느라 증세를 주장하지 않았다”며 “박근혜 대통령도 그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복지공약을 지키려면 증세논의는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증세에 관한 전문가들의 주장은 엇갈린다. 부자증세냐 보편적 증세냐를 둘러싼 충돌이 아니다. 

황성현 교수는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증세는 소득세라고 못 박았다. ‘연 소득 3억원 초과’로 돼 있는 최고세율 구간설정을 ‘1억5000만원’ 정도로 낮춰 38%의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방안이다. 황 교수는 “현재 최고세율 적용 대상자는 전체 납세자의 0.2%에 불과해 비현실적이고 세수효과가 없다”고 꼬집었다. 부자증세를 우선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아울러 “비과세 감면을 줄여 소득세폭을 넓혀야 한다”며 “부가세 인상은 마지막까지 미뤄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일 고려대(행정학) 교수는 “한국의 소득세가 낮은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소득세나 금융과세를 먼저 손보는 게 맞다”며 “부가세는 통일 등 긴박한 상황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 남겨둬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소득세를 늘리면 국민 반발이 클 수 있다”며 “소득세 증세의 취지를 국민이 납득하지 못한다면 부가세를 올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이만우 고려대(경제학) 교수는 “증세에 대한 시각이 너무 좁은 것 같다”며 “비과세 감면 혜택을 줄이면 증세 효과가 나온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최고세율은 이미 올릴 만큼 올렸다”며 “세수효과를 높이려면 부자증세가 아니라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늘려서 자연스럽게 세수가 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증세 방법론은 동상이몽

소득세냐 부가세냐를 따지기보다 조세에 대한 국민의 신뢰성을 먼저 회복하는 게 먼저라는 주장도 있다. 전병목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이 증세에 반감을 나타내는 것은 부자들이 비과세 혜택을 받아 요리조리 과세를 피해가기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복지를 하겠다면서 세금을 늘리면 저항이 거셀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연구위원은 “증세 논의는 소득세의 정상적 기능을 회복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이후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과세 감면을 축소하면 저소득층의 삶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어차피 비과세는 누진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세수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소득세냐 부가세냐의 논의는 다음 문제”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초부터 위기다. 복지공약이 벌써 흠집 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하루라도 빨리 복지공약을 실천할 도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증세의 이유를 공론화하자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당선 직후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키지 않아도 될 약속도 있다. ‘증세 없는 복지’ 약속은 하루빨리 파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박근혜 정부의 신뢰도가 곤두박질칠지 모른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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