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고갈 논란

국민연금 기금고갈 논란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국민연금 납부자는 줄고 수급자는 늘고 있어서다. 2060년 이전에 기금이 고갈돼 2008년 이후 태어난 세대는 수혜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제도개선이 시급하다.

▲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2월21일 국정과제 발표에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해 ‘국민행복연금’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에는 연일 ‘국민연금을 탈퇴하게 해달라’는 항의 글이 올라오는가 하면 매달 3000여명에 달하던 국민연금 임의가입자수는 올 1월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한국납세자연맹이 2월 5일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한 ‘국민연금 폐지’ 서명운동에는 보름 만에 7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참여했다. 납세자연맹은 “국민연금은 처음 가입한 사람에게는 고수익을 보장해주고 가입자가 줄어들면 파산하는 것이 다단계 피라미드와 비슷하다”고 지적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논란의 가장 큰 원인은 현재의 세입·세출 구조로는 국민연금을 온전히 받을 수 없다는 우려다. 현행 국민연금은 국민이 납부한 보험료로 기금을 조성한다. 은퇴자에게는 조성된 기금과 운용수익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적립식)이다. 대부분 선진국은 적립금을 쌓지않고 은퇴자에게 지급할 금액을 그해 근로계층으로부터 세금처럼 거둬들여 지급한다.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은 기정사실

     
 
 
1988년 국민연금제도가 도입됐을 때 보험료율은 3%, 소득대체율은 70%에 달했다. 소득의 3%만 매달 납부하면 은퇴 후 평균소득의 70%를 받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어떤 금융상품도 부럽지 않은 수익률이다. 시행 초기 국민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저부담·고급여 체계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는 별 문제가 없었다. 가입자가 가파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내는 이보다 받는 사람이 더 적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재정상태는 아직까진 괜찮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2012년 11월 기준 2000만명을 넘어섰다. 반면 국민연금 수급자는 360만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국민연금의 기금자산 규모는 전년 대비 43조1000억원 늘어난 392조9244억원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우린나라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늙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제도 시행 직후인 1990년만 해도 만 65세 이상 인구는 5.1%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0년에는 11%로 5.9%포인트 늘어났다. 2060년엔 40%에 육박할 전망이다. 보험료를 납부할 사람은 줄어드는데 수급자는 늘어나는 셈이다. 당연히 기금규모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산하 국민연금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4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 기금은 2043년 2465조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급격하게 줄어 2060년이면 소진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국민연금 고갈시기를 국민연금연구원 예측보다 7년 앞선 2053년으로 내다봤다. 대부분의 복지전문가 역시 “기금 고갈시기가 2060년 전에 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마저도 정부가 국민연금의 수급시기를 미루고 연금액을 낮춘 결과다.

지난해까지 60세 이후였던 국민연금의 수급연령은 올해부터 4년을 주기로 한살씩 단계적으로 늦춘다. 1969년 이후 출생자는 65세가 돼서야 수령할 수 있다. 1988년 도입 당시 소득대비 70%를 보장한다던 연금액은 현재 40%로 조정됐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측은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선진국처럼 그해 거둬들여 그해 지급하는 ‘부과 방식’을 택하면 된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국민연금연구원의 ‘국민연금 세대간 회계’ 보고서에 따르면 현 세대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2008년 이후 태어나는 세대는 소득세 외에 국민연금 등을 위한 사회보장세 25%를 평생 내야 한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막대한 사회보장세(보험료)를 수십년 동안 납부하고 늙어서는 단 한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불신은 박근혜 대통령의 ‘기초연금 20만원’ 공약이 논란을 일으키면서 더욱 깊어졌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은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1인당 월 10만원가량을 지급한다. 박 대통령은 당초 이를 두배로 늘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이 공약은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이 아니라 소득과 국민연금 가입여부에 따라 4개그룹으로 나눠 차등지급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소득이 많든 적든 가리지 않고 같은 금액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고 재원마련 역시 쉽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2월 21일 국민연금은 현행대로 유지하고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노인 전체를 대상으로 하되 소득하위 70%의 경우 국민연금 수급자는 14만~20만원, 무연금자는 2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소득상위 30%는 국민연금 수급자에게는 4만~10만원, 무연금자는 4만원을 준다.

문제는 같은 소득이라도 국민연금 가입자는 미가입자에 비해 더 적은 액수를 받는다는 점이다. 은퇴 전 같은 소득에도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월 20만원이라는 ‘공돈’이 생기는 반면 매달 일정액의 국민연금을 성실하게 납부한 사람들은 국민연금 미가입자에 비해 훨씬 적은 금액을 받는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늦기 전에 국민연금 구조 개선해야…

▲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유세 당시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초연금의 부족한 재원도 논란거리다. 인수위는 그동안 기초연금의 부족한 재원을 국민연금에서 일부 충당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그러나 인수위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계정을 따로 만들어 국민연금 기금이 기초연금의 재원으로 쓰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기초연금의 재원마련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이 세워지지 않아 국민연금 고갈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복지전문가들이 하루라도 빨리 국민연금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을 막고 노후를 안전하게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고령화 사회에 대비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가장 유력한 개혁방안은 보험료율을 높이는 것이다. 9%인 현행 보험료율을 끌어올리자는 주장이다. OECD 평균 공적연금 보험료율은 19.6%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은 “현행 수급액을 유지한 채 2080년까지 재정이 고갈되지 않게 하려면 보험료율을 현재 9%에서 13%까지 인상해야한다”며 “지금 보험료율을 높이지 않으면 후세대로 갈수록 부담이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심하용 기자 stone@thescoop.co.kr | @stonesco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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