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는 유로존 재정위기가 과도한 복지 탓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사진=지정훈 기자)
복지시스템을 확충하려면 재원이 필요하다. 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증세를 하면 세금폭탄을 맞는 게 아니냐”며 우려한다. 그렇지 않다. 복지를 위해 세금을 늘려도 서민층의 부담은 크지 않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를 만나 복지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들었다.

복지는 오해가 많다. ‘복지를 하려면 증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일반 국민이 세금폭탄을 맞을 것’이라는 낭설이 쏟아진다. 유로존 재정위기의 원인을 과도한 복지 탓으로만 몰아붙이는 이들도 많다. 복지전문가들은 “복지를 늘린다고 일반 국민이 세금폭탄을 맞을 일은 절대 없다”고 강조한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복지 때문에 비롯된 것은 아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를 만나 ‘복지관觀’을 제대로 정립해 봤다.

✚ 복지국가의 정확한 개념이 뭔가.
“복지국가는 사회복지 확대의 총합이 아니다. 보편적 복지만 잘 한다고 복지국가가 되는 건 아니다. 전체 시스템에 복지철학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복지국가는 선별적 복지를 할 수 있고, 복지예산을 줄일 수도 있다. 근본적인 국가 작동원리가 성장이 아니라 복지를 지향한다. 국민의 5대 불안으로 꼽히는 교육•보육•의료•주거•일자리•노후수급에 대한 보장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게 하는 거다. 이게 역동적 복지국가다.”

국가시스템에 복지철학 깃들어야

 
✚ 복지국가의 원칙은 무엇인가.
“네가지 원칙이 있다.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와 혁신적 경제가 그것이다. 복지는 그냥 늘리는 게 아니다. 보편적 복지의 취지는 전 생애에 걸친 기본소득 보장이다.  사회서비스를 보장해서 국민의 5대 불안을 없애주는 거다. 적극적 복지는 그런 걸 통해서 개인의 잠재능력을 끌어내는 거다. 이런 복지틀이 갖춰져야 공정한 경제와 혁신적 경제가 싹튼다.”
 
✚ 그동안 복지정책이 없었던 건 아니다.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복지정책에 대한 담론이 부족했다. 부분적인 복지확충이나 제도개혁으로는 사회양극화 등 각종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경제는 정부주도와 수출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낙수효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낙수효과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데도 경제구조는 그대로다. 복지정책의 방향이 나빴던 게 아니라 전체 시스템이 조화롭게 작동하지 않았다. 국가발전시스템을 복지국가로 바꿔야 한다.”

✚ 얼마 전 현대경제연구원에서 국민 대다수가 복지보다 물가정책이나 일자리 정책을 원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동의하는가.
“가장 정확한 설문은 18대 대선이다. 투표율이 75.8%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경제성장 정책을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진심이든 전략적이든 복지를 내걸었고 그걸로 당선이 된 거다. 행정수도 이전, 4대강 개발, 토목건설, 줄푸세, 작은 정부, 규제완화 등 이슈는 눈길을 끌지 못했다. 공약의 최대 이슈는 누가 뭐라든 복지였다. 결과가 버젓이 있는데 국민이 복지를 원하지 않는다는 건 대선 결과를 왜곡하는 것이다.”

✚ 기업은 복지가 확대되면 국민이 일하기를 꺼려서 기업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박할 만한 데이터가 있나.
“자본주의국가는 북유럽형•서유럽형•영미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 중 북유럽형 국가의 복지시스템이 가장 잘 구축돼 있다. 이정우 경북대(경제통상학부) 교수가 2011년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북유럽형 국가의 지니계수가 가장 낮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북유럽형 국가가 가장 많다. 연간 1인당 실질 GDP 성장률 역시 북유럽형 국가가 높다. 독일•핀란드•벨기에를 제외하면 실업률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데이터는 복지시스템이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는 주장을 깨뜨리기 충분하다. 적절한 기업규제와 정부개입을 통한 복지는 경제에 활력을 준다.”

 
✚ 복지를 섣불리 늘렸다간 유로존 재정위기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경고가 많지 않은가.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박사가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국(OECD) 자료를 보면 ‘유로존 복지국가가 실패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난다. 자료에 따르면 양극화 지수와 지니계수는 북유럽이 가장 낮은 반면 영미권은 가장 높다. 명백한 데이터다.”

✚ 최근 프랑스 정부가 부유층에 최고 75%의 소득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프랑스를 떠나겠다는 기업과 고소득층이 속출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국내 언론들은 자신들이 보도하고자 하는 부분만 부각한다. 실제로는 프랑스에 남아 있는 고소득층이 더 많다. 손해만 본다면 왜 남아 있겠나. 그들에게도 돌아가는 이익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다.”

✚ 복지를 늘리면 세금폭탄을 맞는 게 아니냐며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OECD 평균과 비교했을 때 낮은 건 사실이다. 2011년 기준으로 OECD 평균 조세부담률은 25.8%, 한국은 19.3%였다. 증세는 필수라는 얘기다. 하지만 서민이 세금을 떠안게 될 거라는 주장은 허구다. 당장 OECD 평균만큼 증세를 하더라도 대다수 국민의 조세부담은 크지 않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한국의 경우, 전체 세금의 80%를 소득상위 20%가 낸다. 80% 이상의 국민이 자기가 내는 세금보다 훨씬 이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국내 소득세법은 누진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구조다. 당연히 증세를 하면 고소득층이 많은 세금을 낼 수밖에 없다. 복지를 위해 증세를 한다고 해서 서민층이 ‘세금폭탄’을 맞을 일은 절대 없다. 이는 증세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말을 지어낸 것이다.”

✚ 복지국가를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나름의 모델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일단 증세를 세금폭탄으로 봐선 안 된다. 증세를 해야 복지시스템을 확충할 수 있다. 한국은 다른 OECD 회원국과 비교할 때 사회서비스가 많이 모자란다. 증세를 통해 마련한 정부재정으로 사회서비스 분야를 활성화하면 일자리가 생긴다. 반대로 보육•교육•의료•노후부담 등 국민의 각종 부담은 줄어든다. 당연히 가처분소득이 늘고, 내수가 살아난다.”

박근혜 복지공약 과소추산돼 있어

 
✚ 한국을 복지국가로 만드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뭐라고 생각하나. 
“국민이 복지국가가 뭔지 잘 모른다. 그래서 구체적인 담론을 통해 정책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게 중요하다, 정책을 추진할 정치세력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기존 시스템에서 득을 보는 사람들이 마음을 바꿔먹어야 한다. 대기업은 세금부담이 적은 시스템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또 대기업과 공생하는 고위관료집단, 보수언론, 법조계, 검찰, 주류경제학 논리로 무장한 학계도 마찬가지다. 대선에서 봤듯 역사의 흐름은 복지국가로 향하고 있다. 흐름을 거슬러선 안 된다.”

✚ 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에 어떤 기대를 걸고 있나.
“박근혜 대통령은 복지를 주장했고, 이를 발판으로 집권했다. 이것 자체로 고무적이다. 이전의 새누리당과는 전혀 다른 가치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복지공약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재원은 과소추산돼 있다. 하지만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한 만큼 진정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역사의 흐름에 퇴행하는 선택을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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