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김기환 선생의 이순신공세가(李舜臣公世家) 제20회 ②

조방장 유극량도 이 강변군사의 말을 듣고 자기 의사와 부합하여 대장 신할을 보고 말하였다. “저 강변군사들의 말을 들으니 지당하오. 경하게 움직이는 것은 만전지계가 아닌 듯하오.” 거칠고 서투른 신할은 또한 대노하여 성공이 목전에 있는 듯이 선조가 준 상방검을 빼어 들고 유극량을 베려 하였다.

 

평안도 강변군사 중에 나이 늙은 사람 하나가 한응인의 앞에서 고하기를 “소인 아뢰오. 저희들 강변군사가 원로행역에 급히 와서 다리가 아픈데다가 아직 밥도 먹지 아니하옵고 그뿐 아니라 후군도 아직 다 들어오지 아니하였사오며 또는 적의 사정도 아직 알 수 없으니 오늘 하루를 여기서 쉬면서 척후병을 먼저 내놓아 적의 동정을 알아본 연후에 형세를 보아 도강 전진하여 추격함이 순서일까 하오” 하고 아뢰었다.

이 평안도 정병이란 강변군사는 소시로부터 압록강에서 오랑캐와 싸워서 실전의 경력이 있는 군사들이다. 이들의 눈에 한응인의 하는 행동이란 도무지 싸움이란 것을 아이들 장난으로 알고 병법이란 것을 풍류로 아는 멍텅구리로 보였다.

비록 병서는 읽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싸움의 비결이 적의 정세를 아는 것에 있는 것은 강변에서는 삼척동자들도 다 아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개성에서 임진강까지 몰아온 군사를 밥도 먹기 전에 나아가 싸우라는 것이 정신 있는 사람의 일 같지 아니하였다.

행로에 피곤하고 배고픈 군사를 덮어놓고 싸움하러 가라고만 하니 복기 있는 장수라 그렇게 조급한가. 이 강변군사들은 숙맥불변1)하는 한응인이 제 공만 세우자 하는 탐욕지심에서 나오는 명령 그대로 강을 건너는 것보다도 사태를 파악하자는 바른 말을 한 것이었다.

“사또께서 가라면 가지만 이 피곤한 군사를 끌고 강을 건너면 적병이 얼마인지 어떠한 군기를 가지고 어떠한 곳에 복병을 하고 우리 오기를 기다리는데 이렇게 하면 이기리라는 자신이 있어야 하지요. 지금 군사들이 모두 의심이 있으니 오늘 하루를 쉬어서 내일에 적병을 치는 것이 옳은 줄로 아뢰오” 하고 그들이 실제 체험한 경력을 들어서 한응인을 깨우치고자 하였다.

한응인은 이 강변군사에게 가르치는 말을 듣고 분기가 폭등하여 3000장이나 솟아올랐다. “이놈들! 시골의 미천한 출신으로 사대부를 몰라보고 무엄이 막심하다!” 하여 칼을 빼어들고 “오냐, 너의 놈들이 죽기를 무서워하는구나. 주둥아리를 기탄없이 놀려 군심을 요란케 하니 마땅히 베리라!” 하고 성화같이 재촉하여 강을 건너게 하였다.

재앙 부른 탐욕지심

▲ 적과의 싸움 후 임진강에까지 뛰어온 군사는 1만여명 중에 단 1000명이 못 되었다.

조방장 유극량도 이 강변군사의 말을 듣고 자기 의사와 부합하여 대장 신할을 보고 “저 강변군사들의 말을 들으니 지당하오. 경하게 움직이는 것은 만전지계가 아닌 듯하오” 하였다. 거칠고 서투른 신할은 또한 대노하여 성공이 목전에 있는 듯이 선조가 준 상방검尙方劍을 빼어 들고 유극량을 베려 하였다.

유극량은 어이없어 “내가 일생을 전장에서 살았거든 어찌 죽기를 피하겠소마는 나라 일이 그릇되니까 하는 말이오” 하고 자기의 부하들과 함께 선봉이 되어 나섰다. 신할도 강을 건너 군사를 재촉하여 달려갔다.
서도순찰사 한응인과 경기감사 권징은 다 문관이며 백면서생이어서 무기를 들 수 없으며 일변은 무섭기도 하여서 군사들만 보내고 자기네들은 강 이쪽 북안에 머물러 도원수 김명원과 함께 승전보가 오기만 꿈을 꾸고 고대하였다.

평안도 압록강변 정병이란 군사는 북방 오랑캐와 다년간 전쟁을 치러 조선에서는 백전을 경험한 막강지병이었지만 장수를 만나지 못하고 일개 복기 있는 서생을 만나서 패멸을 당하니 이것이 복기인가. 정승은 복기 있는 서생을 장수로 그릇 추천하고 중흥지주라는 선조는 그를 신임하니 참으로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할 것이다.

김여물 유극량 등은 나라를 지킬 재주를 품었으나 사람을 등용함이 거꾸로 되어 계획은 시행되지 않고 말은 채택되지 않아 종국에 옥석이 같이 불타니 탄식할 일이로다.

신할의 군사와 강변군사는 임진강 남쪽 벌판을 지나서 미시나 되어서 문산포汶山浦 뒷산에 다다랐다. 군사들이 정히 피곤하고 목이 마르던 때에 문득 일성 포향이 일어나며 적의 복병이 사면으로 내달아 조총과 화살과 대도 장창이 풍우치듯 엄습한다.

이편 군사들은 미처 손을 쓸 새가 없이 적의 철환과 시석과 창검에 맞아서 순식간에 수천명이 죽고 병사 신할과 별장 유극량도 함정에 빠진 범이 되어 적군에 겹겹이 에워싸여 역전하다가 적병 5~6명씩 베었으나 벗어나지 못하고 적의 창검에 죽었다.

▲ 크게 믿었던 한응인의 강변정병이 무너지자 선조와 대신들은 또 평양을 버렸다.
죽기를 면한 군사들은 임진강을 향하여 달아났다. 적병은 벌써 발뒤꿈치에 달려왔다. 길가에는 이편 군사의 시체가 서로 이어 쓰러져 누었다. 이렇게 죽고 임진강에까지 뛰어온 군사가 먼젓번 강을 건너갈 때에 군사 1만여명이던 중에 단 1000명이 못되었다. 그러나 김명원과 권징은 우리 군사가 패하여 쫓겨 오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군사를 실어 건네기 위하여 배를 강의 남쪽으로 보내어 몇 번은 날라 왔지만 나중에는 우리 군사의 발뒤꿈치에 구름 같은 적병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는 행여나 그 배를 빼앗길까 하여 강북으로 거두어 버렸다.

뒤떨어진 군사는 건너올 배를 얻지 못하고 부질없이 한응인을 불러 욕하고 배후에 임한 적병의 칼을 피하여 강물에 뛰어들었다. 그 뛰어드는 모양이 마치 바람에 날리는 어지러운 나뭇잎 같았다고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에 기재되었다.2)

도원수 김명원 이하 한응인 권징 등이 넋을 잃고 있을 때에 상산군商山君 박충간이 먼저 말하되 “일이 글렀으니 하는 수 있나” 하고 맨 먼저 말을 타고 달아났다. 이것을 본 군사들은 황혼이 된지라 사람 분별이 어려워 달아나기 잘하는 도원수 김명원인 줄만 알고 도원수가 또 달아났다 하고 여울목을 지키던 군사들도 모두 달아났다.

면목 없이 된 한응인도 목숨이 아깝던지 그만 달아났다. 그 뒤를 이어 김명원도 달아났다. 경기감사 권징은 그중에도 염치심이 있었던지 죄 받을 것이 무서워서 평양의 행재소로는 가지를 못하고 경기도 가평加平으로 달아나 버렸다.

그렇게 되어 소서행장 등 적의 제장은 십여일을 강을 격하고 서로 버티다가 유적계 한 번에 조선군을 대파하고 아무 저항 없이 임진강을 건너서 개성을 점령하였다.

일본군 두려워한 선조와 대신들

 

소서행장과 가등청정이 같이 개성을 지나서 평양으로 가다가 안성역3)에 이르러서, 청정은 함경도를 맡아 가게 되고, 행장은 평안도를 치게 하고, 황해도는 흑전장정이 가게 하고, 전라도는 도진의홍이 치게 되고, 경기도와 서울은 대장인 부전수가가 지키게 하고, 강원도는 모리승신4)으로 차지하게 하고, 충청도는 복도정칙과 장종아부원친이 가게 하고, 경상도는 대장인 모리휘원이 지키게 하고, 조선 연해안과 섬의 제해권을 구귀가륭 협판안치 가등가명 등 여러 장수에 나누어 장악하게 하라고 수길의 대본영에서 배정하여 나왔다.

이때에 소서행장과 흑전장정 소조천융경 대우의통의 무리가 개성을 점령한 뒤에 봉산에 불 지르고 황해 일도를 짓밟으며 대동강 남안에 닿았다. 이때에 임진강의 패보가 평양에 들어왔다.

선조와 대신들은 또 평양을 버리고 다른 데로 가기로 하였다. 평양을 지키는 데 대하여는 믿을 만한 장수가 없었다. 그래서 양사5)와 홍문관에서는 연일로 복합6)하여 평양을 버리고 영변寧邊으로 옮기기를 청하고 인성寅城부원군 정철이 극력하여 평양을 버리기를 주장하였다. 정철과 그 무리들은 평양을 버리기를 힘써 주청할 뿐더러 선조와 동궁 이외에 종친들까지도 적병이 무서워서 정철 등의 말에 기울어졌다.

전 수상 풍원부원군 유성룡은 “평양을 지키는 것이 옳소. 인성부원군은 서울도 버렸거든 평양을 못 버리랴 하거니와, 그때와 이때는 시세가 같지 아니하오. 서울에서는 군사와 백성이 평화시기가 오래된 나머지 전쟁을 무서워하여 그만 붕괴되어 버렸으니까 지키려 하여도 지킬 수가 없었지만, 평양으로 말하면 백성의 마음이 대단히 굳고 또 앞에 대동강이 있어서 지킬 만한 가망이 있소. 그리고 여기서 며칠만 지키고 있으면 반드시 명나라의 구원병이 올 것이니 밖에서 돕고 안에서 응하여 적병을 물리칠 수가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아니하고 평양을 버리고 떠난다 하면 의주에 이르기까지는 다시는 웅거할 만한 요해지가 없으니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오” 하고 굳세게 평양을 버리는 것이 옳지 아니함을 주장하였다. 좌의정 윤두수가 유성룡의 주장에 찬동하였다.

정철은 반대하여 “평양이 비록 민심이 굳고 앞에 대동강이 있다 하나 장수가 없이 어떻게 지킨단 말이오?” 하고 적을 피해 떠나자는 피출설避出說을 고집하였다.

유성룡은 분개한 낯으로 정철을 향하여 “영변도 의주도 적만 온다면 또 떠나야 할 터이니 장차 어디로 성상을 모시고 가려 하오? 나는 평소에 대감이 강개한 뜻이 있어서 어려운 것을 겁을 내는 사람이 아닌 줄 믿었더니 오늘 이런 말은 참으로 의외요” 하고 꾸짖었다.

윤두수도 정철의 무기력한데 분개하여 ‘내가 칼을 빌려서 이 간신을 베고자 한다’(我欲借劍斬侫臣)는 문산7)의 시를 읊었다. 정철은 대노하여 소매를 뿌리치고 일어나서 나가 버렸다.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자료제공 | 교육지대(대표 장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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