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시장 흔드는 두 중국기업

중국기업 ZTE와 화웨이가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으로 글로벌 휴대전화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ZTE는 점진적 성장전략, 화웨이는 단숨에 뒤집는 역전전략이 무기다. 이런 두 기업이 국내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성장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소니를 추격하던 1990년대의 삼성전자, LG전자처럼 말이다.

▲ 중국산 스마트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왼쪽)과 허우웨이구이 ZTE 회장.

#2011년 2월 스페인 바로셀로나. 월드모바일콩그레스(MWC) 2011 행사장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한 삼성전자 부스 옆에 중국 IT업체 ZTE가 대형부스를 떡하니 마련한 것이다. 휴대전화ㆍ통신장비 제조업체 ZTE는 저가형 피처폰과 함께 스마트폰ㆍ태블릿PC 등 첨단 IT기기를 선보였다. 삼성전자와 정면승부를 펼친 것이다.

# 올해 1월 29일. 시장조사기관의 발표에 글로벌 IT시장이 들썩였다. 시장조사기관 IDC가 발표한 지난해 4분기 세계 휴대전화 시장조사에서 화웨이가 처음으로 LG전자를 앞섰기 때문이었다. 화웨이는 지난해 4분기 전년 동기비 13% 늘어난 1580만대를 공급했다. 화웨이에 밀린 LG전자는 세계 휴대전화 판매량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10년 만의 일이었다.

 

 

ZTE ‘공격경영’ vs 화웨이 ‘뚝심경영’

중국산 스마트폰 돌풍이 심상치 않다. 글로벌 휴대전화업계의 눈이 ZTE와 화웨이에 쏠리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가 2월 19일 발표한 ‘2012년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 집계’에 따르면 화웨이는 LG전자를 8위로 밀어내고 7위에 올랐다. ZTE는 2012년 4분기 4.0%의 시장점유율로, LG전자와 소니와 함께 공동 5위를 기록했다.

특히 화웨이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화웨이는 2012년 4분기 전년 동기보다 570만대나 늘어난 1080만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화웨이의 강점은 가격경쟁력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공략하지 않는 저가시장을 목표로 삼고 있는 이유다. 그렇다고 저가시장만 노리는 것도 아니다. 최근엔 고사양 스마트폰도 출시하고 있다. 화웨이는 올 1월 열린 CES 2013에서 6.1인치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풀HD 스마트폰 ‘어센드 메이트’를 공개했다.

이처럼 ZTE와 화웨이가 세계시장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국내 소비자에겐 낯설다. 중국기업이라는 사실을 아는 소비자도 ZTE와 화웨이를 확실하게 구별하지 못한다. 하지만 두 기업은 판이하게 다른 DNA를 갖고 있다. 창업 과정, 창업자의 스타일, 경영철학, 시장진입 전략 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많다.

허우웨이구이 ZTE 회장은 원래 군수업자였다. 군수업체의 직원이었던 1980년대 초, 그는 군수업체 항톈691의 공장에 도입할 최신기술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세계통신시장을 주름잡던 마이크로소프트(MS)ㆍ델ㆍ인텔의 존재를 알았다. 군수업체의 일개 직원이던 허우 회장은 이들의 기술력과 IT시장의 성장가능성에 주목했다.

▲ 창업과정과 경영철학 등 모든 게 다른 ZTE와 화웨이가 국내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허우 회장은 항톈691 공장의 기술담당자를 맡았다. 최신기술을 공장에 적용하는 일이었다. 1985년엔 기술책임자에 임명됐다. 누구나 바라던 직책이었지만 그는 승부수를 던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제는 통신기술을 익힐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ZTE의 전신인 중싱 반도체유한공사를 설립했다.

사업은 비교적 빠르게 안정됐다. 중국정부가 통신시장을 적극 지원하는 호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ZTE는 중국정부와의 관계를 긴밀하게 구축하면서 네트워크솔루션 사업으로 사세를 넓혔다.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글로벌 기업으로 나가기 위해 또 하나의 승부수를 던졌다. 휴대전화 제조업 진출이었다. 2000년부터 모바일 시장이 꿈틀대는 걸 허우 회장은 놓치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한번 결정하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그렇다고 폭주기관차처럼 무조건 질주만 하는 건 아니다.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거나 신사업을 시작할 땐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널 정도로 신중하다.

휴대전화 시장에 진출한 2004년에도 그는 그랬다. 삼성전자ㆍ모토롤라ㆍ노키아ㆍ소니에릭슨 등이 버티고 있는 선진국 시장에선 전략을 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정면돌파를 포기한 그는 측면돌파를 시도했다. 개발도상국을 먼저 노린 것이다. 농어촌에서 출발해 도시를 포위하는 성장전략을 구사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전법戰法’을 활용한 것이다.

전략은 통했다. 2004년 중국 통신기업 최초로 홍콩 증시에 상장된 ZTE는 이제 글로벌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2012년 미국 최대 통신업체 버라이즌과 계약을 맺었다. 이를 발판으로 삼고 세계시장에서 탄탄한 협력체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계약을 체결한 세계 50대 통신사 중 42개에 달한다.

허우 회장은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2010년 선전深圳경제특구 지정 30주년을 맞아 30인 경영자 중 한명으로 뽑혔다. 지난해엔 중국 국영 CCTV가 선정한 올해의 경제 인물로 뽑혔다.

허우 회장이 ZTE 창업을 준비할 때 통신시장에 발을 들인 인물이 있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이다. 1987년 설립된 화웨이는 통신장비 제조회사로 시작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런정페이 회장이 인민해방군 통신장교 출신이라는 것이다. 설립 초기 화웨이의 거래처 대부분이 군대와 관련된 곳이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런정페이 회장은 점진적 성장전략을 펴는 허우 회장과 스타일이 조금 다르다. ‘직원들에게 절대 굴복하지 않는 늑대처럼 공격정신을 가지라’고 주문하지만 ‘한방에 뒤집는 역전전략’을 사용한다.

그렇다고 런정페이 회장이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는 ‘기술력’만큼 센 무기는 없다고 생각한다. 화웨이의 연간 연구개발(R&D) 투자비는 연매출의 10%가량이다. 기술개발 결과는 알차다. 지난해 3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판매량 기준으로 LG전자를 제치고 3위에 올랐다. 런정페이 특유의 공격경영과 뚝심경영도 재평가를 받고 있다. 2011년 포춘 중문파이가 발표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대 비즈니스 리더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전략방법은 달라도 목표는 같아

모든 게 다른 ZTE와 화웨이는 최근 국내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국내시장 진출전략 역시 다르다. ZTE는 해외기업으론 처음으로 국내에서 자급제폰을 출시했다. Z폰이다. 브랜드 이미지를 챙기기보다 수익을 낼 수 있는 제품을 택했다. 판매량이 많아지면 인지도가 생기고, 인지도가 쌓이면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마오쩌둥 전법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허우 회장다운 생각이다.

화웨이는 일단 ‘기다리는 전략’을 쓰고 있다. 최소 2~3년 동안은 스마트폰 출시 계획이 없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양강구도가 고착된 한국시장에서 승부를 걸려면 기술력을 더 키워야 한다는 계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화웨이가 ZTE와 달리 알뜰폰과 거리를 두는 이유다.

어찌됐든 ZTE는 저가폰으로 승부를 걸었고, 화웨이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 ZTE는 조금씩 영역을 넓힐 것이고, 화웨이는 최고 기술력으로 한방에 뒤집을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국내 소비자는 아직은 먼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소니를 역전할 것이라고 예측한 이는 많지 않았다. 긴장을 늦췄다간 말 그대로 ‘소니꼴’ 난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 @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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