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주인 맞은 대우일렉트로닉스

▲ 동부그룹의 지원을 등에 업은 대우일렉트로닉스가 탱크주의 부활의 신호탄을 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우일렉트로닉스(대우일렉)가 다시 태어났다. 새 주인이 된 동부그룹은 2020년까지 대우일렉을 세계 10위권 종합전자회사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우일렉은 1990년대 대우전자 시절 특유의 ‘탱크주의’로 삼성전자•LG전자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전력이 있다. 이번에도 ‘탱크’처럼 질주할 수 있을까.

20여년 전, 많은 사람의 눈을 사로잡은 CF가 있었다. ‘세척력을 높이면서 옷감은 상하지 않게 하는 획기적인 세탁방법’을 고민하던 연구원의 이야기를 그린 광고다. 연구소장으로 분한 배우 유인촌은 어항에서 공기방울이 생성되는 부분에 이끼가 끼지 않는 걸 포착한다. 그러곤 처남이자 후배연구원으로 분한 박상원을 호출한다. “자네 당장 올라와!” “뭐…뭐라고요. 매형…아니, 소…소장님.”

당시 후배연구원은 신혼여행 중이었다. CF이긴 하지만 실제 있었던 대우전자(현 대우일렉트로닉스) 연구원의 이야기를 담아 냈다. 그렇게 대우전자의 대표작 ‘공기방울세탁기 Z’가 탄생했다.

한순간에 무너진 대우전자의 영광

1974년 설립된 대우전자는 1980년대 말까지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1990년대 들어 ‘탱크주의’(튼튼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겠다는 콘셉트)와 그 이념 아래 탄생한 공기방울세탁기를 통해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위협할 만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당시 대우전자 자료에 따르면 1990년 11만대에 불과하던 대우전자의 세탁기 판매량은 1994년 45만대로 가파르게 늘어났다. 공기방울세탁기는 1992년 한국산업진흥기술협회에서 주관한 장영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공기방울세탁기의 성공에 고무된 대우전자는 임팩트TV•다이아몬드VCR•입체냉장고 등 히트상품을 연이어 쏟아냈다. 가전시장 점유율이 30%에 육박하며 삼성전자•금성(현 LG전자)과 업계 빅3를 형성했다.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공룡’ 대우그룹이 무너졌다. 그룹 내 알짜회사로 분류되던 대우전자도 1999년 8월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 대상이 됐다.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채권단은 2000년부터 대우전자의 비주력 사업을 팔거나 독립시키며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러나 한번 꺾인 날개는 다시 펴지지 않았다. 영화회계법인의 실사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 기준 대우전자의 자산가액은 약 1조9000억원인데 반해 총부채는 5조6000억원에 달했다. 2002년 10월 자회사 대우모토공업과 합병한 대우전자는 상호를 대우일렉트로닉스(대우일렉)로 바꾸고 재기를 모색했다. 이후 신규 기업로고(CI)를 발표하고 백색가전 통합브랜드 ‘클라쎄’를 선보이는 등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알찬 열매를 맺지 못했다. 채권단은 2005년 회사 매각을 결의했다. 그렇다고 매각절차가 순조로웠던 것도 아니다. 2006년 인도 비디오콘 컨소시엄과의 협상결렬을 시작으로, 2008년 모건스탠리PE, 2009년 리플우드, 2010년 엔텍합그룹, 2011년 일렉트로룩스 등 5차례에 걸친 매각협상이 모두 깨졌다. 매각협상 때마다 기술유출에 대한 우려가 불거졌고 대우일렉 노조와의 갈등도 만만치 않았다. 대우일렉 노조 측은 “국민혈세로 지탱해온 대우일렉을 해외투기자본에 팔아먹는 건 국부유출 행위”라며 채권단을 비난하고 나섰다. 인수의향을 밝힌 회사들 또한 협상테이블을 엎기 일쑤였다.

그렇게 매각협상이 지연되는 사이 대우일렉의 덩치는 해마다 쪼그라들었다. 1990년대 말 1만2000여명에 이르던 종업원 수는 2011년 2000명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4조원대로 평가받던 자산가치는 5000억원대로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매각이 여의치 않자 채권단은 또다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대우일렉이 보유하고 있던 인천공장부지를 떼어 내고 매각가를 3000억원대로 다시 책정했다. 대우일렉의 가치를 떨어뜨려 매각할 심산이었다.

올 1월 8일 우여곡절 끝에 대우일렉이 동부그룹에 매각됐다. 매물가격은 애초 동부그룹이 제시했던 3700억원 보다 1000억원 줄어든 2726억원이었다. 2월 15일 동부그룹이 인수대금 2280억원을 선납해 사실상 인수절차가 끝났다. 남은 금액 446억원은 재무적 투자자(FI)가 3월 말까지 납입하기로 했다. 이로써 대우일렉은 장장 13년에 걸친 워크아웃도 졸업하는 데 성공했다.

부침이 심한 기업역사를 갖고 있지만 대우일렉의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지난 5년간 연평균 매출이 1조5000억원에 달했다. 수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80%에 이르는 것도 장점이다. 특히 베트남 시장에서는 냉장고 부문, 베네수엘라에선 전자레인지 부문, 알제리에선 드럼세탁기 부문 시장점유율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지난해 회사 매출은 1조9000억원을 넘어섰다.

 
동부그룹은 대우일렉을 세계 10위권 종합전자회사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동부그룹이 선택한 전략은 중저가 시장공략이다. 이재형 대우일렉 신임 대표는 “프리미엄 시장보다는 중저가 시장을 타깃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시장을 장악한 삼성전자•LG전자와 맞대결을 벌이기보다는 해외 신흥시장에서의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넓은 영업망을 바탕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것이다. 중저가 시장의 규모는 프리미엄시장에 비해 작지 않다. ‘중저가 시장 공략’이라는 대우일렉의 전략이 통하면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재형 대표는 “2017년까지 매출액 5조원, 영업이익 3000억원, 이익률 6% 달성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업이 순조로울 경우 2020년까지 세계 10위 종합전자업체로 도약이 가능하다는 게 동부그룹의 계산이다. 해외 경쟁력 유지를 위해 대우일렉 상호와 로고는 향후에도 계속 사용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물론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전자업 경험이 일천한 동부가 사업을 성공적으로 꾸려가겠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동부그룹은 대우일렉과 다른 IT계열사의 시너지 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하는 동부하이텍, 발광다이오드(LED)램프 전문인 동부LED, 로봇 전문 동부로봇과의 연계를 통해 부수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동부 IT계열사와 시너지 기대 
▲ 대우일렉 전신 대우전자의 1990년대 최고 히트상품 공기방울세탁기.

실제로 대우일렉은 2014년까지 TV•에어컨•청소기•전기오븐 등으로 사업분야를 확대할 계획이다. 2014
년 말부터 현재 개발 중인 로봇청소기를 출시할 방침을 세웠다. 2015년 이후에는 정보통신기술을 통한 스마트가전제품과 가정의료기기 사업에도 진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전자사업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최첨단 종합전자회사의 보유’가 김 회장의 오랜 숙원일 정도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김 회장은 2월 26일 오명 전 과학기술부장관을 영입했다.

동부그룹은 국가과학기술과 IT분야의 정책을 오랫동안 이끌어 온 오명 전 장관이 대우일렉의 도약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 전 장관은 동부그룹 내 전자총괄회장직을 맡는다.
대우일렉은 ‘탱크주의’ 콘셉트로 파란을 일으켰다. 동부그룹이라는 든든한 후원군을 얻은 대우일렉은 탱크처럼 ‘중저가 시장’을 공략할 것이다. 여기서 성공한다면 대우일렉은 전장戰場을 ‘프리미엄 시장’으로 옮길 게 뻔하다. 삼성전자•LG전자와 ‘2라운드’ 대결이 멀지 않았을지 모른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allint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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